brunch

그냥 하지 말라

by 김의진

송길영 작가의 책을 연속하여 읽었다. '상상하지 말라' 이후 5~6년의 시간이 지나고, 코로나 기간을 거치며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책을 읽어보니 대략적인 예상이 맞았다. 지난 책부터 이어지는 맥락은 빅데이터 전문가가 바라본 세상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좁게 보면 통계학, 넓게 보면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줄기차게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변화의 3가지 상수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분화하는 사회. 우리는 혼자 살고 좀 더 작아진 집단으로 가고 있습니다. 둘째, 장수하는 인간.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오래 살고 젊게 삽니다. 셋째, 비대면의 확산. 이는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대면을 꺼리기 때문에 강화됩니다. 지난 20년 가까운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이 3가지 변화를 목도할 수 있었고, 검증할 수 있었고,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죠. 다만 코로나19로 변화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기에 지금 막 닥친 변화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난 것뿐입니다. 말하자면 코로나로 인해 ‘당겨진 미래’라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는 천천히 다가올 것 같았던 미래의 모습을 급격하게 우리의 삶 속으로 가져왔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빅데이터를 근거로 3가지 변화가 현실로 다가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당겨진 미래'로 인하여 우리 삶의 모습도 이에 맞추어 적응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신은 혼자 삽니다. 당신은 오래 삽니다. 당신 없어도 세상은 잘 삽니다." 이게 저자가 강조하는 미래다.


방향을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충실히 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생각을 먼저 하면 돼요.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테니까요. 그냥 해보고 나서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하고 나서 검증하지 말고, 생각을 먼저 하세요. ‘Just do it’이 아니라 ‘Think first’가 되어야 합니다. 그 생각의 자료 중 하나로 앞에 말씀드린 3가지 상수도 활용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코로나 기간 중에 나이키는 그들의 모토였던 '일단 그냥 하라(Just do it)'을 중단하였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시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저자는 이제 앞으로 다가올 사회에서는 먼저 생각하고 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저자는 미래의 신호를 잡아내기 위한 방법으로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이 읽다 보면 반복되는 패턴이 보이게 된다고 하였다. 더 많은 데이터를 읽어내는 것이 좋은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던 믿음이 하나둘 흔들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가치관의 액상화(液狀化, liquefaction)’라 표현합니다. 액상화란 지진이 일어난 후 지반이 약해져서 기존의 건물이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의 생각, 기저의 가치관이 마치 지진이 일어난 후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 변화가 다른 것도 바꾸기 때문입니다. 전제가 흔들리면 다 바뀌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저자는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에 대한 맹신을 넘어 자신의 가치관 역시 의심해 보라고 한다.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그에 맞는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변화를 얼마나 받아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나름 얼리어답터라고 자부해 왔던 삶이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신이 없어졌다. 익숙한 것이 편하고 좋아 과거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변화는 중립적이어서 그 자체가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준비를 해놨으면 기회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회 변화를 불평하는 것보다는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다면 각자는 더 먼저 가 있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옛날은 좋고 지금이 나쁘다고 한탄할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준비할 수 있을지, 우리가 지혜로운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옳을 듯합니다.


변화 그 자체는 현상이기 때문에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어렵다.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고민과 노력에 따라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변해야 산다'는 말이 대기업 회장이 직원들을 채찍질하기 위해서 하는 훈화말씀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같은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적응을 다른 말로 하면 현행화입니다. 즉 변화된 상황에 대한 현행화죠. 환경이 바뀌면 규칙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합의해서 만들어놓은 기존의 규칙이 있는데, 각자의 생각이 변화하면 생각의 합인 상식(common sense)도 변화하므로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죠.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현행화입니다. 이 모든 것에 적응해야 합니다, 그것도 평생. 우리 삶의 목표가 있는데 환경변화도 계속되므로, 그에 맞춰 꾸준히 전략을 수정하며 피보팅pivoting해야 합니다.


PC도 스마트폰도 OS와 앱을 계속 업데이트 하지 않으면 사용하기 어렵다. 구형 스마트폰의 전원을 몇 년 만에 켜보면 그동안 쌓였던 업데이트를 한꺼번에 하느라 즉시 사용하기 어렵다. 저자는 바로 이런 맥락의 현행화를 꾸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라니 부담스럽다.


우리가 기본적인 과학상식과 이성적 사고를 갖추게 되는 것이 제가 보기엔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것보다 더 큰 혜택 같습니다. 바이러스 퇴치가 생존의 차원에 머문다면, 지능화는 일상의 모든 의사결정 확률을 높이는 경로를 만들어주니까요. 즉 무얼 하더라도 생각하고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생각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모두의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기에 현생인류는 좀 더 현명해질 것입니다.


저자는 변화에 대한 개인 차원의 부담을 협력과 공존으로 연결하였다. 미래는 필연적으로 '공존'이 키워드가 될 것이며,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여 집단지성의 힘을 보여줄 것이라고 낙관하였다. 이러한 집단지성을 바탕으로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느낌이었다.


단계별로 증거가 남기 시작하면, 과정의 충실함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 투명성을 기반으로 성실함의 가치가 재정의될 것입니다. 무임승차자가 사라지고 일의 단계가 줄어들겠죠. 지금까지는 업이 각자의 기여가 모여서 분해되지 않는 공동작업이었다면, 이제 단계별로 분해되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앞으로 단계별 프로세스화가 더욱 가속화될 테고, 평가와 보상 또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지겠죠. 결국 규칙으로 가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단 막무가내의 규칙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테니 평가와 보상에 대한 항변도, 누군가의 강요나 순응도 통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저자는 미래는 결과를 단순하게 판단하는 세상이 아니라, 과정의 투명성과 타당성까지 판단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ESG가 바로 그 좋은 사례다. 소비자들이 단순히 싸고 질 좋은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윤리적인 문제는 없는지까지 들여다 보고 판단하는 일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왜냐 하면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특정 의미를 구현하고 드러내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절차적 정당성' 이슈는 점점 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진정성(authenticity)의 어원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결국 진정성 있는 행동이란 내가 의도하고, 내가 행한 거예요. 진정성과 투명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투명성의 가장 큰 이슈가 단계별 충실함이라면, 진정성의 가장 큰 이슈는 (단계별 충실함은 물론이고) 여러분의 의지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하는지 여부입니다. 즉 투명성이 절차적 완벽함을 묻는 QC(quality control)에 해당한다면 진정성은 의지(willingness)의 범주예요. 여러분이 그걸 원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투명성에 의해 관리될 수 있는 건 절차적 적합성이므로 성실함만으로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진정성은 주체가 추구하는 가치가 있는지, 그것을 위해 정해진 의무를 넘어 헌신하는지까지 올라갑니다. 그의 인생의 지향점이 정말 그 가치를 선호하는지까지 가는 것입니다. 즉 투명성이 해야 하는 의무라면, 진정성은 그것을 넘어서는 헌신의 문제입니다. 이제는 두 가지가 요구됩니다. 첫째,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둘째, 내가 직접 해야 합니다. 내가 해야 그에 따른 전문성과 주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발견되기 위해서라도 먼저 해야 하고, 오래 해야 합니다. 기존 방식의 조직과 시스템이 날 보호해줄 수 없기 때문에라도 더 긴 기간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일관성(consistency)이 중요합니다. 일관되려면 지향점이 한결같아야 하므로 그걸 설정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해요. 먼저 원을 그리고, 그 원에 내 활동들을 정합시키는 작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성장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서 훈장처럼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꾸준하게 현행화를 해야 하는데, 현행화에 필요한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 이성적 사고다. 데이터 리터러시, 통계적 해석능력,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능력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둘째, 업의 진정성이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진짜 자기 것이어야 하고 서로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셋째, 성숙한 공존이다. 이제는 서로가 배려하고 함께함으로써 공공선을 만들 수 있는 공동체가 요구된다.




그냥 하지 말고, 세상의 변화에 내 몸을 맞추는 과정을 성실하게 치러내시길 바랍니다. 성실은 의미를 밝히고 끈기 있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근면은 생각이 배제된 성실함이고요. 앞으로의 시대는 생각 없는 근면이 아닌 궁리하는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미 다가온 미래를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빅데이터 전문가라고 하면 사회적 트렌드를 읽어내는 기술자 같은 느낌이 강한데, 송길영 작가의 책을 연속해서 읽다 보니 기술자라기 보다는 철학자같은 느낌이 들었다. 구체적인 생존의 기술을 알려주는 일타강사라기 보다는, 전체적인 삶의 태도를 알려 주시던 학창시절의 학교 선생님 같았다. 끊김 없이 한 번에 쭉 읽히는 문장력도 인상적이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6화상상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