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남미씨. 우수아이아, 공항 냄새

사진 한 장, 찰칵

by 아보카도


공항마다 공항 냄새가 있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공항 냄새란 이런 것이다. 공항에서 만난 사람, 공항에서 내게 일어난 일들로 나는 공항 냄새를 기억한다. 두 달 반 동안 남미 여행을 하면서 남미의 공항을 스쳐 지나가면서 공항에 나만의 족적을 남기고 왔다. 출입국 심사를 할 때 여권에 찍히는 도장만큼 선명한 족적이 아니지만 내 족적은 다시 그 공항에 가게 된다면 나만이 알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항냄새를 영구 보관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은 공항의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었다. 내 눈과 귀는 공항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움직임, 숨소리 하나에 레이더망을 세우고 있었다. 일단 레이더망에 포착되면 카메라 배터리가 줄어드는 줄도 모르고 셔터를 눌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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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딸, 칠레 산티아고 공항의 아름다운 사람냄새.


2013년 1월 18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공항에서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20분 직전 즈음이었다. 새벽 네 시 반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눈을 떴다 감았다만 수십 번을 하다가 수속을 겨우 밟았다. 수속을 밟고 나니, 마음이 풀어져서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나는 배낭 하나만 멘 채로 밀려오는 잠들을 억지로 이겨내며 비행기 타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하품을 쩌억 하다가 눈이 초롱초롱한 꼬마와 눈이 마주쳤다. 꼬마는 뭉크가 된 나와 달리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아이 옆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올 법한 신처럼 생긴 사람이 아이 못지않게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아름다운 미소에 잠에서 번뜩 깼고 셔터를 몰래 눌렀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미소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아빠는 정말 다정다감했고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아이를 얼마나 사랑스러워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엄마를 우수아이아에서 따로 만나기로 했는지는 몰라도 아이는 아빠 손을 꼭 잡고 까르르 웃고 있었다. 대여섯 살에 우수아이아라니, 축복받은 땅의 축복받은 꼬마란 생각이 들었다.


“아빠, 우리가 가는 곳이 정말 세상의 끝이야?”

“응, 그럼 그렇고말고.”“그 곳에 가면 뭐가 있어?”

“뒤뚱뒤뚱 걷는 펭귄이 있고 거대한 빙하도 있지.”


그들의 대화는 대략 이렇지 않았을까. 칠레 산티아고의 공항냄새가 푸근했다면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의 공항은 황량했다. 내가 우수아이아를 아는 이유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 때문이었다. 실연의 슬픔을 묻기 위해 세상의 남쪽 끝 등대로 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른거려서인지 우수아이아의 땅은 꼭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수아이아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네 시간이었다. 최종 목적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인 비행기의 환승지가 우수아이아일 뿐이었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바로 잠든 내가 눈을 떴을 무렵, 비행기는 상공이 아닌 지상의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공항냄새는 칠레 산티아고 공항과는 사뭇 달랐다. 공항의 사람들은 등산복, 스키복을 방패삼아 매서운 바람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난 네 시간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우수아이아의 유명한 국립공원에 갔다 오는 것이 나을지 등대가 어렴풋이 보이는 선착장에 가는 것이 나을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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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의 푸근한 아줌마 냄새.


우수아이아의 공항은 다른 공항과 달리 작았다. 공항 카페테리아에서는 따뜻한 커피와 초콜릿을 들이키며 차가운 손을 녹이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이제 막 공항에 도착한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세상의 끝을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고 수속을 밟기 위해 줄선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세상의 끝에서 외치는 환호성이 들렸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채우기 위해 카페테리아에서 커피 한 잔을 산 나는 카페테리아 주인에게 네 시간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지 자문을 구했다. 그러자 주인은 네 시간동안 이곳에서 무언가를 하기는 무리라고 공항에 머물 것을 제안했다. 물론 네 시간동안 공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았다. 한 시간짜리 드라마를 네 편이나 볼 수 있고 그동안 연락이 안 되었던 친구들과 페이스북으로 수다를 떨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직항이 아닌 우수아이아 환승을 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에서 슬픔을 묻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피부로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고민 끝에 카메라 하나만 들고 우수아이아 공항을 나섰다. 공항 앞에 늘어선 택시들은 내게 택시를 타라고 손짓했지만 나는 묵묵히 걸었다. 저 멀리 보이는 빙하가 뒤덮인 산을 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수아이아라고 적힌 전광판 앞에서 셀카를 찍고 있을 무렵, 조깅을 하던 아르헨티나 아줌마는 내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혼자 낑낑 대며 사진을 찍고 있던 내가 몹시도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꼿꼿하게 선 채로 카메라를 바라보자, 아줌마는 내게 두 손을 벌리고 활짝 웃으라며 사진관 아저씨같이 카메라 각도를 달리 하며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찍을 법한 점프 샷과 페루 맞추피추에서 찍을 법한 만세 샷을 우수아이아 공항에서 불과 일 킬로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몇 장이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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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는 아르헨티나 북부 지방에서 태어났지만 결혼을 하고나서, 아이를 기르면서 주욱 우수아이아에서 살고 있다고 하셨다. 마을에서 공항까지 매일 아침 조깅을 한다는 아주머니는 육십이 다 되어가는 데도 우수아이아의 깨끗한 자연환경 덕분인지 혈기왕성했다. 아주머니는 우수아이아 예찬론을 펼치며 네 시간만 이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내 사정을 안타까워 하셨다. ‘여자 혼자 여행하면 힘들지 않냐, 조심해야 한다.’ 부터 시작해서 나의 최종목적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파하기도 하셨다. 아줌마는 지루할 수도 있었던 네 시간동안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셨다. 스카이프로 소식을 주고받는 엄마의 따뜻한 온기를 아줌마로부터 간접적으로 느꼈다. 아줌마와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보니 어느새 네 시간은 십 분으로 줄어들었고 아줌마와 나는 우수아이아 공항 앞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아줌마의 품은 엄마의 품만큼이나 따뜻했다.


부엔 비아헤, 공항냄새를 수집한다는 것.


“부엔 비아헤.(좋은 여행이 되길 바라.)” 아줌마의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우수아이아를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끼는 설렘은 비행기를 다시 타고 떠나는 순간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이 곳 저 곳을 떠돌아다니는 여행자라면 설렘과 아쉬움 그리고 포근함을 모두 공항에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와서 몇 년 전 남긴 나만의 공항냄새를 느끼며 과거의 향수에 젖어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은 공항냄새를 수집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도착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살갗을 부대끼며 새로운 나를 발견한 후, 과감히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의 연속인 것이다. 공항냄새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진다. 오늘도 나는 공항냄새를 수집했던 카메라의 사진들을 보며 그 곳에서의 냄새를 기억한다. 냄새가 바래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사진을 넘기며 그 때 만났던 아빠와 딸, 아줌마의 냄새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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