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게스

맥락, 스토리텔링, 인지구조

by 김의진

맥락(context)에 관한 이야기를 뇌과학으로 접근하는 책이다. 맥락은 상황에 따른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예를 들면, 마스크는 사물이며 의학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구에 불과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 과거에 마스크하면 범죄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는 어두운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면, 코로나 시대 이후에는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게 위한 배려의 모습이 떠오르게 된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이야기를 특정 부분만 끊어서 문자 그대로 전파하면 엄청난 오해가 생겨날 수 있다. 말 한마디를 사실 그대로 옮긴다고 해도 그 의미가 그대로 전달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가장 많은 왜곡과 오해가 발생하는 분야가 바로 정치다. 정치에서는 말, 이미지, 상징성 등으로 형성되는 여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경우 상대 진영 인사의 말을 의도적으로 편집하여 활용한다. 이른바 의도적인 악마의 편집이 난무한다. 결과적으로 아주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맥락적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매일 뉴스를 보면서 체험한다.




저자는 뇌과학 분야에서 인정받는 저명한 인사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의 뇌 속 해마는 맥락 정보를 기억하고 이를 다른 기억 정보와 융합하고 연계하여 작동한다. 인간의 기억은 단순하지 않으며, 시간적 공간적 맥락 정보와 융합하여 저장한다. 그래서 특정한 맥락에서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억 정보가 있다고 말한다.


뇌의 자연스러운 작동 방식은 세상의 파편화된 정보들을 맥락이라는 뜨개질을 통해 하나의 패턴으로 엮는 방식입니다.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사회성은, 맥락 정보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른바, 분위기 파악을 잘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누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등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적절한 대화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려면,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감각을 통해서 정보를 받아들인다. 빛, 온도, 소리 등의 물리적인 정보는 감각 기관을 통해 인간의 뇌가 느낄 수 있다. 물리적인 정보가 변환되는 것이다. 하지만, 느낌이 있다고 해서 모두 유의미한 정보가 되지도 않는다. 차가운 느낌의 모든 것을 얼음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시각과 청각 등의 정보가 융합되어 하나의 기억을 형성하면, 다양한 느낌이 융합된 하나의 범주를 형성하게 된다. 처음에는 애매했던 감각적이고 파편화되었던 정보가, 다양한 기억과 융합되어 범주화된 정보 안으로 들어오면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판단한다. 바로 이러한 범주화가 뇌 기억 시스템의 핵심이다.


애매한 정보는 공포를 주기도 한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하는 는을 가리고 손의 감촉으로만 사물이 무엇인지 맞추는 게임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의 눈은 개구리-도마뱀-뱀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지만, 눈으로 보지 못한다면 미끈한 촉감으로만은 이것들을 구별하기 어렵다. 특히나 평소에 징그럽게 생각했던 물체의 느낌이 그대로 손 끝에 전달된다면, 우리의 뇌는 범주화된 지식 안에 있는 기억을 끄집어 내어 공포를 주기 마련이다. 우리가 살아가면 생각하는 모든 부분에 있어, 맥락적 정보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범주화, 즉 패턴의 완성은 일반화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면, 기억과의 유사성을 판단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점점 더 정교화된 범주화로 빠른 정보의 처리가 가능해진다. 반대로, 우리의 뇌는 받아들인 정보가 기존 기억과의 유사성이 없으면, 새로운 학습을 하도록 작동한다. 기존의 패턴에서 분리된 새로운 패턴을 만드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떠한 감각과 어떠한 사건이 연합되면 아주 오래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맥락 정보가 될 수 있다. 냄새와 기억이 연합되는 효과를 프루스트 효과라고 한다. 어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의 냄새와 비슷한 향기를 맡으면, 저절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군에 막 입대한 청년들이 기본군사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들었던 기상 음악은 당시의 느낌과 상황을 그대로 떠올리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의 원리다.


저자는 가장 좋은 기억 방법은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사건의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일화기억’을 가장 오랜 시간 기억할 수 있다. '서사(敍事, Narrative)' 정보는 시간의 순서대로 공간이 융합되어 기억된다. 사물과 사람의 복합적인 정보도 함께 어우러진다.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를 기억하기 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맥락 정보를 잘 설계하면 오랫동안 기억을 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형 재난을 경험한 사람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재난을 겪기 전의 일상을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전쟁을 경험한 군인이 지옥과 같았던 그 경험을 떠올릴만한 정보를 접하면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동기화된 기억을 분리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탈맥락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분야의 사례에는 스포츠 선수들의 훈련 방법도 있다. 일반적으로 ’연습을 실전처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 뜻이다. 연습 환경과 실제 경기의 환경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연습 때 최고의 기량을 보이던 선수가, 실전에는 그렇지 못한 이유가 ’탈맥락‘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다. 그 어떤 환경에서도 똑같은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며 연습하거나, 실제 경기와 동일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훈련하는 것이다.


때로는 의도적인 맥락의 범주화 수정도 이루어진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오랜 시간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 방식의 중 하나가 영어를 들리는 그대로 한국어처럼 말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All by myself~'라는 팝송의 한 구절을 비슷하게 들리는 우리말 ‘오빠만세~’라고 우긴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생각하고 들으면 또 그렇게 들린다. 정보를 왜곡하여 해석하도록 다른 맥락 정보를 연계하면 새로운 범주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세뇌의 방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때로는 위험한 목적으로 활용될 수도 있어 유의해야 한다.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은 단순한 지식과 사실도 맥락 속으로 들어오면 재밌는 스토리의 일부가 되어 의미를 갖게 됩니다. 전문가가 되는 과정은 곧 자신만의 이러한 맥락을 갖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나 자신의 전공이 아닌 현상에 대해 독특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전문가가 되는 과정에서 사물과 현상을 해석하는 독특한 맥락적 인지 구조를 뇌에 형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작가는 AI의 ‘상향식 맥락 추출 방법’과 인간의 ‘하향식 맥락 추출 방법’을 다음과 같이 대비하여 설명한다. 인공지능은 빅대이터를 기반으로 최대한의 양적 학습을 통해 맥락을 추출하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엄청난 속도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간은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범주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직관’이라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통찰력이 있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어떤 일을 마주했을 때,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난 일이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이른바, ‘직관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직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더 많이 책을 읽고 더 많은 경험을 하면서 배경이 되어주는 지식을 쌓는 것이 방법일 것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나만의 맥락적 정보 처리 방식을 가꾸어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