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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08. 2024

그렇게 결국은, 시험에 합격했다.

제2장. 무너져도 될 이유보다, 무너지면 안 될 이유가 더 많아서(5)

떠나간 이들을 위해, 남겨진 이들에게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밖에는 눈이 와. 옥상에서 가만히 눈을 보는데, 문득 눈처럼 하얗던 오빠가 생각이 났어.

그때, 오빠도 나와 같은 눈을 보고 있었을까.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신동엽, <산에 언덕에>



그렇게 결국, 시험에 합격했다.


오빠가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날들

 오빠는 매달 내 꿈에 나왔다. 수험기간 내내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다른 가족들의 꿈에는 나오지 않던 오빠였다. 나와도 얼굴이 보이지 않은 채, 실루엣만 나오거나 뒷모습만 나오거나. 그렇게 다른 가족들에게는 얼굴을 비추지 않는 오빠였지만, 내 꿈에서는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내가 오빠에게 간절히 매달렸던 건지, 아니면 오빠가 내 곁에 머물러줬던 건지. 유독 내 꿈에만 나왔던 오빠였다. 꿈의 내용은 매번 달랐지만 비슷했다. 오빠가 우리 곁에서 사라졌지만, 결국엔 다시 돌아오는 맥락. 꿈과 현실 그 사이를 더듬으며 잠에서 깨면 오빠가 죽은 현실이 꿈만 같았다. 오빠가 내 옆에 있던 그 꿈이 오히려 현실 같았다. 잠시 떠나 있을 뿐이라고, 언젠간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의식이 선명해질수록 오빠가 없는 현실 또한 선명해졌다. 오빠가 없어진 현실은 허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에 남겨진 나는 오빠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했다.  

 스터디 카페를 가는 길에도, 잠깐 쉬려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도, 밥 먹으러 갈 때도,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지갑 속 오빠의 영정사진을 꺼내보았다. 영정사진 속 오빠는 언제나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매번 다르게 느껴졌던 오빠의 미소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날에는 ‘기특하네. 우리 동생’하고 격려해 주고 있는 것 같았고, 공부하기 싫어 집으로 도망갈까, 고민하던 날에는 ‘짜식, 이것밖에 못 하냐?’하고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오빠한테 미안해서, 오빠가 보고 싶어서 울고 있던 날에는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어른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항상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 속 오빠였지만, 그 미소는 매번 다른 말을 해주는 듯했다. 그런 오빠를 보고 있으면 현실에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오빠가,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고, 또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나를 언제나 지켜봐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오빠에게 나도 열심히 대답했다. ‘오빠, 오늘 좀 짱이지?’, ‘오빠, 난 무너지지 않아. 나 더 할 수 있어.’, ‘괜찮아질게. 슬퍼하지 않을게.’ 그리고 매번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오빠,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있어.’ 그렇게 대답하고 있으면 오빠의 미소는 ‘그래. 알겠어.’라고 답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매일, 오빠에게 칭찬을 받고, 응원을 받고, 위로를 받으며 힘을 얻었다.


혼자만의 다짐이, 지켜보는 이가 있는 약속이 되었던 날

 합격을 자신하며 시작했던 두 번째 시험 준비였다. 힘들었지만 자신 있게 나아가던 날들이었다. 도중 오빠의 죽음을 겪으며 크게 흔들렸지만, 합격해야 하는 더 큰 이유가 생긴 채 다시 공부를 이어갔던 날들이었다. 씩씩하게 다시 일어서 하늘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던 날들이었다. 물론, 희미한 바람에도 흔들리던 갈대 같은 날들이었다.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그래도 뿌리 뽑히지 않는 갈대 같은 날들이었다. 흔들리고 흔들릴수록 바람을 맞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 바람에 몸을 맡기며 쓰러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단단해지고 있었지만, 시험이 다가올수록 두려웠다. 준비기간도 짧았고 별생각 없이 봤기에 별 긴장이 안 되던 첫 번째 시험과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했고, 합격해야 하는 필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혹여나 불합격하면, 그동안 꾹꾹 욱여넣고 외면해 왔던 감정들이 터져버릴까 두려웠다. 내가 불합격해 버리면 다시 일어나려고 애쓰며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가족들의 희망이 다시 한풀 꺾여버릴까 봐 무서웠다. 애써 다시 쌓아가고 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까 봐 두려웠다.

 두려움 속에서 마지막까지 내가 붙들고 있었던 건, 마지막까지 날 지탱해 준 건 오빠와의 약속이었다.

 2021년 1월 1일. 새해를 맞아 홀로 오빠가 있는 추모원을 찾아갔다. 스터디 카페를 가는 척, 조용히 검은색 후드티와 검은색 면바지를 챙겨 입고 집을 나왔다. 모두가 새해를 맞이하며 희망에 들떠있는 오늘. 여전히 2020년에 갇혀있는 오빠와 함께 있어 주려고. 추모원 입구에서 오빠를 위한 국화를 사고, 오빠의 유골함 앞에서 한참을 있었다. 한참 동안 두 손에 쥔 국화에 내 다짐을 새겼다. 지켜봐 달라고, 해내 보이겠다고. 오빠에게 자랑스러운 동생이 되겠다고. 가족에게, 그리고 오빠에게 꼭 좋은 소식을 가져다줄 거라고. 오빠를 위해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치열하게 공부해 시험에 합격하고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것밖에 없다고. 그래서 오빠가 그곳에서 걱정하지 않고, 미안해하지 않고 평안이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오빠에게는 평안을, 가족에게는 따뜻한 봄날을 가져다주고야 말겠다고. 계속해서 돼 내인 다짐이 담긴 꽃을 오빠에게 건넸다.


 혼자 돼 내일 땐  다짐이었지만, 그걸 오빠에게 전한 그 순간부터 그건 약속이 되었다. 오빠는, 내가 전한 다짐을 받아줄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 다짐을 지켜봐 줄 사람이니까. 오빠에게 무엇을 약속했던 기억이 까마득했다. 아주 어렸을 때 빼고는, 오빠와 무언갈 약속해 본 적이 없던 것 같았다. 너무 오랜만에 건넨 약속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내 건 이 약속을, 꼭 지켜내고 싶었다. 관계의 기본은 신뢰고, 신뢰의 기초는 약속을 지키는 거니까. 오빠에게 건넨 새해 선물은, 하얗게 피어난 국화꽃 한 송이와 씩씩한 약속이었다.


오빠한테 ‘여전히’ 자랑스러운 동생이고 싶었다.

나에게로 향하는 오빠의 시선은 ‘그래서 뭐’였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랬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오빠의 칭찬을 기대했다. 나 이걸 해냈어, 나 이만큼 해냈어. 내가 이뤄낸 것들을 오빠에게 무심한 듯 툭툭 건넸다. 워낙 탁월한 재능으로 워낙 탁월한 것들을 이뤄냈던 오빠에겐 별 감흥이 없었던 건지, 오빠의 반응은 언제나 시큰둥했다. 왠지 오빠가 보내는 시선은 ‘그래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나 내가 이뤄낸 것보다 더 높은걸, 더 좋은걸, 더 대단한 걸 이뤄냈던 오빠이기에. 그런 오빠의 눈에 나는 별거 아닌 동생인 줄 알았다. 내가 해낸 것들도, 내 존재도 오빠에게는 ‘별거 아닌 것’인 줄만 알고 지내왔던 날들이었다.

 오빠를 떠나보내고, 의식적으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오빠와의 시간들을 추억했다. 그 시간 동안 알게 된 건, 오빠는 나를 인정해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꽤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도.


색안경을 끼고 있던 내가 몰랐던 건지, 아니면 표현에 서툴렀던 오빠는 그 마음을 꺼내 보이지 못했던 건지.

 가족들은 입 모아 말했다. 오빠는, 쟤는 뭘 하든 잘할 거라며 너를 인정하고 있었다고.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말로 들릴 수 있지만, 내게는 평생을 가슴에 품고 싶은 문장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이에게, 닮고 싶었던 이에게 받는 인정이었다. 내 동경이었던 오빠는, 나를 인정해 주고 있었구나. 언제나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하던 오빠 눈에 비친 나는, 뭐든 잘 해낼 애였구나. 그걸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여전히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건, 그리고 제일 믿기지 않던 건, 날 걱정했던 오빠의 모습이었다. 내 기억 속 오빠는, 내가 느껴왔던 오빠는 언제나 무심했다. 내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관심도 없고 내게 무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또한 오빠에 대해 무심했다. 어련히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오빠는 뭐 언제나 잘하는 사람이니까. 워낙 오빠와 대화를 안 했기에 서로의 소식도 가족을 통해 나중에서야 듣는 게 다였다. 서로에게 무심하다고 생각했던 양방향 관계는, 일방적인 나의 무심이었다. 오빠는, 생각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었고,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참 우울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대학교 3학년 시절, 남자 친구가 생겼다. 꽤 열정적으로 사랑했지만, 그래도 선은 잘 지켰다. 나도 지금 내 세계가 불안정한 걸 아니까, 그 사람과 서로의 세계는 공유했지만 그 사람이 내 세계를 휘두르지 못하도록. 그때, 따로 사는 오빠가 내 우울증과 남자 친구 여부를 아는 줄 몰랐다. 오빠가 떠난 후에야 듣게 된 사실은, 그때 오빠가 내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었다. 남자 친구는 어떤 애냐고, 이상한 애는 아니냐고, 우울증에 빠져있을 때 남자 친구 함부로 사귀면 큰일 난다고. 언니한테 터놓은 걱정이었고, 그 걱정은 나한테까지 닿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오빠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 뒤로 우울증이 더 심해져 생사를 고민하던 순간에도, 오빠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줄만 알았다. 아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내가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오빠는 그런 나를 알아채고, 걱정하고 있었다. 요즘엔 어떠냐고, 쟤는 자기 혼자 힘들어하지 티를 안 낸다고. 아무런 티도 안 내고 조용히 나쁜 결심 먹을지도 모르니까 잘 봐야 한다고.



무심하다고 생각했던 오빠는, 나를 알아줬고 나를 걱정했다. 반면 오빠의 무심에 언제나 속상해하던 나는, 오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오빠가 생사를 고민하던 그 시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모르는 만큼 아무런 걱정도 해주지 못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생을 기특하게 여기고 있을 오빠에게, 혼자 걱정하고 있을 오빠에게,

여전히 자랑스러운 동생이 되고 싶었고,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동생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필사적으로 공부해 결실을 이뤄내야 했고, 필사적으로 단단해져야 했다.  


그렇게 결국, 시험에 합격했다.

 암담한 현실에 무너지고, 오빠를 생각하며 다시 일어서고. 무수히도 흔들렸던 시간들이었다. 그렇지만 오빠가 있었기에, 오빠와 약속했기에, 오빠에게 자랑스러운 동생이 되고 싶어서, 오빠에게 더 이상은 걱정스러운 동생이 되고 싶지 않아서 처절하게 노력했던 시간들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취업이 힘들었던 2021년, 누구 하나 간절하지 않은 이 없는 공무원 시험이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특별히 더 간절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쥔 주먹이, 주먹을 하도 많이 쥐어서 언제나 두 손바닥엔 손톱자국이 선명했다. 집중이 안 될 때마다 의자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공부를 해서, 나중에는 걸을 때마다 무릎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피곤을 조금이라도 쫓아보고자 아침에 1리터씩 때려붓던 커피로, 몸은 카페인에 무감각해졌다. 공부했던 책들은 눈물 자국, 손때 자국으로 쭈굴쭈굴하고 거뭇거뭇했다.

누구보다 간절했던 시간들. 그 끝에 결국엔 오빠와의 약속을 이뤄냈다. 최종 합격 문자를 받던 날, 유난히 맑던 하늘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빠. 나 결국엔 오빠와의 약속을 지켜냈어. 걱정거리였던 동생이, 가족에게 봄의 씨앗을 가져다줄 수 있게 되었어.

오빠의 마음을 닮아 오늘의 하늘은 이토록 화창한 걸까.

오빠는 짐을 하나 덜었을까.

오빠는 편안한 행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을까.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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