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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혁 Sep 24. 2020

독일로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일곱 아무개라고 합니다.

독일로 훌쩍 떠나버린 ***님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어제 홍대입구역 벤치에 앉아 여자 친구와 밤하늘을 보는데 난데없이 눈물이 한 방울 맺혔어요. 그러고는 이내 여자 친구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죠. 사람들이 북적대는 홍대에서 말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엉엉" 이러면서 말이죠.


얼마 전 취업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어제 부서 배치를 받았고요. 퇴근을 하고 여자 친구를 만나러 홍대에 갔는데 그 젊음, 개성 넘치는 길거리에 딱딱한 회사원 차림으로 서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더군요. 평소와 너무나 다른 옷차림의 제가 어색했고 딱딱한 구두가 발을 조여왔어요. 사실 구두보다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나도 개성 넘치고 멋있는 일 할 수 있는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저를 자꾸만 작아지게 만든다는 것이었어요. 그것 때문인지 계속 가슴이 답답했어요. 처음에는 밥을 잘못 먹었나 싶어 계속 걷고 걷고 걸었는데도 나아지지가 않더군요. 그러고는  결국 눈물을 왈칵 쏟아내 버렸네요.


그 일은 사실 제가 좋아서 찾은 일이 아니었어요.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막상 제 전공을 버리려니 선뜻 쉽게 놓아지지가 않더군요. 이제까지 공부해온 시간을 생각하면 아깝기도 했고요. 그래서 '안되면 말지 뭐, 그때 내가 좋아하는 거 정말 시작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회사를 지원했고, 어떻게 하다 보니 덜컥 합격까지 하게 돼버렸어요. 애초에 이런 마음이었으니 입사 확정 메일을 받고 조금도 기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때부터 무언가 조여 오는 것 같았죠. 주변 사람들의 축하가 너무 부담스러웠고 괜스레 미안해졌어요.  '이게 그렇게 별일인가' 생각하는 저보다 더 좋아해 주는 모습을 마냥 보고 있기가 힘들었거든요. 저에게 있어 제가 좋아하고 가슴 뛰지 않는 일은 한다는 것은 그냥 아르바이트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느껴졌달까요.


학생 생활이 길었다 보니 일단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마음에 다른 생각들은 접어두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제 부서 배치까지 끝나니 진짜 회사원 같더군요. 덜컥 겁이 났어요. '회사 생활 잘할 수 있을까?' 혹은 '실수하면 어쩌지?' 같은 걱정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로 이루어지는 문화로부터 영영 멀어질 것만 같았거든요. 머릿속 저 깊은 곳에서만 상상하던 일을 현실로 맞닥뜨리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어요. 메스껍더라구요. 거부감 같은 것들 때문에요. 회사 자체로부터가 아닌 제 자신에 대한 실망에서 생기는 거부감이었죠.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밉더라고요. 너무 비겁하고 추해 보였어요. 이런 고민들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분하기도, 창피하기도 했고요.


저도 알고 있었어요.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요. 그렇지만 생각보다 관성의 고리를 무턱대고 뚝 끊어버리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부모님의 기대나 그리고 금전적인 상황들이나 뭐 그런 것들이요. 이것조차도 핑계라는 것도 알고 언젠가 제가 뛰쳐나올 거라는 것도 알아요. 지금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제 인생의 과도기 같은 시기에 저는 생각보다 제가 잘 버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이 모든 걸 뒤엎어 버리기에는 아직 용기가 부족한 거라고, 이것도 경험이니까 그러니까 조금 더 준비하고 힘을 길러보자고 수도 없이 혼자 했던 위로에 사실은 조금 지쳤었나 봐요.


너무 외로웠어요. 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거든요. 주변에 얘기를 해봐도 이해를 못하거나 되려 "배부른 소리 하네~, 이 시국에 취업했으면 됐지..."하고 한소리 듣기 일쑤였죠. 사실 ***님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내고 있지만 실은 저 자신에게 쓰는 거라고 보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이렇게나마 제 생각, 감정들을 쏟아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항상 속에서 차오르기만 했던 것들을 비워내는 과정이 꼭 필요했어요. 혼자서만 글 쓰고 비워내는 일에도 슬슬 지쳐가던 중이었거든요. 이렇게 누가 읽는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더 후련하고 미묘한 기분도 드네요.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말씀 안 드렸네요. 저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두루뭉술하죠? 저는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좋아하는 데요, 저처럼 이렇게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제가 했던 고민들, 생각들, 정말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혹은 철학적 사유들을 나누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독립잡지를 일단 준비해 보려고 해요. 이제까지 제가 살면서 마주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다뤄보려고요. 일단은 회사를 다니면서 심적으로나 물적으로나 조금씩 준비해 보려고요. 그다음에는 다시 어떻게든 해봐야죠.


제가 ***님에게 제 계획을 말씀드리는 것은 이렇게 공론화해서라도 꼭 이루고자 하는 제 다짐입니다.

잡지가 나오는 날에는 한 권 보내드리고 싶어요. 그때 다시 연락 드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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