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문, 서로에게 이어진 길

래오와 사람, 그리고 고양이들이 함께 머문 시간

by 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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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래오의 작은 발자국이 열어준 문은, 이제 사람과 고양이 모두에게 이어지는 길이 되었습니다.


래오는 여전히 사냥 본능이 대단하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때로는 엄마의 다리에 매달려 장난을 친다. 한순간도 조용할 틈이 없지만, 그 장난스러움조차 보는 이의 얼굴에는 늘 웃음을 남긴다.

하루 종일 뛰놀고 장난을 치며, 결국 웃음을 남기는 래오의 시간들


래오 엄마가 집을 비우는 날이면, 나는 제주로 향해 래오와 시간을 나눈다. 장난감을 흔들어주며 집사 노릇을 하다가도, 틈틈이 마을 고양이들을 만나러 다니곤 한다.

바자회를 앞두고 나눔의 마음을 담아 준비한 가방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 날, 래오는 내 곁으로 다가와 발을 올리더니 조용히 머물렀다. 평소의 장난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잠시 고요히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그 또한 작은 마음을 더하는 듯했다. 그 순간, 우리는 함께 작은 마음을 보태는 동행이 되었고, 잔잔한 웃음이 하루를 따뜻하게 물들였다.

사소한 장난도, 조용한 머묾도, 함께할 때는 늘 웃음이 된다.


래오네 집에는 고양이만을 위한 작은 문이 있어, 래오는 그 문을 통해 집의 온기와 바깥의 바람 사이를 오가곤 했다. 그렇게 매일 달라지는 빛과 바람을 마주하며 하루를 채워갔다. 문을 나서면 앞마당 너머로는 함덕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발아래에는 청보리밭이 넓은 놀이터가 되어준다. 뒷마당은 숲으로 이어져, 엄마가 운영하는 민박집까지 연결된다. 래오는 그 모든 풍경 속을 아이처럼 마음껏 뛰놀았다.

래오는 집 안팎을 오가며 장난치고, 쉬고, 뛰놀며, 제주의 빛과 바람 속에서 하루하루를 환하게 채워간다.


저녁이 되거나 바람이 거칠게 불면 문은 닫히지만, 낮 동안만큼은 마당과 숲을 오가며 누리는 자유가 래오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 자유로움 속에서 래오의 세상은 한층 넓어졌고, 언니에게도 그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 보낸 10년 동안, 자연과 호흡하며 고양이와 함께 지냈던 시간이 제주의 작은 마을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당의 햇살 아래 쉬어가다, 숲과 돌담 위에서 다시 세상과 마주한다.


아침이면 래오는 민박집 ‘숨숨집’으로 향한다. 손님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민박집 도련님 노릇을 톡톡히 한다. ‘숨숨집’이라는 이름에는, 고양이처럼 몸을 감추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손님, 일찍 일어나라옹!” 하고 재촉하다가도, 늦잠 자는 민박 손님의 창가에 누워 조용히 기다려주기도 한다. 잠시 숲으로 놀러 간 사이, 마당에 나온 꼬마 손님은 창문 너머로 “래오야~” 하고 부른다. 그렇게 이어지는 기다림과 부름은, 아침마다 숨바꼭질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손님을 맞이하는 민박집 도련님 래오, ‘숨숨집’의 아침 풍경


가족 단위 손님이 많은 민박집에서 래오는 아이들과 금세 친구가 된다. 낚싯대 끝 장난감을 좇는 놀이 속에서, 아이와 고양이는 웃음을 나누며 추억을 쌓는다.

아이와 고양이, 서로의 놀이 친구가 되어주는 시간


그중에서도 래오와 깊은 우정을 맺은 일곱 살 소이가 있었다. 처음엔 조심스레 다가가던 아이였지만, 아침저녁으로 래오를 찾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 둘은 점점 가까워졌다. 며칠이 쌓이고 이주가 흐르자,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금세 친구가 되는 래오와 아이들, 아이의 눈빛과 래오의 마음이 닿는 순간들


이별의 날, 소이는 래오의 그림과 함께 사랑을 담은 편지를 남겼다. 육지로 돌아간 뒤에도 “래오가 보고 싶다”는 소식이 이어졌고, 사진으로 안부를 전했다. 결국 다시 이곳을 찾은 소이는 래오와 재회했다. 한 번은 래오 엄마가 집을 비운 날, 집 앞에서 부르자 래오는 캣도어를 통해 나와 소이 곁으로 달려왔다.

영혼의 단짝이라 불러도 좋을 인연이 작은 민박집을 더욱 따뜻한 장소로 바꾸어 주었다.

소이의 그림과 마음은 래오와 민박집을 더욱 따뜻하게 물들였다.


래오가 머무는 집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가끔씩 굶주린 고양이들이 찾아와 밥그릇 곁에 머물렀고, 어느새 익숙한 얼굴이 된 아이들도 있었다.

오래 머물지 않아도 괜찮았다. 머물다 떠나는 발걸음까지도 이 집에서는 하나의 따뜻한 인연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젖소 무늬 고양이가 나타났다. 처음엔 멀찍이서 경계하던 아이는 점차 래오 곁을 맴돌며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앞장서 달려가던 래오가 돌담 위에서 기다리면, 느긋하게 따라왔다. 어느새 캣도어를 통해 들어와 래오와 나란히 밥을 먹고, 잠시 머물다 나가기도 했다. 자유로운 성격 탓에 때로는 엄마의 마음을 쓰이게 하던 래오였지만, 얼룩이와 어울려 지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반가운 풍경이었다

다만 언젠가 이 아이가 스스로 머물기를 선택한다면, 그 순간 가족으로 받아들이리라 마음을 열어두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이 집에 더해졌다. 그 고양이는 ‘얼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얼룩이는 어느 날 치즈빛 고양이와 함께 왔다. 그러나 곧 홀로 찾아오는 것은 치즈 고양이뿐이었다. 그 아이는 어느 순간 ‘마실’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두 고양이 사이의 사연은 알 수 없었지만, 마치 자리를 내어주듯 얼룩이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마실이는 한동안 이 집을 오가며 밥을 먹었으나, 어느 순간 발길을 옮겼다.

흘러간 인연이지만, 마음 한켠에 자리한 얼룩이와 마실이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손님이 등장했다. 매일 밤 찾아오는 치즈 고양이는 목에 펜던트가 달린 줄이 걸려 있었다. 처음엔 누군가의 고양이일 거라 여겼지만, 허겁지겁 두 그릇을 비우는 모습은 오래 굶주린 흔적 같았다. 말라 있는 몸과는 달리 ‘뚱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그 아이러니 때문이었다. 목줄은 분명 누군가의 보살핌을 뜻했다. 그러나 어떤 사정이 그 발걸음을 이곳까지 이끌어온 걸까.

목줄을 단 채 나타난 뚱이, 그 또한 이 마당의 손님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뚱이의 목줄이 다리에 엉켜 어설프게 움직이는 사진이 도착했다. 당장은 크게 위태로워 보이진 않았지만, 혹여 점점 조여 오지는 않을까 마음이 불안했다. 잡으려는 손길은 번번이 빗나갔고, 내가 제안한 포획틀조차 소용없었다. 그동안 래오 엄마는 “네가 내려오면 함께 시도해 보자”며 기다려 주었고, 나는 전화를 걸어 소식을 확인하며 마음을 놓지 못했다.

목줄에 걸린 채 위태로웠던 뚱이, 안부를 묻지 않을 수 없던 시간


제주에 도착한 날, 우리는 작은 작전을 짰다. 간식으로 신뢰를 쌓고, 현관 안쪽으로 들어오게 한 뒤 담요로 감싸 목줄을 자르는 계획이었다. 며칠 동안 하루 네 끼의 ‘뷔페’를 거듭 받으며 뚱이는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간식과 밥그릇을 사이에 두고, 뚱이는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다.


마침내 현관 안으로 들어온 날, 래오 엄마는 담요로 뚱이를 감싸 안았고 나는 가위로 목줄을 잘랐다. 고무줄처럼 늘어나던 끈은 그렇게 간단히 잘려나갔다. 자유를 되찾은 뚱이는 이해한다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 곧장 달아나지 않고 개운한 얼굴로 밥을 먹었다.

묶였던 끈이 잘려나간 자리에서, 뚱이는 처음으로 자유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날 이후 뚱이는 집 앞을 떠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햇살 내리쬐는 앞마당에 드러눕거나, 현관 앞 밥그릇을 비우며 한동안 머물렀다. 내가 함께한 일주일 동안 간식을 나누는 사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 창가에 와 간식을 청했고, 창가에 몸을 기대 잠들기도 했다. 거실 창문을 열어두면 슬그머니 들어와 한 바퀴 둘러본 뒤 다시 나가곤 했다. 래오는 못마땅하다는 듯 으름장을 놓았지만, 때로는 모른 척해주기도 했다.


언젠가 뚱이가 캣도어를 스스로 열고 들어온다면, 래오와 한 식구로 어울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오롯이 뚱이와 래오의 몫. 래오 엄마는 문 앞에서 머뭇이는 발걸음마저 하나의 응답으로 받아들이며, 그 마음을 고요히 지켜본다.

뚱이는 길 위를 떠나, 집과 사람 곁에 머물기 시작했다.


고요한 시골 마을, 래오의 하루는 언제나 탐험으로 시작된다. 숲길을 뛰어다니다가 새하얀 털이 흙빛으로 물들어 돌아오면, 빗질과 수건 샤워로 하루가 마무리된다. 밤이면 내 방을 기웃대며 ‘누나랑 잘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은 엄마 곁에 몸을 뉘인다. 드물게, 별처럼 스쳐간 몇 날은 내 옆에 기대어 잠들기도 했다.

호기심 가득한 하루 끝엔 언제나 따뜻한 이불 속


눈이 내린 날, 래오는 캣도어 앞에서 오래도록 서성였다. 나갈까, 말까. 그 작은 망설임 속에서 자유로운 선택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결국 그날은 머물렀지만,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또 다른 하루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머물고 떠난 자리에, 바람처럼 스친 발걸음마다, 이 집에는 고요히 따뜻한 이야기가 쌓여가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질 하루를 기다리며, 래오는 작은 창가에서 긴 망설임을 이어간다.


그러나 모든 고양이가 이렇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적 드문 시골 마을에서, 오래전부터 사람과 고양이가 서로를 받아들이며 살아온 제주의 풍경 속에서, 래오의 하루도 그렇게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뉴질랜드에서 이어온 삶처럼, 자연과 더불어 열린 문 앞에서 맺어진 공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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