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안다는 건, 참 신기한 것 같아요.

<나의 해방일지> 속 찾은 열네 번째 해방

by 윤슬

<나의 해방일지> Episode 8

<나의 해방일지> 대본집 2권, 226p


#61. 커피숍(낮)


기정 사람을 안다는 건, 참 신기한 것 같아요. 그 사람만 오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이 몇 개의 우주를 달고 오는 것 같애요. …너바나라는 우주도 달고 오고.(넌지시 마음을 드러내 보는 것)


말없이 너바나 음반을 보는 두 사람.


태훈 …설레네요.

기정 !(태훈을 본다)

태훈

기정 (드디어!)

태훈 집에 가서 들을 생각하니까… 설레요.(여전히 앨범을 보는 시선)




책을 읽을 때 습관 중 하나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나오면 책 귀퉁이를 접어놓는 것이다. 페이지 윗부분이면 상단 귀퉁이를, 아랫부분이면 하단 귀퉁이를. 그리고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접혀있는 부분만 다시 읽으며 와닿았던 구절들과 그때의 생각들을 글로 남겨두곤 한다. 책을 읽는 대부분의 시간이 출퇴근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인데, 가방 깊숙이 넣어둔 볼펜이나 연필들은 왜 그리도 자주 사라지는지. 생각날 때마다 가방에 볼펜이나 연필을 하나씩 넣어두곤 하는데, 가방에 블랙홀이라도 있는 듯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만다. 행방불명이 된 필기구 때문 밑줄을 긋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마음에 드는 대목은 꼭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도 있다. 마음에 드는 부분들에 모조리 밑줄을 치고 있노라면 어느새 줄눈 노트 마냥 밑줄로 빽빽해져 버린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는 핵심 부분만 밑줄을 쳐놓으면, 나중에 다시 읽을 때 마음을 울렸던 글의 맥락이 없어져버리고 말아 ‘내가 이 부분에 왜 밑줄을 쳤지?’, ‘이 부분이 왜 와닿았을까?’.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만 남곤 한다. 그래서 페이지만 접어 놓은 채 책장을 넘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접힌 페이지 부분을 다시 펼쳐보며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어 접어놓았을까, 기억을 추척해보곤 한다. (물론 밑줄을 성실하게 그을 때도 많지만.)


<나의 미정이에게>를 쓰려고 대본집의 접힌 부분을 찾아 넘겼다. 상단 귀퉁이가 접힌 이번 페이지에서의 기억을 펼쳐갔다. 와닿았던 문장은 틀림없이 ’사람을 안다는 건, 참 신기한 것 같아요. 그 사람만 오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이 몇 개의 우주를 달고 오는 것 같애요.‘였을 터. 사람을 우주에 비유하는 문장을 좋아하는 터라, 사람을 알아간다는 걸 우주를 달고 온다고 표현하는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나에게 있어서는, 사람을 표현하기에 우주만큼 적절한 단어가 없다.


가치관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태양을 기준점으로, 그 주위를 도는 여러 우선순위들.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생각과 감정들은 마치 별을 닮았다. 어제 본 밤하늘과 오늘 본 밤하늘이 같지 않듯, 어제의 생각과 감정들은 오늘의 생각과 감정들과 다르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했다 한들 아직 우주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처럼, 사람을 아무리 오래 보고 깊이 안다고 한들, 그 사람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만큼, 우리가 보이는 만큼으로만 판단을 할 수 있기에. 우주도 타인도, 모두 가설일 뿐 확실한 정답을 내릴 수 없다.


한 명의 사람 안에는 그 사람이 겪어왔던 수많은 시간들이 있다. 경험들, 생각들, 감정들, 가치관들. 차마 다 헤아릴 수도 없고, 간단히 정의 내리지 못하는 존재. 우주에서 지구를 볼 때는 하나의 구에 불과하지만, 그 지구를 들여다보면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무수한 세계가 펼쳐진다. 사람 또한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그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본 모습은 다르다. 그저 내가 보는 것은 이 사람의 단면일 뿐. 깊이 들여다보면 차마 다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시간들이 펼쳐진다. 그래서 내게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우주를 닮아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걸, 우주와 우주가 만난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여기까지는 책의 귀퉁이를 접었을 때까지의 생각이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번에 접힌 페이지를 다시금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길어졌던 포인트는 ‘사람을 안다는 건, 참 신기한 것 같아요.’였다. 이 페이지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다시 펼쳐본 이번의 시간 사이에,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꽤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믿고 따랐던 이에게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포인트로 시기 질투를 받기도 했고, 친밀하게 지냈던 이들과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멀어지기도 했으며, 꽤나 많이 의지하던 이와 사소한 일로 인해 크게 틀어져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 위에 덮인 책임감으로 인해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을 쏟아부었고, 받을 이유가 없는 말과 상처를 받기도 했다. 이번년도 하반기가 유독 고단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사람과의 관계’였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사람 때문에 고민하고, 사람 때문에 신경을 쓰는 일이 잦아지자 특정 ‘인물’이 싫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싫어졌다. 사람들과 만날 일 없이, 인적이 드문 한적한 시골 마을에 콕 박혀 살면 조금은 더 평온해질까. 물질적으로는 궁핍하게 살더라도,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온통 자연에 그리고 활자에 둘러싸여 살면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까. 사람들과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삶에 염증이 났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 자체를 피했다. 주무부서 사업 담당자로서 담당부서 사업 담당자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줄 때가 자주 있었는데, 한 해 사업이 끝나가자 여태껏 받았던 도움에 감사하다고 밥이나 커피를 사드리고 싶다며 호의를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본인 주변에 나와 성향이 비슷한 또래를 안다고, 타지 생활에 외롭지 않게 알고 지내보지 않겠냐며 주변 지인들을 소개해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감사했지만 새로운 관계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일이 싫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에둘러 거절하곤 했다. 낯선 사람이 내 세상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조차도 싫어지는 요즘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사람을 안다는 것을 ’신기하다 ‘라고 표현하는 기정의 대사에 눈이 갔다. 보통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신기하다’라고 느낄 때는, 그 대상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야 가능한 감정이었다. 내가 알던 것과 다른 것을 만났을 때, 그런 잣대가 없을 때에서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신기하다 ‘였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한다는 분명한 잣대가 대어질 때는 옳고 그른 것만 남을 뿐이었다. 최근에 사람을 보며 신기하다,라고 느꼈던 적이 있었을까.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 부분을 보면 대부분 ‘왜 저러는 거야.’, ‘이건 나랑 안 맞네.’, ‘저건 아니지’와 같은 판단의 결과였다. 요새 사람 관계에 지쳤던 건,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을 ‘검수’하고 있어서였을까. 이럴 땐 이래야지, 저럴 땐 저래야지,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기준을 세운 뒤 그 기준에 맞는지 검사한 후에나 그 사람의 행동을, 그 사람의 마음을, 그리고 그 사람을 받으려고 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이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든, 이해가 안 될 때는 ‘신기하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한 번 웃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다음 날, 도저히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마주했을 때 ‘신기하네.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넘겨보았다. 물론 짜증이나 화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빼꼼 고개를 내밀기는 했지만,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흘려보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할 수도 있구나. ‘사람’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해 간다는 생각으로 행동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평소 같았으면 진즉 날이 잔뜩 섰을 상황에도 무던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사람에게 상처 입고 관계에 지쳤던 지난 시간들은, 사람에 대한 너무 높은 기대치와 기준을 만들어놔서 그랬던 거였을까. 내 기준은 내 내면을 향해야 했을 뿐, 타인을 향해 내민다고 득이 될 것이 없었다. 타인을 볼 때는 그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사람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대하는 게 스스로에게 더 이로운 방향이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이 사람을 알아가기만 할 뿐, 가치 판단을 내려놓는 게 관계를 대하는 더 편한 마음가짐이었다. 내가 발견한 이 세상이 내가 더 가까이 가고 싶은 세상인지, 아니면 그저 주변에 두기만 할 세상인지, 거리에 대한 판단은 필요하겠지만 타인의 마음이나 행동에 대한 판단은 관계에 독이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