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자살 유가족으로 세상에 나아가며(1)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나는, 오빠의 죽음을 직면하는 게 두려웠어. 그래서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어. 그 위에 자꾸 뭘 덧입혔어. 상처 위에 반창고를 붙였던 건,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상처를 안 보려고 그랬던 거 같아. 그러면 괜찮은 것 같아서, 없던 일이 된 것 같아서. 그런데, 이제는 용기를 낼 거야. 상처를 가리기 급급했던 반창고를 떼어내고,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고, 거기에 알맞은 약도 발라주고.
합격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진 않았다.
시험에 합격하고 얼마간은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축하 속에서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침울해 있던 가족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며 얼마간은 가족들의 분위기도 좋아졌고, 오빠와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뿌듯함에 행복했던 나날들이었다. 오빠의 죽음과 함께 모든 연락을 끊어냈던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던 소중한 친구들에게 나 결국엔 해냈어, 하며 소중한 이들 앞에 홀가분한 얼굴로 나타날 수 있었다.
수험기간에 나를 붙잡아주었던 건, 시험 합격이 가족들에게 가져다줄 희망과 오빠와 한 약속이었다. 합격만 한다면 많은 것들이 해결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니 실은, 합격만 한다면 지금 나를 괴롭히고 있는, 그리고 우리 가족을 괴롭히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희망과 믿음은 철저히 ‘수험생’의 입장이었다. 내 삶이라는 책에서 ‘수험생’은 하나의 챕터에 불과했다. 그저 한 챕터의 마무리일 뿐이었다. 그리고 가족의 삶이라는 책에서 내 합격은 한 문단으로 정리될 작은 ‘사건’에 불과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동시에 가져오는.
합격이라는 결과는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결과로 가족 사이 다양한 입장 차이가 발생했다. 내가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서 좋은 결과를 낸 게, 아직 슬픔 속에서 힘들어하던 언니에게는 부담으로 다가갔다. 언니도 하루빨리 슬픔을 딛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하지만 언니의 상처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들은 그런 언니에게 더욱 조급함을 느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언니를 재촉했다. 그것들이 언니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그 또 다른 상처는 또다시 가족에게 부메랑이 되어 상처를 만들었다. 내 합격이 가족에게 봄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었다. 공무원 시험 합격은 내게는 분명 봄의 단초였다. 하지만 언니에게는, 그리고 남은 가족들에게는 시린 겨울의 또 다른 단초였다. 내 합격이 사랑하는 언니의 목을 조여간다는 사실이, 가족의 불화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비참했다. 이런 결과를 위해 나는 그토록 처절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완벽하게 좋은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간과했다. 세상에 완벽하게 좋은 일은 없다. 세상 모든 사건들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함께 가져온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건으로 인해 주어진 좋은 결과에 집중하며, 발생한 나쁜 결과는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치열했던 수험생활을 막 끝낸 나와, 아직 오빠의 죽음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던 가족들에게는 그런 것들을 곱씹어볼 여유가 없었다.
내 합격이 초래한 가족들의 조급함, 그리고 그 조급함이 만들어낸 불화들을 다독여야 했다. 이번에도 비참한 내 감정보다는 가족들 개개인이 갖고 있는 감정과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사정이 더 중요했다. 속상한 내 마음은 눌러두고 가족들을 위로했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각자만의 속도가 있지 않냐고.
모든 일에는 자연의 순리가 존재한다. 유선경 작가님의 <감정어휘>라는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맺음이 끝이 아니라 풀어주는 것까지가 끝이다. 풀어줘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새싹을 내는 봄, 열매를 달구는 여름, 열매를 맺는 가을, 모든 잎과 열매를 다 풀어버리고 나서 이듬해 봄을 준비하는 겨울. 맺히는 것이 있어도 풀 수 있다면 얼마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다.(유선경, <감정어휘> 61p 발췌)”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결실이었다. 내 시간, 내 감정, 오빠에 대한 애도. 그 모든 것들을 쏟아내고 얻어낸 결실이었다. 그 결실 끝에는 풀어주기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 결실을 제대로 풀어낼 수 없었다. 그 무엇 하나 정리되지 않았던 가족들의 상황 속, 나는 내 결실을 부정했다. 결국, 또 너는 너만을 위한 길을 택한 것이냐고.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여기는 감정마저 내게는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탐스럽게 맺은 결실들은 내 안에서 그렇게 썩어 들어갔다.
풀어주지 못한 것들의 무게
‘오빠의 자살을 겪었던 수험생활’이라는 챕터가 끝나고, ‘자살 유가족으로서의 첫 사회생활’이라는 챕터가 새롭게 펼쳐졌다. 익숙했던 지역과 가족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새로운 환경 속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맺혀있었다. 풀어내지 못한 이전 챕터의 무게와, 새롭게 시작된 챕터의 무게가 동시에 나를 짓눌렀다. 처음 내딛는 사회생활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내 온 에너지를 쏟아내도 해결되지 못하는 것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사회생활에 온 에너지를 쏟기에는, 여전히 나에게는 내가 이끌어가야 할 나의 삶이 남아있었고, 죄책감으로 얼룩져버린 책임감이 가득한 가족의 삶이 남아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는 결실을 풀어낼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의 상황이 어떻든 내가 만들어낸 성과들을 수확하고 다음 해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나를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맺혀있는 것들의 무게에 버거워하는 나를 외면했다. 그리고 자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부모님은, 언니는, 그리고 그걸 보고 있을 오빠는. 나조차 내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에 버거워하면서 그들의 무게를 대신 짊어지려고 했다. 그때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 최선들이 점점 내 목을 조여왔다. 죄책감에 얼룩져버린 사고는, 내게는 작은 행복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오빠의 죽음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의 무게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행복은 남아있는 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되었고, 불행은 떠나간 오빠에 대한 죄책감이 되었다.
앞으로 나갈 수도, 그렇다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벼랑 끝은 시험에 합격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자살 유가족으로서 세상에 나아가며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가족을 제외하고는 내가 유일했던 독학생의 수험 기간. 오빠와 나에게 수없이 물으며 오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나는 오빠의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만의 답을 찾아갔다. 그 시간을 거치며 꽤 많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나와 오빠에게 물으며 내렸던 답들을 통해서 나는 오빠의 죽음을 꽤 많이 극복했다고. 이제는 세상에 나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빠 죽음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아간 것과 자살 유가족으로서 세상에 나아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에는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가족과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솔직하게 그간의 내 시간을 설명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는 숱한 사람들에겐 그 솔직한 대답을 할 순 없었다. ‘자살’과 ‘자살 유가족’을 향하는 세상의 시선이 두려웠다. 그리고 오빠의 죽음을 그 사람들에게까지 ‘설명’ 해야 하는 게 싫었다. 그냥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게 속이 편했다.
오빠를 떠나보낸 이후의 수험기간 동안 세상과 연락을 끊었고, 내가 살던 지역과 무척이나 떨어진 지역의 지방 공무원을 택했다. 그 선택들에 대해,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무수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왜 잠수를 탔는지, 그동안 뭐 하고 지냈는지, 연고 없는 타지에 왜 지원한 건지. 솔직한 답은 가슴에 담아두었다. 오빠의 죽음 이후로 내 내면은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연락하기 싫었다고. 그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조차 내게는 너무 큰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오빠가 죽은 이후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엄마와 아빠의 원래 가족들은 모두 내가 지원한 그 지역에 있다고.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 엄마 아빠가 노년에는 원래의 가족들과 지금의 가족들 사이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내게는 연고가 없는 지역이지만 우리 엄마아빠의 연고지라고. 내가 그 지역에서 자리를 잡으면 엄마아빠가 은퇴 후 그 지역에 자리할 테고, 그러면 엄마아빠는 원래의 가족과 지금의 가족 사이에서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직장 생활을 하며 새롭게 만난 사람들도 무수한 질문을 쏟아냈다.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냐며. 나머지 가족들은 어디 있냐며. 오빠도 이 지역으로 옮길 거냐며. 연고도 없는 이 지역은 어쩌다 선택했냐며. 어린 나이에, 내 학벌에 9급 공무원은 아쉽지 않냐고. 무례한 질문들은 아니었다. 그냥 처음 만나는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할 질문들. 그리고 나라는 명사 앞에 붙은 형용사들를 보면 생겨날 궁금증들이었다. 하지만 그 궁금증마저 내게는 버거웠다.
오빠는 어디에 있든 내 마음속에는 살아있는 존재였고, 어디에 있는 나와 함께한 존재였기 때문에, 그리고 가족 관계를 말할 때 오빠를 뺀다면 우리 가족에서 오빠를 지워버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다섯 명이라고. 부모님과 오빠, 언니, 그리고 나라고 대답했다. 언니와는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내 일상을 이야기할 때 언니와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녹아났다. 하지만 오빠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오빠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했다. 오빠는 어디 사냐고, 뭘 하는 사람이냐고. 왜 오빠는 이 지역으로 옮기지 않냐고. 실은 나도, 오빠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요. 그저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든,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밖으로는 꺼내지 못한 마음의 대답들이었다. 그저 남들이 보기에 적당한 대답을 골라 꺼내보였다.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는 거짓말쟁이가 되기를 택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만들어냈다. 차라리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게 속이 편했다. 안 지도 얼마 되지 않고, 어쩌면 평생 봐야 할 이들에게, 그리고 타인의 약점이 가십이 되는 사회에서 오빠와 관련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꽤 비참했고, 오빠에게 미안했다.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자살 유가족으로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로써 살아가는 무수한 시간 속 상황을 개선해 줄 터닝 포인트 같은 일들은 분명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상실의 아픔을 모두 해결해주진 못한다. 그저 그 아픔을 딛고 살아갈 수 있는 작은 힘을 주는 것일 뿐이다. 소중한 이를 상실한 일이 없던 것처럼,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남아있는 우리는 그저, 그 아픔을 간직한 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뿐이다.
3장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다. 2장에서는 오빠의 죽음을 겪고 나서의 수험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오빠의 죽음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면, 이번 3장에서는 그 생각들을 간직한 채 세상에 나아가며 경험한 것들과 생각들을 풀어내고 싶다.
수험 생활 동안은, 내가 이뤄낼 합격이 상실의 아픔들을 모두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 수 있을 거라고, 모두 괜찮아질 거라고, 오빠의 죽음을 겪기 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바람은 오만이었다. 소중한 존재가 없어지면, 그 빈자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저 남아있는 내가 편하자고 상실의 존재의 빈자리를 지워버린다면, 그와 함께한 시간들마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떠나간 이가 남아있는 이들이 그리워 찾아올 때, 돌아올 자리마저 없어져버리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있을까. 소중한 존재의 부재는 마음에 꽤나 깊은 흉터를 남긴다. 그 흉터를 지워버린다면, 오빠가 떠나며 내게 남기고 간 의미들마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흉터를 가지고 괜찮게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방법뿐이다.
내가 내렸던 결론에, 소설 속 문장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상처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피해자처럼 행동하거나 필요 이상의 기도와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피해를 입었다는 감정은 병을 덧나게 할 뿐이다.
캐롤라인 미스, <영혼의 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