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imjae
일몰 무렵
유현숙
닷새 장
찾아드는 장꾼의 짐짝만한 하루를 괴어놓고
여자가 석탑을 돈다
미리 돋은 싸라기 별빛이 정수리로 쏟아진다
이맛골이 깊은 불목하니가 용왕각의 문고리며 수각에 고이는 물소리를 잠그는 시간
석등에 불이 들어오고 연화문 창호가 호박빛으로 붉다
탑돌이가 끝나고 모은 손을 내리는 여자
허공의 냉기를 받아 말끔히 얼굴을 씻는다
초이레 달빛이 이마를 긋는 소한이다
산문 푯돌에 새긴 천지동근(天地同根)이 여자의 등짝보다 곧다
이 발원이 허공의 곳간을 채울 것인가
새들은 빈 하늘로 치솟아오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