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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르르 Brr Apr 02. 2020

험담이 카더라 바이러스로 변할 때

가족도 배신하는 세상, 누굴 믿을래?

한 번 발을 담그면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스토리는 가공과 각색을 거쳐 누군가를 해치고도 남을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합니다. 인사위원회에서 억울하다 아무라 핏대를 올려도, 그건 징벌 수위 좀 낮춰달라는 초라한 읍소에 불과합니다.

온 나라를 발칵 뒤집었던 비트코인 버블의 힘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수학적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가상의 통계에서 만들어진 스토리였습니다.

투자자들은 상상을 자극하는 멋진 스토리로 입을 털었고 마침내 3000억 달러의 가치로 만들었죠.

예일대 경제학과 로버트 실러가 <내러티브 이코노믹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경제를 움직이는 힘은 데이터가 아니라 이야기라는.

 

스토리의 파워는 무섭습니다. 잘못 만들면 추락도 한순간입니다. 그것은 생물처럼 진화해 어느 순간 거대해져 나를 집어삼키죠.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면 좋을 텐데 이상하게 그런 내용은 생명력이 짧습니다. 잡초처럼 자생력이 강하고 끈질긴 스토리는 대게 누군가를 까고 밑으로 잡아당기는 험담 성향을 가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눈앞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누르는 맛에 탐닉의 마수가 유혹하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중독되어 발을 뺄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스스로 회개하며 제자리로 돌아와 본들 이미 늦었죠. 그들만의 비밀 이야기에서 나온 험담이 카더라 변종 바이러스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는 전염병처럼 퍼져 닥치는 대로 사람들 몸속을 파고듭니다. 나는 본의 아니게 폭풍을 만들어낸 근원지가 되고, 곧 다가올 더 큰 후폭풍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인사부는 자타가 공인하는 파워가 있습니다.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신입이었을 때는 인사부가 동경이었는데 직장 10년 차를 넘어보니 가지 말아야 부서 중 하나가 됐습니다. 정보만큼 남들이 모르게 진행해야 하는 일들도 많기 때문이죠. 채용, 발령, 승진, 징벌 등등.

저 끝자락에 걸린 징벌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낱말입니다. 벌을 주고받는 것은 싫거든요.

잘못을 하지 않아도 본의 아니게 어떤 사건에 휘말리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같은 직원인데 내 앞의 인사부 직원이 검사처럼 굴어 불편합니다.

 

저를 참 많이 혼내주셨던 옛 팀장님이 똥파리가 꼬이는 곳에 가지 말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1년, 2년 지나면서 차츰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예측불허이다 보니, 노랗게 될 싹은 틔우지 않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길입니다. 업무는 도전하고 싹을 키우는 게 맞지만, 음습하고 우울하며 별로 달갑지 않은 주제를 주로 다루는 (좋아하는 것인지 습관인지 알 수 없지만) 무리와는 교류를 삼가야 합니다.

 

스토리를 제조하고 변형시켜 나르는 사람들인지 모르고 식사 자리에 응한 적이 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다음으로 미뤘을지도 모를 정도의, 커리어가 가득한 무리. 얼마 후 구린 소문이 돌며 이상한 눈길이 저를 스치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똥파리 철학의 팀장님이 부르셨습니다.


"너, 000이랑 밥 먹었어?"

"네? 네..."


보고를 하지 않아도 그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사람이 제주도 가서 점심을 먹지 않고서야 그 일대에 돌아다니는 누군가에게 목격됐을 확률은 100%죠. 그 뒤는 어떤 내용일지 예상되실 겁니다. 구린 소문의 진상은 제가 남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 오해는 소멸됐습니다만 인사이동과 승진에 관한 민감한 이야기가 여직원들 사이에 퍼지며 그야말로 난도질당할 뻔한 매우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직장인이란 업무 하기도 바쁜데 별걸 다 신경 써야 하는 운명입니다.  


단지 함께 밥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만들어진 오해였지만 촉발의 진원지가 됐다면, 또 그것이 어떤 특정인의 험담으로 이어져 카더라 바이러스로 변질됐다면 저는 <그것이 아닙니다> 해명하는 정도로만 끝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나친 과장이라 생각되시나요.

인사부에서 징벌을 주던 동기의 이야기에 따르면 정말 별의별 이야기가 다 접수된다고 합니다. 실상은 훨씬, 아주 훨씬 더 하다는 것이죠.

동기는 지하세계에 떠도는 정보를 받아 진상을 파악하고 기록해 벌하는 업무였습니다. 엮이면 어떤 형태로든 자국은 남습니다. 좋을 게 없죠.
 

예방은 가능합니다.

직장에서 대상이 누가 됐든 험담은 무조건 No.

험담을 일삼는 무리를 알게 된다면 어울리지 않는 것이 상책.

모르고 섞였거나, 섞인 후 알았다면 주제를 돌려야 합니다. 어렵다면 응하거나 대꾸하지 말아야겠죠. 최후 변론에서 동석한 사람들을 향해 당당히 말할 수 있으려면 말입니다. 이 정도는 그간의 자기 계발 서적에서도 봄직한 팁입니다.


좀 더 리얼리티를 더하자면, 내 앞의 누군가 예민하고 민감한 성격의 이야기를 <친하니까, 믿으니까> 한다는 전제성 발언으로 시작하려거든 정확하고 소상히 기억해두세요. 자신 없다면 녹취로 가야 합니다.  


너무 비정하고 잔인한가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사시 만약을 위한 대비라고 해두죠. 직장 친구가 아닌 직장 동료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익을 위해 모인 일터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사람은 나와 나만 바라보는 가족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베스트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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