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 (100 meters ひゃくえむ. 2025)

그깟 달리기. 이렇게 다양한 의미 부여가 가능합니다.

by 김의진

정말 오랫만에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다. 극장을 가 본지는 벌써 몇 년이 되었고, 온라인 영화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서도 영화를 본지 오래 되었다. 시간이 날 때면, 영화보다는 더욱 고상하고 있어보이는 책을 읽는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이번에도 그냥 예능 프로그램을 대강 스킵하면서 보려고 로그인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추천한 애니메이션이 눈에 띄었다. 한 때 스포츠 영화와 스포츠 만화를 미친듯이 보고 편집하여 수업자료로 만들던 때가 떠올랐다. 100미터 달리기가 소재인 애니메이션이라니. 때마침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똑같은 병원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미국 의사는 진료를 하고, 일본 의사는 교훈을 주고, 한국 의사는 사랑을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렇다. 스포츠 소재 만화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에서 보이는 일본은 다소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지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일본 야구 만화에는 그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보다는 혼을 담아 던지는 투수에게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단순히 육체적인 재능과 압도적인 힘에 의한 경기보다는 놀라운 상상력과 진지함을 담은 다양한 기술이 난무하기도 한다. 일본 풍 스포츠 만화의 분위기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애니메이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스포츠 만화나 영화가 그렇듯이, 100미터라는 애니메이션에도 주인공 외에 주변의 인물들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가 다른 스포츠 소재 이야기와 가장 크게 구별되는 점은, 인물의 서사와 일상을 과감히 생략하면서 달리기 그 자체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라이벌은 무엇인가 부족하고 슬퍼보이는 아이였고, 최고의 육상 선수로 성장한 이후에도 우울한 캐릭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는 전혀 다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각 인물의 개별적인 서사를 몰라도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만큼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 아닐까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의 구조는 단순하다. 영원한 1인자는 없다. 유망주가 기존의 최강자에 도전하고, 하향세였던 2인자가 마지막에 꽃을 피우기도 한다. 주인공 역시 선수 생활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다시 달리기를 즐기는 모습을 되찾는다. 지나치게 진지한 대화들이 난무하여 어이가 없을 때도 많지만, 그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중년의 남성들에게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아직 도전하는 입장의 젊은이들보다는, 삶의 다양한 경험을 해 본 어른들에게 큰 위로와 공감이 되는 영화였다. 중학교 체육 수업에 활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깔끔한 내용도 딱 마음에 들었다.


스포츠는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가치를 인정받는다. 뭐니뭐니해도 그 중 최고는 '실패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패배의 씁쓸한 감정을 경험하고, 경기와 규칙을 존중하며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학습하고, 승자를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도 연습할 수 있다. 경기가 끝나면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한 점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고민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도 배운다. 우리 팀의 승리를 위해 좋아하지 않는 동료와 협력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것이 바로 스포츠를 통한 교육이다.


달리기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기도 하지만, 기록 그 자체에 도전하는 행위만으로도 큰 의미를 준다. 육상, 수영 등의 기록 경기는 단일 대회 안에서의 순위 경쟁도 재미있지만, 역사적인 기록에 도전하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다. 세계신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에게만 집중할 수도 있지만, 2위로 들어온 선수 역시 기존의 세계신기록을 경신했을 수도 있다. 하나의 레이스라도, 국가수준의 신기록에 도전하는 선수와 자신의 이전 기록에 도전하는 이 낮은 선수가 함께 할 수 있는 경기가 바로 육상의 달리기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러한 매력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스포츠의 세계에는 어렸을 때부터 은퇴를 앞 둔 지금까지 계속 최고의 자리에 있는 축구의 메시같은 절대적인 존재도 있다. 다만, 그가 GOAT로 추앙받는 이유가 역대 최고의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에는 평범하지만 저마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선수들이 있다. 일찍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들도 있지만, 늦게 피어도 아주 아름답게 찰나의 순간 밝은 빛과 향기를 뿜어내는 꽃들도 있다. 그래서 스포츠라는 문화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간만에 스포츠 그 자체의 매력에 집중하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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