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소양: 지향유, 심향유를 넘어 전문가로서 직업이 되기까지
체육 또는 스포츠라는 이름의 대중성과 폐쇄성
'체육인'이라는 용어는 경우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작게는 운동선수 출신인 사람들을 비선수 출신인 사람들과 구분하기 위한 뜻부터, 크게는 종목별 경기단체의 장을 맡고 있는 정치인이이나 기업인까지를 아우르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래서 체육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전체적인 맥락을 반드시 고려하여 해석해야 오해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지극히 편협한 생각에 불과하겠지만, 내 시각에서 체육인이라 함은 현대적 개념의 '스포츠 리터러시(Sports Literacy: 운동소양)를 갖추고 운동향유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생을 특정한 스포츠 종목의 선수 또는 지도자로 살아온 사람들 중 일부에게는 선수 경력이 없는 사람들은 체육인이 아닌 '비선출'의 이방인일 뿐인 것 같다. 이러한 일부의 사람들에게 해당 스포츠 종목은 자신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며,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내부자가 되는 일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가장 대중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의 테두리 안에서, 철저한 구분짓기가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만의 언어와 우리만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는 세상 안에서는, 비록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다른 세상의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런 의미도 영향력도 줄 수 없는 것이다. 조심스러운 의견이지만, 언론을 통하여 접하는 스포츠계의 폭력과 각종 비위 등의 문제가 바로 여기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 될 수 있지만, 특정 종목의 선수를 꿈꾸는 청소년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제한된 그들만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시도교육청에서 인정한 학교운동부를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대한체육회에 선수등록을 마쳐야 공인된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여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나라 스포츠 현실에서 학생선수가 된다는 것은 인생을 건 선택이다. 시작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시작을 한 사람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 구조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일부라고 믿고 싶다.)이 가진 폐쇄성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생존의 위협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세상이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할수록, 그 세상을 지키기 위하여 더욱 폐쇄적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반적인 사회인으로서의 삶 보다는 폐쇄적인 그들만의 세상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사람들에게 그 경계가 사라진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 던져지는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문화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련된 산업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에 새로운 역할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기도 하며,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하나의 문화 현상이 전개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상현실 기술의 발전으로 생긴 ‘스크린 골프’라는 새로운 문화는 젊은 층에게 골프의 대중화를 이끌어냈으며, 인터넷과 방송의 융합으로 전세계 구석구석의 스포츠 경기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게 되면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른바 선수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더욱 많이 필요해지고 있으며, 과거와 같은 그들만의 세상 만으로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게 되었다. 학교 체육교육을 스포츠 리터러시(Sports Literacy: 운동소양)의 맥락으로 풀어보면, 지금까지의 능향유 중심 체육교육에서 지향유와 심향유의 비중을 점점 확대해 나가는 조화로운 체육교육을 지향해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매니아에서 전문가로, 전문 직업인의 삶으로
과거에도 그들만의 세상에서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량을 인정받았던 사람들은 존재했다. 학교교육을 통한 진로교육의 관점, 운동소양을 함양하는 체육 교과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어 왔다. 즉, 스포츠 문화를 누리면서 좋아하게 되었고, 좋아하다보니 전문성을 쌓게 되고 그 역량을 인정받아서 직업이 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스포츠 경기 중계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해주는 미디어 산업 종사자, 뉴스를 전달해주는 언론 산업 종사자, 경기를 이해하기 쉽게 해설해주는 사람들, 선수들의 권익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스포츠 에이전트 등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는 위성 생중계가 대중화되던 시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 프로 스포츠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걸어다니는 축구백과사전, '해외 축구의 아버지' 한준희 해설위원
한준희.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축구 관련 지식의 폭과 깊이에 있어서 대한민국 최고라고 평가받는 인간 백과사전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해외 축구 경기 중계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경기 중 잠깐 관중석에 있는 특정한 인물을 카메라가 화면에 잡는 경우가 있는데, 경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거나 현지에서 무엇인가 이슈가 되는 인물이 경기장에 방문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프로야구 경기장에 야구와는 관계 없지만 유명한 사람이 왔을 때 카메라가 비춰준다고 하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 누가 야구장에 왔네’라고 곧바로 알아챌 수 있지만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반대로, 해외 스포츠 경기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계방송하고 있다면, 대부분의 해설자는 이러한 장면을 신경쓰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 쉽다. 하지만, 한준희 해설위원은 ‘지금 현지에 어떤 이슈가 있어서 어떤 사람이 방문하였는데 경기장에 왔네요.’라는 식으로 친절하게 해설을 해준다. 물론, 이것은 그냥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연구하여 사전에 정리한 지식이라고 한다. 한 경기를 해설하기까지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하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다.
1994년 월드컵 이후 나는 AFKN을 통해 접하던 미국의 스포츠를 넘어, 유럽 등에서 펼쳐지는 해외 스포츠에 눈을 뜨게 되었다. 94~95년 쯤 위성방송이 시작되었는데,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KBS 위성방송에서 중계해주던 스페인 프로축구 녹화 중계방송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해설을 하시던 분은 정종덕(구 건국대 축구부 감독)이라는 분이었다. 바르셀로나의 로날도(브라질의 호나우도, 당시에는 영어식으로 읽어주었다.), 레알마드리드의 라울과 미야토비치 등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 캐스터나 해설자는 이 선수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정말 잘 하네요 정도의 멘트만 했었다. 경기 시작 전에는 그 선수가 누구이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주지 못하였고, 경기가 어느 정도는 진행되고 나서야 팀의 전술이나 선수의 특징 등을 설명해 주었다. 지금처럼 프리뷰를 위한 정보는 거의 없었고, 경기 후 리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컸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없으니 아무리 축구 전문가라고 해도 해외 축구의 정보를 파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즐기고 싶었지만, 용돈을 아껴 월간 축구잡지를 가끔 구입하여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상 없었다. 어느 날, 형이 PC통신 하이텔의 축구동호회에 자주 접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속에는 정말 어디서도 알 수 없었던 최신의 축구 뉴스들이 신속하게 공유되고 있었다. 너무나도 신기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저런 정보를 접하고, 얻는 것 하나 없이 저렇게 정성스럽게 글을 작성하고 공유할지 궁금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동소양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운동향유력,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초고속 인터넷이 대중화된 이후, 축구 관련 사이트들이 생겨났다. 2000년인가, 2001년인가 사커라인이라는 사이트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 곳에서 접하는 정보들은 정말 놀라웠다. 사실, 나는 그 사이트가 커뮤니티 사이트인줄은 몰랐다. 그냥 해외 축구 전문가들이 모인 새로운 인터넷 신문사라고 생각했다. 올라오는 글들의 수준이 이른바 메이저 언론의 스포츠 기사보다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특히 수준 높은 글들을 작성하는 사람들의 이름 중 정확하게 두 명의 이름이 기억난다. ‘사커라인 한준희’, ‘사커라인 서형욱’.
당시 케이블 스포츠 TV에서 모든 경기를 중계방송 해 준 것은 아니지만, 주요 경기는 녹화 또는 생중계로 중계방송을 해 줬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같은 큰 경기는 공중파 TV에서 새벽에 특별 생중계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200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레알마드리드의 지네딘 지단의 결승골, 전설의 그 발리슛을 생중계로 보면서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유럽 축구 경기의 해설은 한준희 아니면 서형욱 해설위원이 나누어 했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기자였기 때문에 놀라운 전문지식을 가지게 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축구 팬이었고, 매니아의 수준을 넘어 전문가로 인정받아 직업이 된 사람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하나의 상징적인 사례로 존재하고 있다. 한준희 이후에 축구 매니아 또는 기자 출신의 해설자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며, 그들 중 롱런하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스포츠 리터러시의 관점에서 제2, 제3의 한준희를 길러내는 것이 체육 교육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한준희 해설위원이 어떻게 전문성을 갖추게 되었고, 어떻게 인정받게 되었는지 어떻게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체육 교육, 진로 교육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준희 해설위원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한다.
1. 한준희 - 나무위키 검색 결과
https://namu.wiki/w/%ED%95%9C%EC%A4%80%ED%9D%AC
2. 2006년 월드컵 직전에 디씨인사이드(Dcinside.com)에 실렸던 인터뷰 내용
이 인터뷰는 2006년 당시에 스크랩 해 두었던 내용을 편집하여 PDF로 저장한 것으로, 2021년 현재는 해당 사이트에서 검색되지 않고 있다.
3. 2006.8.21. KBS 인터뷰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1207396
4. 2017.5.23. 유튜브 채널 ‘싸줄 TV’ 인터뷰: 축구 해설위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싸버지에게 물어봐
5. 2017.7.17. 유튜브 채널 'sellev' : 축구 해설위원 한준희 / 축구, 너는 내 운명
https://www.youtube.com/watch?v=M0h9x2Lj5pc
메이저리그를 대한민국에 소개하다. 송재우 해설위원.
축구에 한준희 해설 위원이 있다면, 야구에는 송재우 해설위원이 있다. IMF 사태로 대한민국이 움츠려 있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스포츠계에서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박찬호와 LPGA 투어를 휩쓸었던 박세리 두 명의 활약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미국과의 시차로 인하여 주로 오전에 생중계되었던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는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다. 야구의 본고장에서 벌어지는 최고의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는 우리에게 친숙한 프로야구와는 무엇인가 조금은 다른 무엇이 있었다. 그 다름이 무엇인지, 그들은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 메이저리그 야구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해설을 해 준 사람이 바로 송재우 해설위원이었다.
당시만 해도, 공중파 방송에서 해설을 하는 사람은 그냥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진정한 전문가라고 느꼈기에, 최소한 야구전문기자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고 시간이 많이 흐른 뒤까지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인가 야구 커뮤니티에 올라온 송재우 해설위원과 관련된 이야기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야구 팬이 야구가 좋아서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고 좋아하는 야구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새롭게 다가왔었다.
송재우 해설위원이 참여하는 메이저리그 경기의 중계방송과 그가 참여하지 않는 경기의 중계방송은 완전히 다른 문화 콘텐츠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에 일반적인 경기는 정지원 캐스터와 송재우 해설위원이 맡은 경기가 많았고, 박찬호 선수의 경기는 야구선수 출신의 해설위원까지 더한 3인 중계 체제였다. 선수출신만이 느낄 수 있는 경기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해설도 중요하겠지만, 경기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 주는 것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정확하고 편안하게 설명해주는 전문가의 존재였다. 송재우 해설위원 이후에, 인터넷 칼럼을 통해 놀라운 전문성을 보여준 김형준 기자 역시 비슷한 케이스였던 것 같다. 스포츠를 정말 좋아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몰입하고 연구하는 전문가가 되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https://namu.wiki/w/%EC%86%A1%EC%9E%AC%EC%9A%B0
https://www.youtube.com/watch?v=Y2ughHEGd3Y
최고의 프로레슬링 전문가, 성민수 해설위원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한 때 미국 5대 프로스포츠로 구분되기까지 했던 스포츠가 바로 프로레슬링이었다. 지금의 40대가 어린 시절, 1980년대 AFKN에서 보며 즐겼던 WWF 프로레슬링 경기는 부침을 거듭하며 성장하다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사이(이른바 'attitude era')에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영화배우가 된 '더 락(드웨인 존슨)'과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이 보여준 퍼포먼스와 더불어 레슬링이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있는 스포츠라고 비난을 받으며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왔지만, 수 많은 미국 사람들은 프로레슬링을 그 자체로 즐기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가 아닌 성인들이 하나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로 프로레슬링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에는, 전문적인 해설위원의 등장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프로레슬링은 이야기와 갈등 관계를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독특한 구조, 즉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프로레슬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번역을 했다면 본질적인 재미를 이끌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시기에 프로레슬링 관련하여 독보적인 지식을 자랑하며, 직접 번역을 하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콘텐츠의 질을 높여주었던 사람이 바로 성민수 해설위원이다. 그의 이력은 매우 독특한데, 대기업 직원 또는 한의사라는 본업이 따로 있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삶을 풍성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프로레슬링 해설을 한다고 하였다. 프로레슬링이 과거와 같이 인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때 프로레슬링 콘텐츠의 질을 향상시켰던 성민수 해설위원의 이야기는 참고할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https://blog.naver.com/tripleh16z/220632129456
https://topclass.chosun.com/mobile/board/view.asp?catecode=L&tnu=200706100007#_enliple
운동 선수로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는 (종목마다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의 체계적인 준비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따라서, 특정한 스포츠 종목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드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탐색하며 직업을 결정하는데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선수와 비선수의 이분법적인 시각을 넘어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하나의 방향 안에서 더욱 많은 상호작용이 일어나 더욱 많은 직업적 사례들이 많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