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남미씨. 위험천만한 경비행기와 나스카 라인

난생처음 타 본 경비행기, 어질어질해

by 아보카도


20대의 8할을 서울에서 보낸 내가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종각역과 종로3가역 사이 어딘가다. 잠못이루던 밤, 내가 자주 가던 카페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종각역에서 스터디가 있을 때면 종각역에 내리기보다는 종로3가역에서 내려서 걷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6개월 정도 일했던 게스트 하우스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주 갔던 서울극장이 그 근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상의 종로3가역 과 종각역 사이의 어딘가보다 나는 지하를 더 좋아한다. 광화문 교보문고보다 종각역 영풍문고를 더 좋아하는 나는 종로3가역에서 종각 역 쪽으로 걸어오다가 종종 영풍문고로 향하는 길에 지하상가 옷집들을 지나치곤 했는데 그곳에서 나스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나스카 라인을 직접 경험하기 전이었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테지만 나스카 라인을 하늘에서 봤던 나는 나. 스. 카라는 세 글자를 보자마자 그 날의 어질어질했던 경험을 바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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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 라인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다양한 문양을 모두 보기 위해서는 경비행기를 타야만 한다. 나는 경비행기를 탔던 당일 아침에 1 솔짜리 감자가 들어 있는 빵과 1 솔 짜리 따뜻한 주스를 마시고 점심에는 모라다라는 정통 주스와 고기를 재워서 만든 감자크로켓을 먹었다. 그런데 경비행기를 타고나서 내리자마자 바로 바닥에 뻗었다. 다행히 내가 경비행기를 타는 동안,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추락사로 숨진 경우도 있었다.(물론 여행사 측에서는 사고율이 낮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한국에 들어와서도 나스카 경비행기 추락 사고 소식을 들은 바 있다.) 경비행기는 처음 타 봤는데 그리 유쾌한 경험 같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작은 비행기기 때문에 탈 수 있는 인원도 소수며 조종사가 핸들을 꺾을 때마다 몸이 좌우로 마구 쏠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겁 없는 나도 후덜덜거렸다. 그래도 이러다 죽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러다 죽으면 어쩌지는 사실 멕시코에서 번지 점프했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경비행기를 타면서 그런 생각보다는 책자로만 봤던 문양들을 실제로 하늘에서 보니 놀라웠다. 인간이 문양을 만들었다기에는 너무나도 디테일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가이드가 소책자를 하나씩 손에 쥐어주고 이 문양이 저기 있다고 손으로 가리키면서 하나하나 말해주는데 나는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아내기에 바빴다. 그 카메라를 쿠스코에서 잃어버릴 줄도 모르고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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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덕후인 나는 감자의 나라, 페루에서 정말 감자로 된 건 다 먹어 보려고 애썼는데 식당에서 먹은 감자로 만든 것들도 맛있었지만 길거리 음식들도 정말 맛있어서 자꾸 먹었다. 그러다 보니, 비행기를 타기 전에 몸무게를 쟀는데 숫자를 보고 놀래서 흠칫하게 되었다. 감자들을 마구 먹지만 않았어도 비행기를 타고나서 내렸을 때 혼이 나간 듯한 느낌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비행기를 탈 예정이라면 무조건 일단 덜 먹고, 거의 안 먹은 상태로 타는 게 좋을 것이다.


'외계인은 정말 존재하는가?'가 토론 주제라면 당신은 어떨 것 같은가. 나라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나만의 근거를 댈 때 나스카 라인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위대한 피라미드를 봤을 때도 그런 생각은 안 들었지만 나스카 라인을 상공에서 바라봤을 때 이건 정말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벌새와 거미가 진짜 인상적이었는데 이 지역에서 문양이 오랜 시간 보존되어 온 이유는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기후가 바뀔 리는 없겠지만 기후가 바뀌어서 습해지고 비가 막 내리면 그 문양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히겠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고 어떤 문화유산이 보존되는 데에는 사람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문화유산이 처해져 있는 환경도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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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와서 멕시코 소식은 여러 번 들었지만 페루 소식은 거의 못 들었는데 작년 2월 즈음 처음 나스카 라인에 대한 뉴스를 듣게 되었다. 트럭 운전사가 출입제한구역인 줄도 모르고 나스카 라인 내부로 들어가서 세계 7대 불가사의 나스카 라인의 일부를 훼손하고 말았다는 기사였다. 오호, 애재라. 오호, 통재라. 경비행기에서 토 쏠림을 참아가면서 찍었던 사진들을 카메라 도난 사건 때문에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내 기분이 떠오르면서 그 날의 소용돌이가 머릿속에서 리플레이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이 백업만 되어있었어도 그렇게 억울하진 않았을 터인데 안타깝지만 어쩌겠나, 그때의 그 어질어질함은 내 기억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 덕에 경비행기는 다시는 타고 싶지 않단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원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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