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속 찾은 열다섯번째 해방
대본집 3권 40-41p
남자 1. 쏟아붓는 건 쏟아붓는 거고. 야. 염창희. 너 정아름이 왜 그렇게 꼴 보기 싫은지… 그건 생각해 봐야 한다.
창희. (휘릭) 그걸 생각해 봐야 알어? 넌 정아름이 안 싫어?
남자 1. 넌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잖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싫어하잖아.
창희. 너무너무 싫게 해!
남자 1. 우린 그냥 미친년인가 부다 해!
창희. 미친년이랑 옆자리에 앉아 있어 봐. 옆에서 하루 종일 떠드는 거 들어봐. 인간의 결이라고는 1도 없는 여자애가. 욕심만 어마어마해서. 너무너무 재미없는 얘기 종일 떠들어대는 거 들어봐.
창희가 기분 나빠하는 것 같자, 남자1은 접는 듯하다가…
남자1. …정아름이 부자가 아니었으면 니가 그렇게 미워했을까?
창희. (뭔 소리야 이 새끼)
남자1. 평범한 집안에 평범한 여자였으면… 그렇게 미워했을까?
창희. (감정 상했고. 한 템포 참는다.)
남자 1. 좀 솔직해지라고…
창희. (‘솔직’이란 말에 빡) 내가 안 솔직해? 말해봐. 내가 구려? 내가 구린 놈이야? 그런 애는 부자든 아니든 싫어하는 게 마땅해.
남자 1. 내 말은.
민규. 그만해라.
남자 1. 내 말은, 너도 정아름처럼 욕심 있는데, 없는 척하는 걸 수도 있다고. 세상에 욕심 많은 인간이 한둘이야? 근데 왜 그렇게 정아름을 미워하냐고!
저 대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부연 설명을 덧붙이자면, <나의 해방일지> 창희는 직장 내 같은 팀인 정아름이라는 인물을 극도로 싫어한다. 정아름이라는 인물에 대해 짧게 정리하자면, 얄미운 야망가정도. 둘 다 편의점 지점 관리를 하는 업무인데, 창희가 맡은 구역 중 월 수익이 천만 원인 점포가 있었다. 계약기간이 끝나 재계약을 권하러 방문하지만, 점주는 재계약을 거절한다. 점주는 나이가 일흔이 넘는 노인이었다. 몸도 안 좋고, 아들은 여수에 내려가 있는 상태. 더 이상 편의점을 운영할 건강도 안 되고, 혹여나 자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 점포를 처리하는 게 아들에게는 부담이기 때문에 재계약을 망설이고 있었다. 억 단위의 인수 비용 때문에 창희는 이 점포를 인수하고 싶었지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 때, 아름은 아무도 몰래 아버지 명의로 편의점을 인수해 버린다. 승진 가능성이 희박해 더 나은 부서 이동을 고민하던 창희에게, 부서 이동의 경쟁률이 승진 경쟁률의 곱절은 더 되는데 사람들은 다급해지면 간단한 셈도 못한다며 속을 박박 긁고, 창희가 점심을 먹으러 웨이팅이 긴 가게 줄을 서고 있으면, 중간에 슬쩍 일행으로 합류해 창희보다 먼저 가게에 들어가 식사를 하는 얌체 짓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그런 아름은 창희를 포함한 주변 인물들에게 비호감 대상이긴 하지만, 창희는 유독 아름을 싫어한다.
아름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창희를 보며, 최근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포지션은 창희와 비슷했다. 직장 내 옆자리의 같은 팀 선배였다. 아름이 옆자리에서 얄밉게 종알종알 말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얄미운 야망가라면, 내 옆자리 선배는 말없이 대놓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수 없는 야망가였다. 그 선배의 업무 중 하나가 부서 사람들의 자료를 취합해 제출하는 것인데, 지독한 완벽주의자에 꽤나 강압적인 사람이었다. 자기 성에 차지 않으면, 팀장님께 컨펌 맡은 자료도 다시 만들라며 돌려보내는. 사업 담당자의 판단과 팀장의 판단 위에 본인의 판단이 있는 사람이었다. 창희처럼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만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같은 팀에 있는 것, 그리고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거슬리고 스트레스받는 존재였다.
다른 이들은 아름을 그냥 ‘미친년’인가 보다, 하고 흘려보내는데 유독 싫어하는 창희의 모습에 남자 1은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고 하며, 실은 아름이 부러운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이 부분에서 멈칫했다. 그러게, 그냥 ‘미친놈‘인가보다 하고 넘기면 되는데 나는 왜 그렇게 그 사람을 싫어할까. 아름이 부러워서 그런 거 아니냐는 남자 1의 말처럼, 혹시 내가 그 선배를 부러워해서 그랬던 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에 대하여, 어느 책에서 이런 대목을 읽은 적이 있었다. 유독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첫 번째는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그 사람에게 보여서, 싫어하는 내 모습이 투영되어 심리적으로 거부감이 든다는 것이었었고, 두 번째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미움이라는 감정으로 변질되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선배가 유독 싫었던 것은 둘 중 하나였을까. 그 선배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불쾌함이든, 미움이든 그 선배에 대한 감정이나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를 때면 싫어하는 이에게 쏟는 마음의 에너지와 시간이 아깝다며 머릿속이든, 마음속이든 손사래를 휘휘 치며 날려버리곤 했다. 그냥 상종하지 말아야지, 생각하지 말아야지. 괜히 감정 쏟지 말아야지.
그러다 남자 1의 대사를 읽으니, 나는 왜 그 선배를 그토록 싫어하는지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창희가 가지지 못한 걸 아름이 가지고 있으니까 부러워서 그런 것 아니냐는 남자 1의 대사처럼,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그 선배를 부러워했던 걸까. 미워하는 감정의 시작으로 주욱 거슬러 올라가 봤다. 내가 그 선배를 싫어하게 된 계기가 뭔지, 그리고 그 선배의 행동 중에 무엇이 그렇게 거슬렸던 건지. 그 생각의 끝에는 뜻밖의 마음이 있었다. 부러움도 아니었고,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봐서도 아니었다.
원래는 부서 내에서 꽤나 친한 사이었다. 그리고 업무적으로 꽤나 의지하던 선배였다. 난관에 봉착해 있으면 관련된 자료도 보내주고, 어려운 업무에 버거워하고 있으면 잘하고 있다고 딱딱한 위로도 건네며, 직장 생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선배에게 나 또한 도울 일이 있으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곤 했다. 그러다가 업무적으로 마찰이 생겨 사이가 정말 틀어져버리고 말았을 때, 그 선배로부터 완벽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인사조차 받지 않는 태도에, 같이 무시로 일관했다. 업무적으로 불가피한 말 이외에는 서로가 서로를 무시했다. 업무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자료요청을 할 때면 딱 자료만 제출하고 끝내는. 그때부터 미워하는 감정이 생겼던 것 같다. 왜였을까. 해방일지 내 아름처럼 부러 다가와 창희를 긁어놓지도 않고, 업무적으로 협조적이진 않지만 무언갈 요청하면 제깍제깍 응했다. 피해를 주진 않았는데.
거슬러 올라간 마음에는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혹은 ‘모두가 나에게 호의적이어야 해 ‘라는 욕심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타인과 척을 져본 적이 없었다. 물론, 살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군상은 많이 마주했다. 친구 관계나 대학교 친목 집단 내 관계였을 땐 조용히 손절해 멀어지면 그만이었고, 대학교 팀플이나 직장 내의 관계였을 때도 엮이지 않고 조용히 거리를 두면 그만이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 호의적으로 대하고,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어도 상대방에게는 별로 티를 안 내는 편이기도 하고, 선명한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타인의 태도를 크게 곱씹는 편이 아니라서 적대적인 관계인 사람이 있었는지 조차도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대부분이 호의적인 관계들이었다. 여태껏 이 이유가 타인과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으니까,라는 생각인 줄만 알았다. 이 계기를 통해 들여다본 마음에는 ‘타인과 호의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라는 욕심 내지 강박이 있었다.
선배에 대한 미움이, 그리고 서로를 향한 무시가 스트레스이기만 했다. 하지만 호의적인 관계에 대한 강박에 대해 깨닫고 나니, 이 또한 하나의 기회로 만들고 싶어졌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고, 내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 또한 모든 이가 좋지 않듯. 누군가는 이처럼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일 때가 당연히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모두가 내게 호의적일 순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런 태도가 내게 박혀 생채기를 내지 않도록, 그저 흘려보낼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미움은 내 안에 독을 품는 일이었다. 조용히, 그리고 순식간에 마음에 펴져 이성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을 마비시키곤 했다. 타인이 내게 갖는 마음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지만, 타인을 향한 나의 마음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니.
여기까지의 깨달음이, 앞으로의 직장 생활에 얼마나 적용이 될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깨닫는다고 마치 득도한 도인처럼 호의적인 관계에 대한 강박을 모조리 흘려보내고, 타인이 보내는 태도 또한 모조리 흘려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내가 갖는, 그리고 타인이 보내는 미워하는 감정에 끙끙거리며 스트레스받을 테다. 하지만, 어제 보다 오늘 조금 더, 그리고 오늘 보다 내일 조금 더. 한 발 나갔다가 두 발 뒤로 갈지언정, 다시금 한 발 한 발을 내딛는다면, 언젠가는 이러한 마음으로부터 해방이 되는 날이 오겠지.
<나의 해방일지> 속 찾은 열다섯 번째 해방, 호의적인 관계에 대한 강박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