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끔찍하게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게 너무 무서워.

<나의 해방일지> 속 찾은 열세 번째 해방

by 윤슬

<나의 해방일지> Episode 7

나의 해방일지 2권 148p


#25. 희선 가게(밤)

손님 없는 가게에서 희선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다가 딸랑하는 소리에 문 쪽을 돌아보는데, 유림이 들어오고, 뒤이어 태훈이 들어온다. 희선은 반색하며 일어나


(중략)


컷 튀면, (희선은 주방에 있고) 태훈도 경선 앞에 앉아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는데


경선 난… 끔찍하게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게 너무 무서워. 내 새끼도 아니고 조칸데, 행여 잘못되면 어떡하나, 이렇게 겁나는데, 넌 어떨까…


태훈


경선 그 무서움을 견디는 니가… 참 대단하다.


태훈 (듣기 싫은) 그냥 살어. 닥치면 다 살어.



난 끔찍하게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게 너무 무서워.


언젠가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너는 견고하게 높은 성벽 같아. 손에 피가 철철 날 만큼 열심히, 간절하게 두드려도 열리지 않아. 그래서 나는 언제 열릴지 모르는 그 견고한 성벽 앞에 앉아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없어.‘ 타인이 보는 나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이 너무 많아 오히려 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듯하다. 살아온 날이 쌓일수록, 나라는 성을 둘러싸고 있는 벽의 높이도 같이 쌓여간다.


지금보다 더 철이 없고 어린 시절에는 몇 번 만나지 않은 사람들과도 깊은 우정과 사랑을 나누곤 했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언제든 나의 성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성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물론 성벽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넘을 수 있을 만큼 낮았다. 상대방에게 내 패를 거리낌 없이 보여줬다.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가진 패를 상대방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패가 이 사람에게 더 잘 쓰일 수 있다면, 거리낌 없이 패를 쥐어줬다. 내가 이 패를 이용해 얻는 행복보다는, 상대방이 이 패를 얻음으로써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행복했으니까. 흔히 비슷한 부류끼리 무리가 나누어지는 학창 시절의 생태계를 경계 없이 넘나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었고, 함께 해온 시간의 절대량이 의미 없을 만큼 깊은 관계를 맺곤 했다. 내 성의 벽은 낮디 낮았고, 숱한 사람들을 나의 성 안에 들였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고 소비하는 외향적, 내향적 성향을 떠나 사람을 겁 없이 좋아했고 쉬이 믿었고 함부로 진심을 다했다.


그보다 조금 더 세상을 알게 되었을 때는,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지만 자기 사람이라는 바운더리가 확실한 사람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턱 끝까지 오는 성벽이었다. 성벽 끝에 닿을 듯 말듯한 콧잔등을 기대면 빼꼼 솟은 두 눈으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지만 아는 것에 그칠 뿐, 성 안으로 들어오기는 한층 어려워졌다. 어딜 가든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고, 사람들 사이에 잘 스며들었지만 전처럼 쉽게 마음을 주진 않았다. 절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알고 보니 뒤에서 내 험담을 가장 심하게 하고 다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한 뼘, 모든 일상을 나누던 이가 처음과 달리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한 뼘, 지금 이 순간이 그리고 이 관계가 영원할 거라 맹세했지만 서로의 삶 속에서 멀어져만 가는 이들을 보며 세 뼘. 그렇게 한 뼘 두 뼘 성벽이 높아졌다. 성벽이 높아진 만큼 믿음의 장벽이 높아졌고, 진심 위에 견고한 무언가를 자꾸 덧대었다.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애정을 담는 것에 망설임이 생겼고, 상대의 말을 쉽사리 믿지 못했고, 진심을 전하는 것에 각박해졌다. 너무도 쉽게 애정을 주고 믿었으며 진심을 다했던 시간들이 때로는 배신이 되어 돌아오는 행태를 보며 누군가에게 순수한 마음을 주는 것에 겁이 생겼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일들이 점점 늘어날수록 성벽은 끝도 모르고 높아만 갔다. 즐겨하진 않았지만, 심심치 않게 나와 타인의 일상을 공유하던 SNS를 멀리하게 되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는 것이 불편해졌다. 백 마디 달콤한 말도 한 가지 행동에 아스라이 사라져 버리고 내 감정, 내 진심을 나누는 일은 금기가 된 듯 꺼려졌다. 일상을 나눌지언정, 가치관을 나눌지언정 진심 어린 속내까지는 나누기가 어려웠다. 무언가가 입을 턱 틀어막듯, 목 끝까지 차오른 언어는 말이 되지 못하고 사그라져버렸다. 성벽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나서는 사람들을 대하기가 불편했다. 어떤 모습으로, 어느 정도까지 나를 드러내도 될까. 철저히 나를 틀어막은 덕에 사람들은 성벽의 모양을 보고, 그리고 성벽 너머로 들려오는 내 말소리를 듣고 내가 누군지 판단했다.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 해줄 수 있는 언어들만 그들에게 전달되었다. 성벽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타인을 향해 굳건히 벽을 세우게 된 게. 딱 이 순간이다, 하는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유는 있었다. 관계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관계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지 손익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진정한 관계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각자라는 고유명사가 중요할 뿐, 앞에 붙은 숱한 형용사를 재고 따지는 건 내겐 그 어떤 의미도 없었다. 관계에서 서로가 나누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서로가 나누는 물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물론, 사람에게 천성적으로 너무 무른 탓이기도 했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그리고 머리를 쓰며 누군가를 대하는 걸 싫어하기도 하지만 지독히도 못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 누군가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 순간부터 그 사람에게 내 모든 패를 다 보여주곤 했다. 내 패는 이거야. 네가 필요하다면 내 패를 마음껏 이용해도 돼. 이 판에 놓인 패들이 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내 패를 사용해도 좋아. 애정한다고 말하며 각자의 손에 쥐어진 패를 숨기기 급급한 건 내게는 진정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럴까, 진심으로 애정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 대상에게 내 감정과 기분의 방향키를 쥐어주곤 했다. 그 대상이 행복해하면 나도 덩달아 행복했고, 그 대상이 힘들어하면 나 또한 같이 힘들어졌다. 감정의 동화가 잘 일어나는 탓이었을까. 소중한 존재로 인해 경험하지 못할 행복을 느끼지만, 그 존재로 인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아픔을 겪기도 했다. 성벽을 그리도 높이 쌓아 올렸던 건, 겪지 않아도 될 아픔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인생을 대할 때, ‘플러스를 만들자’보다는 ‘마이너스를 만들지 말자’라는 생각이 커서 인 듯하다.


경선의 저 대사 위에 흐릿한 연필 자국이 남아있었다. ‘행복한데, 행복한 만큼 불안해. 이 행복이 어딘가로 떠나버릴까 봐.‘

처음부터 행복을 알지 못한다면, 행복이 떠나간 뒤의 상실감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래서 끔찍하게 소중한 존재가 생기는 게 무서웠다.


최근에 심리학 책을 읽는데 ‘접근동기’와 ‘회피동기’에 대한 개념이 나왔다. 사람들이 인지하든 못하든, 사람의 행동은 동기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그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가 접근 동기,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회피 동기이다. 접근 동기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고, 회피동기는 피하고 싶은 것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물러나게 만드는 힘이다. 언제나 나는 회피 동기의 지배를 받아왔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길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해 왔다. 인생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면, 언제나 회피 동기가 빨랐다. 성공하기 바라기보다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애썼고, 하고 싶은 길을 따르기보다는 안정적인 길을 택해왔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겪을 수 없는 행복을 겪으며 겪지 않아도 될 불행을 겪을 바엔, 덜 행복하고 덜 불행하길 바랐다.


물론 접근동기와 회피동기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쁜 건 없다. 가치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양극단에 치우쳐있으면 바람직한 상태라고 보기엔 어렵다. 회피동기가 강한 성향 덕에 인생의 성과지표에서든, 감정의 파동에서든 어느 일정 수준은 유지해 왔다. 내 겉모습만 보고 누군가는 그 정도면 걱정 없는 인생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불행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행복을 놓쳐왔을까. 실패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성공을 놓쳐왔을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얼마나 숱한 인연들을 놓쳐왔을까.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었고, 이루고 싶은 관계가 있었으며, 이루고 싶은 일상이 있었고, 살고 싶은 인생이 있었다.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는 이뤄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니, 그 시간을 통해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의 가치가 더해지며 그것들을 마침내 이뤄냈을 때 더 의미 있는 것들이었다.


문득, 애정하는 사람들로 인해 행복했던 기억들과 추억들이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애정으로 인해 상처받고 아팠던 시간들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애정하는 이들과 나누었던 추억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사람으로 인해 숱한 상처와 아픔을 겪었지만, 그 아픔조차 사람으로 인해 위로받고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어 지금의 내가 있었다. 만약, 내가 상처받기를 덜 두려워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추억들이 내게 쌓여있을까. 사랑했던 과거와 사랑하는 미래는 생각보다 힘이 셌다. 고통스러운 순간도 이것들을 지니고 있다면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낼 용기가 난다. 그리고 고통의 시간들은 언젠간 결국 끝이 나고, 그 시간이 끝나면 이조차도 또 하나의 추억이 된다. 그 고통으로, 추억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가 바라는 단단한 사람으로 한 뼘 더 자라나게 된다.


상처받기 두려워 누군가를, 무언가를 애정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의 해방일지> 속 찾은 열세 번째 해방, 상처받기 두려워 미리 포기해 버렸던 마음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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