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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나 Oct 10. 2023

가을의 속도

내년 가을엔 이곳에 없을테니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승인이 나왔다. 내년 8월이면, 나는 그곳에 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한 두명씩 늘어나면서 이제는 다수가 알고 있는데, 여전히 나와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전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까울수록 전하기 어려운 말들. 나랑 알고 지낸지 오래된 사람들보다 알고 지낸지 일년 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들이 그만큼 내 얘기를 잘 이해할 것 같아서? 아니면 나에 대한 판단 평가를 덜 할 것 같아서? 아니면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이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나의 상황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형태일 뿐, 견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에.


  10개월도 안남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지금 보내고 있는 이 가을의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내년에 누리지 못할 한국의 가을. 이 가을이 지나고, 혹독한 겨울과 붕 뜨는 봄을 보내고 무더운 여름과 만났을 때 나는 이곳에 없겠지. 지금의 계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을을 즐기기. 할 수 있을까?


  짝사랑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알 수 있는게 없다. 그의 마음은 어떤지, 내가 어느 정도로 다가가야 하는지, 먼저 더 표현하는 게 맞는지, 그는 어떤 생각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내게 인간적인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는데, 며칠 전 다같이 있는 자리에서 술 마시고 너무 취한 모습을 보여서 그 호감이 사라졌을 것 같다. 굉장히 후회한다. 적게 마시고 그 시간들을 충분히 즐기고 경험할 걸. 그동안 이토록 후회되는 일이 있었나 싶을만큼, 얼굴을 감싸고 후회한다. 술 앞에서 늘 긴장하자. 술 앞에서 마음을 놓지 말자. 행복해서 마시는 술은 정말 위험하다. 내가 취하고 있구나를 인지하지도 못한채 갑자기 취했고, 위스키란 그런 거구나, 처음으로 실감했다.


  점점 줄어드는 날짜를 보면서, 지금처럼 내 마음을 전달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하루라도 더, 그와 사랑하고 싶은데. 그렇지만 함부로 마음을 전달했다가 어색한 사이로 남게 될까봐 이도저도 하지 못하고 그냥 주변을 맴돈다. 조급하지만 느긋한 마음을 갖고. 예전의 나였으면, 굉장한 조바심 속에서 집착하고 질투하며 소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힘들었을텐데, 지금은 그냥 바라본다. 지켜본다. 상대의 속도를 생각하고, 나의 여유를 찾으면서. 


  캐나다로 가기 전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준비하고 정리하는 일. 계획하고 다듬는 일. 아쉬움이 없도록, 최고의 경험을 해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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