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만들어 봅시다.
단편 소설, 장편 소설, 대하 소설 등 소설의 틀을 구분하는 용어는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그 분류의 기준은 모르고 살았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후에는, 짧은 분량의 소설부터 시작하면 해볼만 하지 않을까하는 건방진 마음도 들었다.
단편 소설은 일반적으로 200자 원고지 150매 내외의 분량이다. 이보다 더 짧은 분량은 '엽편(葉篇)' 또는 '장편(掌篇)'으로 부른다고 한다. 나뭇잎이나 손바닥에 쓴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짧은 소설을 '초단편'으로 규정하였다. 저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문학계에 등단한 소설가가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글이 좋은 반응을 얻게 되면서 전업 소설 작가의 길을 걷게 된 사람이었다. 저자가 쓴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무언가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으리라 기대하며 책을 골라서 읽게 되었다.
초단편은 근본적으로 '사건'이 있는 이야기다. 사건이 있는 긴 서사를 최대한 압축적으로 그려낸다. 초단편을 쓸 때 유의할 점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초단편은 말로 할 때와 글로 읽을 때 드는 시간이 같다. 둘째, 초단편은 반드시 한 호흡에 읽는다. 셋째, 초단편 결말에는 반전이 필수다.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순식간에 몰입하고, 결말에서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는 것이 초단편 독서의 이상적인 흐름이다.
초단편 소설 작가답게 이 책의 저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초단편 소설을 쓸 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예를 들면, 인물의 캐릭터는 복잡한 것보다는 전형적인 것이 낫다거나, 독자들이 싫어하는 구조로 쓰여진 글의 사례를 제시하거나, 독자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거나, 대중성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인기있을만한 글의 주제와 재료는 어디서 어떻게 찾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세부적으로 안내하는 등 가이드북 같은 느낌도 들었다.
초단편을 쓰는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착상하기, 살 붙이기, 결말내기. 이 중 첫 번째 단계인 착상이 가장 쉽다. 심지어 즐겁다. 누구나 하루에도 수십 개씩 할 수 있다. 만약 착상이 어렵다면, 이렇게 가정해보면 된다. '내가 뒤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면?' 착상까지만 하면 뒷이야기를 대신 써주는 인공지능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마음가짐으로 착상에 들어가야 '미친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이 책은 초단편을 어떻게 쓰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안내하는 기술적인 매뉴얼에 가까웠다. 철저하게 대중적인 목적을 가지고 상품성까지 고려하며 글을 쓰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었다. 초단편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초단편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게 확 느껴질 정도로 간결하고 단도직입적인 방향으로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기술적인 부분의 안내서가 창작을 위한 글쓰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내가 기존에는 없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수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는 판단이 든다. 내가 잘 아는 세상의 이야기를 너무 무미건조하지는 않게, 소소하게 써 내려가면 어떻게든 시작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조금씩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