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씽크대도 만들어야 되고 좀 바빠.

<나의 해방일지> 속 찾은 열여섯 번째 해방

by 윤슬

<나의 해방일지> Episoded 10

대본집 3권 118p


#57. 클럽. 사장실(낮)

구씨 : (일어나서 백 사장을 보며) 내가 요즘. 씽크대도 만들어야 되고 좀 바빠. 내가. 결정 나면 올게. 씽크대가 좋다. 이 세게 접을란다. 아니면. 아무리 봐도 이 세계다. 내가 씹어 먹어야겠다. 둘 중 하난데. 결정 갖고 올게. 자꾸 알짱거려서 열받게 하면, 그냥 이 세계에 말뚝 박는 거니까. 조용히 기다리라고.

백사장 : !

구씨 : (나가고)

백사장 : !


#58. 클럽. 복도(낮)

복도를 빠르게 걸어가는 구씨.

그렇게 한 곳을 지나쳤다가 다시 뒷걸음질로 온다.

보면, 주방 씽크대가 눈에 들어온다.


구씨 : 야. 씽크대 갈아야겠다. (가며 크게) 삼식아!!



이 장면은 본인이 몸담고 있던 조직 세계에서 벗어나, 산포에 살며 싱크대를 만들던 구 씨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 조직 세계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면이다. 작중 설정에 따르면, 구 씨는 산포로 오기 전 조직 생활을 했고, 그곳에서 꽤나 높은 곳까지 올랐다. 그러다 모종의 이유로 같은 조직 내 백사장이라는 인물과 대립하며 산포로 내려오게 된다. 그곳에서 구 씨는 짊어진 것들을 내려놓고 천천히 흘러가며 살아간다. 하지만 백사장이 산포에 있는 구 씨를 발견하고, 산포에 기웃거리는 것을 보며 구 씨는 백사장과 담판을 짓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


구 씨가 몸 담고 있었던 조직 생활은 화려했다. 롤스로이스를 타고, 서울에 위치한 값비싼 오피스텔에 살 정도로 재력이 있었다. 작중 과거 회상을 미루어보아, 조직 내에서도 꽤나 높은 지위에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과거 회상에 등장하는 구 씨의 과거 모습은 공허해 보였다. ‘이십 년을 어두운 지하에서 생활했다’는 백사장과의 대화로 미루어보아, 구 씨는 이곳 삶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있던 듯하다.


그러다 모종의 사건으로 화려한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산포로 내려온다. 겉으로 보기엔, 구 씨의 산포 생활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누군가 위에서 군림하던 지위에서 내려와 염미정 아버지의 싱크대 작업장의 말단 직원(혹은 조수)이 된다. 타고 다니는 차는 싱크대 회사의 허름한 용달차, 입고 다니는 옷은 후줄근하게 늘어난 티에 바지. 외관상으로 볼 때, 서울에서의 구 씨와 산포에서의 구 씨는 확연히 대비된다. 그러나 산포 생활에 대해서 구 씨는 ‘쉬고 있다 ‘라고 표현할 만큼 그전 세계와 비교하면 편안함을 느낀다.


찬찬히 책장을 넘기다 이 장면이 눈길을 잡았다. 누군가를 거느리고, 부를 누리던 지하 생활에 비하면 산포에서 싱크대를 만드는 일은 초라하다. 하지만 구 씨는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말을 별로 안 하고 지내는 산포 생활에, 백사장 앞에서 말을 더듬으면 쪽팔릴까 봐 테이블에 놓인 신문을 주욱 읽으며 입을 풀고 대화를 시작했던 구 씨였다. 하지만, 타고 온 산포 싱크대의 용달차, 다 늘어난 후줄근한 옷, 작은 공장에서 싱크대를 만드는 일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어 보였다. 당당히 ‘나 싱크대 만들어’ 백사장에게뿐만 아니라, 삼식이한테도 싱크대 발주 넣으라고 언질 한다.


이 대목을 읽는데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만약 내가 구 씨였다면, 저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만약 나였다면 살던 오피스텔로 가 멀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본인이 타고 다니던 화려한 차를 몰고 백사장을 찾아갔을 것 같다. 멀끔한 모습의 상대방에게 후줄근한 모습으로 대적하려고 하면 주눅이 들 것 같아서. 그리고 싱크대 만드는 일에 대해서도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구 씨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당당했다. 왜 나는 그런 구 씨의 당당함이 인상 깊었던 걸까. 책장 앞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몸을 앞뒤로 흔들며 생각해 봤다. 왤까. 왜 구 씨의 당당함이 좋았을까. 그럼 당당함은 무엇일까. 나는 당당할까. 당당… 흔들의자에서 일어나 다시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그리고 인터넷에 ‘당당하다’를 검색해 봤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첫 번째 뜻풀이는 ‘남 앞에 내세울 만큼 모습이나 태도가 떳떳하다’였다. 그래, 떳떳하다. 구 씨가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 당당했던 거야.


그럼 나는 어땠을까. 나는 당당했던가. 구 씨의 당당한 태도가 눈에 밟혔던 이유는, 요즘의 나는 당당하지 못했고, 쉬이 부끄러워했다. 부끄럽다를 넘어 위축이 되어있던 것도 같다. 그럼 나는 언제 당당했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에 ‘잘’ 혹은 ‘좋은’이 붙었을 때야 당당했다. 직장에서는 내가 맡은 업무가 ’잘‘ 되었을 때, 그 업무가 잘 되어 ’ 좋은 ‘ 직원이 되었을 때야 당당해질 수 있었다. 사적으로는 ’잘‘ 꾸며진 외형으로 ’ 좋은 ‘환경에 있을 때야 비로소 당당해질 수 있었다. 그래, 누군가가 인정해 줄 때 그제야 비로소 당당해졌다.


최근에 이사를 했다. 거실에 방 세 개 딸린 24평 아파트에서 거실을 겸하는 큰 방 하나에 작은 방 하나가 있는 17평 아파트 옮겨왔다. 한 층에 3개의 세대가 살던 이전 집에 비해 지금은 한 층에 12개의 세대가 빼곡히 들어서있다. 나름 지하주차장이 2층까지 있었던 이전 집에 비해 이번 집은 지상 주차장밖에 없고, 그 마저도 이중에 삼중에 차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지역 내에서 살기 좋은 동네라고 불리는 곳에서 소위 할렘가라고 불리는 동네로 옮겨왔다. 전세로 살던 이전 집에서 이런저런 이슈로 인해 월세로 옮겨오면서 환경이 열악해졌다.


하지만, 이전 집은 텅 빈 집에서 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듯했다. 가구가 듬성듬성 배치된 휑한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있으면 공허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지금 집은, 24평에서 지내던 것들을 17평으로 옮기다 보니 공간에 가구들이 알차게 들어서 있다. 그래서 확실히 전보다 공허한 느낌이라던지, 덩그러니 놓여있는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비로소 보금자리에 들어선 느낌까지 든다. 그래서 지금의 집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어디로 이사 갔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이 동네로 이사 갔다고 하면 다들 인상부터 찌푸렸다. 왜 그런 곳으로 갔냐고. 나름 만족하는 보금자리였지만, 사람들의 평가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여기로 이사 오기 전, 과장님이 이사 갈 곳을 듣더니 계약을 도로 무르고 다른 곳 알아보라고 할 정도였다.(워낙 가리는 거 없이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는 편이긴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몇 번 듣다 보니, 사는 곳을 말하기가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더 인상 깊었나 보다, 구 씨의 당당한 태도가.


‘잘’과 ‘좋은’이 붙어야만 당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떳떳하기만 하다면 당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는 집도 그렇고, 직장 내 일처리도 그렇고, 스스로한테도 그렇고

당당하지 못할 게 전혀 없었는데. 떳떳하지 못할 게 하나 없었는데.

왜 그렇게 주눅이 들어있던 걸까. 왜 당당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던 걸까.


<나의 해방일지> 속 찾은 열여섯 번째 해방,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에서부터의 해방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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