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참신한 직원이 들어왔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이제는 나보다 어리면 '참신'하다.
사무실 분위기가 홍홍하며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이만큼 늙은 처지를 잠시 잊던 차
팀장이 불렀다.
"차장님, 저 친구 일 좀 가르쳐주시죠?"
"제..가요?"
두렵고 더럽고 당황스러운 얼굴로
'내게서 배울게 뭐가 있다고'를
묵음으로 처리하는 중
이미 '참신한'이 바짝 붙어 인사했다.
'뭐지, 이 날렵함?!'
팀장은 앞가림도 못해
매일 한숨에 머리 뜯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 걸까, 꼴 보기 싫었던 걸까.
나는 그와 참신한을 번갈아보며
입 밖으로 나오려는
거친 말을 삼키느라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조만간 팀장으로 나갈 사람한테...'
'말년 병장한테...'
'좀 쉬고 싶은데...'
점점 서운함과 섭섭함과
막막함과 답답함이
서서히 분노로 변해갈 때
참신한이 다가서며 90도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발령받은 '참신한' 입니다"
입사 3년 차.
일잘러로 소문난 직원.
그동안 견적을 보면
기댓값은 실망값과 비례했기에
애당초 '일잘러' 따윈 귀에 넣지 않았다.
"보고서 쓰는 법부터 좀 가르쳐주세요."
내 말의 한 호흡 먼저 치고 들어오는
팀장의 끼어들기에
나는 살며시 눈을 감고
손을 들어 화답했다.
"보고서는 좀 써봤어?"
질문이 틀렸다.
영업점에서 온 친구에게
미안한 물음이었다.
"커피 한잔할까?"
일주일간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냥 옆에 앉혀놓고
내가 하는 일을 보게 했다.
어깨너머로 배우든
따라서 써 보든
책을 펼쳐놓고 비교를 하든
그냥 자기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간단하지만
꼭 필요한 일감 하나가 생겼다.
숫자만 적어서 내게 주면
참신한이 할 일은 끝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하자
책상 위에 A4 한 장이 놓여있었다.
하단을 보니 참신한의 사번이 찍혀있었다.
"이렇게 빨리?"
속도에 흡족하던 찰나
놀라움을 목격했다.
참신한은 내가 쓰던 보고서의
표를 나름대로 따라해 그 안에
내가 필요한 숫자와 산출근거,
심지어 관련 법령까지 넣어 놓았다.
이런 ...
'참신한' 친구를 봤나.
불러다 앉혀놓고
몇 달을 가르쳐도 진척 없던
과거 실패작들을 떠올리면
참신한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반가움이었다.
나는 격한 칭찬을
사정없이 날렸다.
바짝 쫄았던 참신한은
내 칭찬에 몇 초간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눈물을 글썽거렸다.
울어?
뭐야?
칭찬하면 춤춘다며?!
춤은 안 추고 왜 울어...
연출이야 진심이야, 뭐야!
또로록 흘리지는 않았지만
그렁그렁 맺힌 게 맞았다.
아니, 이게 지금 울 일인가?
혹시 나의 칭찬을
혼내는 것으로 착각하는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드는데
참신한이 답했다.
"차장님, 감사합니다..."
3년간 일하면서 담당 책임자에게
단 한 번도 칭찬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장 그 책임자
이름을 대라 다그쳤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리액션이었지만 그것마저 좋았나 보다.
사람을 못 알아본 것이든
그만한 능력이 안된 것이든
원래 칭찬에 박한 사람이든
뭣중 하나였다.
도대체가 어떤 녀석이었길래
이토록 스마트한 친구에게
얼마나 칭찬을 안 해줬으면
나의 몇 마디에 눈물이 고이나.
좀 미안하지만 우연을 의심하며
다시 한번 테스트를 했다.
여지없이 1+1 아웃풋으로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나는 백사장에서
24K 금을 주운 것 마냥
신이 났다.
내가 춤추게 생겼다.
이런 훌륭한 인재가
제 발로 나를 찾아오다니.
감사의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인생 칭찬을 또 한 번 뿌렸다.
몇 마디 했다고
내 일을 다 가져갈 태세였다.
칭찬이 원래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나.
나날이 놀라움의 연속이다.
참신한 덕분에
지루하던 내 회사 생활이
좀 참신해졌다.
아무튼 고마워!
참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