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생활의 즐거움

2세기 전에 지적 노동으로 먹고살던 사람들의 고민

by 김의진

2세기 전 지적 노동자가 주장하는 지적 생활의 즐거움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의 작가는 1834년에 태어난예술평론가다. '지적 생활(The Intellictual Life)'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지적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가장 고매하고 순수한 진리를 열렬히 추구해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지적 생활은 지적 노동이라기 보다는 예술과 인문학적 두뇌 활동에 관한 이야기다. 직업적으로 지적 노동을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인간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지적 생활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작가가 지적 생활을 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두뇌 활동을 활성화하려는 저명한 철학자들의 삶을 고찰해보면서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건강 관리 방법을 찾으라고 권한다.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면서도, 단순히 사건만 전달하는 신문 기사는 많이 볼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건강한 육체가 바탕이 되어야 지적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이밖에도 지적인 부분과 관련하여 다양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일일이 당부를 하기도 하며, 지적 생활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는 내용까지 다양한 형태로 글로 구성하였다.




지적 흥분과 집중은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웁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징후에 놀라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합니다. 따라서 신경과민은 지적 노동의 해악과 같은 결과물이 아닙니다. 자연의 선물입니다. 잠깐 휴식을 취하며 긴장을 풀고 몸에서 기운을 빼라는 가르침으로 여겨야 됩니다. 과민은 자연이 우리에게 베푼 정신치료인 셈입니다. 긴장된 상상력에서 잠시 떠나 몸과 마음을 천천히 회복시킬 때가 되었다는 충고지요. (중략)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장기간에 걸쳐 정신에 휴식을 부여합니다. 스포츠 등의 건전한 오락을 즐깁니다. 육체를 최선의 상태로 만들어놓습니다. 그러면 조급해하지 않아도 지적 생활의 대전제인 상상력이 자연스레 생성됩니다. 나는 이를 두고 ‘지성의 회복’이라고 부릅니다. 탈진한 두뇌는 스스로 자학 같은 정신노동에 달려들지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힘든 사고력을 요구하는 지적 노동과 피로를 한층 더 증대시키는 지나친 학업에 열광하지 않습니다. 두뇌도 몸의 일부분입니다. 근육이 그러하듯, 뼈와 장기가 그러하듯 지쳤을 때는 휴식을 원합니다. 이것은 자연의 본능입니다. 우리 안에는 자연의 본능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피로한 지성은 틀림없이 당신에게 휴식과 기분전환과 부족했던 육체활동을 요구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잠깐 동안만 지적 노동에서 벗어나 생활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정신적 피로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머리를 쓰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우리의 뇌는 적절한 타이밍에 필요한 신호를 보내준다. 두뇌활동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우리 몸 곳곳으로 피를 보내야 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작가는 바로 그 부분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하였다. 두뇌가 보내오는 신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에 큰 공감이 되었다.




두뇌는 우울할 때보다 싱싱할 때, 음침한 병에 걸렸을 때보다 건강할 때 명석하게 활동합니다. 건강은 운동하지 않고서도 한동안은 유지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달 동안 필사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도 운동에 시간을 할애한다면 그만큼 손해를 본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우리의 삶은 기나긴 시간의 연속입니다. 지금은 손해인 듯 보이는 운동이 한평생을 두고봤을 때 크나큰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지적 생활은 건강이 오랫동안 유지되어야만 가능합니다. 건강도 실력입니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는 지적 노동은 죽음과 직결됩니다.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고자 운동이라는 희생을 지불하는 것은 최상의 투자인 것입니다.


2세기 전에 살던 사람도 알고 있는 아주 기초적인 지식이지만, 좀처럼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 사회도 건강관리를 잘 하는 사람에 대한 선호도가 커지고 있어 다행스럽다. 수세기 동안 이 내용은 여러가지 연구를 통해 실증되었다. 학교의 기능이 지식의 전달에서 건강한 사회생활을 위한 기초 역량 함양으로 전환되면서 학교체육의 중요성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우리 학생들이 학교를 통해 평생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건강은 육체의 강건함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정신과 감성이 올바르 때 건강도 유지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인간을 괴롭히는 질병 중 태반이 피폐된 정신과 감성에서 싹트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건강에 유념하느라 정신과 감성을 상실한다면 가장 두려운 결과, 즉 건강한 몸으로 속절없이 사라져야 하는 참담한 운명과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학교현장의 화두 중 하나가 '사회정서교육'이다. 인구 감소 추세에 따라 학생 한 명 한 명이 더욱 소중해진 시대라서 더욱 그렇다. 생명존중교육을 넘어 보다 본질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보다 적극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 즉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은 아주 어려운 영역이지만, 현대사회에서 학교생활을 하며 반드시 학습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이다.




과거에는 육체적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여 건강한 삶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육체에 영향을 미쳐 삶이 피폐해지는 사례가 점점 더 많아지는 느낌이 든다. 내가 지적 활동을 통해 일을 하는 노동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2세기 전부터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살아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점이 아주 놀라웠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머리를 잘 쓰려면 더 잘 쉬고 더 많이 운동해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쉬운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