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인류가 멸망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재난 영화는 무언가 엄청나다. 어떻게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너무나도 쉽게 죽여버리는 무서운 이야기지만, 그 무시무시함을 이겨내고 살아남는 짜릿함과 미래에 대한 희망도 있다. 대지진이나 화재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드웨인 존슨' 같은 캐릭터의 시원한 힘이 기대되는 장르이기도 하다. 자고로 헐리웃의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라면 이러한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점을 정확하게 알고 이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여 영화를 만든다. 재난이 주제가 아니라 재난을 소재로 하는 통쾌한 액션 영화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만든 재난 영화는 뭔가 다르다. 물론, '해운대'처럼 헐리웃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영화도 있다. 하지만, '콘트리트 유토피아'에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주인공을 죽여버리는 것처럼 우울한 결말의 영화가 더 많은 느낌이다. 깔끔하게 권선징악, 희망, 행복 등의 결말로 영화를 만들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인가하는 의심까지 든다.
이 영화의 감상평도 이러한 맥락의 논란이 많아 보인다. 뭔가 꼬고 또 꼬아서 메시지를 전달하여 영화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느낌이 들었다. 일부 평론가와 영화 전문가들이 다양한 해석을 해주며 그들의 클래스를 뽐내기도 하는 분위기다. 나처럼 그냥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끼는 관객들은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고, 이들에게 영화의 참 의미를 직접 설명해주겠다는 느낌이랄까.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재미와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생물학적으로 완벽한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 감정을 프로그래밍할 수 없어 시뮬레이션을 반복한다는 설정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에는 단순한 로봇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생식까지 가능한 생물학적 존재를 만들어낼 기술이 있었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알아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감정을 프로그래밍해주는 '이모션 엔진'을 완성해야 한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화에서는 과학적인 설명에는 전혀 공을 들이지 않았다. 단지, 인간의 감정을 AI가 학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시뮬레이션이 성공하여 이모션 엔진을 완성한 다음에 완벽해진 존재들을 다시 지구로 보내는 결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류가 우주선 어딘가에 생존해 있다는 것인지, 인류는 이미 끝나고 AI가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기 위해 과업을 수행한 것인지 설명도 없다. 너무나도 궁금하다. 그래서 인류가 멸망했다는 것인지. 내가 무슨 영화를 본 건지 멍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