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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럽여관 Sep 06. 2023

[리틀 노트] 다시 프리랜서가 되기로 하다

네 번째 퇴사, 난 '프로퇴사러'가 아니라 '프로도전러'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a, 회사b, 창업, 회사c을 거쳐 다시 프리랜서가 되기로 했다. 프리랜서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소속이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 4번의 정규직을 거친 끝에, 아무런 소속도, 다달이 나오는 급여도, 복지나 보너스도 없는 프리랜서의 길을 자발적으로 택한 것이다. 


퇴사가 쉬운 사람이 있을까. 얕은 고민과 자신감으로 퇴사를 지르던 20대의 나와 달리, 난 이제 어엿한 30대 중반. 한편 아직 앞날이 창창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제는 그냥 현실에 만족하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때가 아닌가 고민스러웠다. 어떤 날엔 내가 가진 기술과 능력으로 회사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창창할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밤엔 회사 밖에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움츠러들었다. 


게다가 내가 걸어온 길은, 연속성 있는 한 직무에서의 경력이 5년이 쌓인 게 아니라(예를 들면, 마케터 경력 5년), 콘텐츠 연구원이었다가, 중개인(세일즈퍼슨)이었다가, 스타트업 CEO였다가, 콘텐츠 에디터였던... 다양한 직무를 거쳤다는 특징이 있었다. 


한창 번아웃에 시달려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땐, 이게 내 약점이 될까 염려스러운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어느 정도 회복을 하고, 다시 단단해지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해봤다'는 것은 절대 내 약점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관건은 내가 나의 커리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포커스를 '그만두었다'에 두지 않고 '해봤다'에 두면, 그건 내 자산이고 강점이 된다. 하나의 일을 하다가, 또 다른 일을 시도하는 게 두려워 시도하지 않은 적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다는 생각, 잘해볼 수 있겠다는 의지가 생기면 도전하고 성취했다. 글 쓰는 일을 좋아하고, 또 잘하는 것 같은데 정규직 에디터로 일할 만큼의 실력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 에디터 직무에 도전했고, 인정받았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내 바운더리를 계속 넓혔고, 난 경력의 길이에 비해, 밀도 높은 경험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비로소 어깨가 펴지고 배에 힘이 잡혔다. 난 영어와 한국어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데 능하고, 구조적으로 탄탄한 글을 기획하고 쓰는 콘텐츠 에디터 역량이 있고,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실행력,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영어 통번역은 물론, 업무 환경에서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쓸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계속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몹시 추상적인 말이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된 건,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일'에 아무런 관심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난 약속을 지키고, 성실히 할 일을 완수하는 사람이다. 이런 나를, 사장님들이 원하지 않을 리 없다는 생각을, ex-사장의 관점에서 해봤다. 그러자, 프리랜서로 자리 잡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8월부터 본격적인 일 찾기를 시작했는데, 9월 현재 한 회사와 프리랜서 콘텐츠 에디터 계약을 맺어 일하고 있고, 여기에 더해 소소한 영한 번역 일을 받아서 하고 있다. 아직 회사에 다녔을 때만큼 돈을 벌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런데도 함께 일하는 곳을 매우 신중하게 늘리려고 한다. 기준은 1)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일인가), 2) 업무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일인가, 3) 함께 작업하는 회사 또는 브랜드의 미션에 동의하는가, 좋아하는가, 4) 나의 업무 방식이 존중되는가(24/7 연락 사절). 아마 이 기준은 프리랜서 업무 경험이 쌓이면서 보완되고, 추가될 것 같다. 


이번엔, 불안하다는 이유로,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거의 매일 한다. 내 시간, 내 하루, 내 에너지에 대한 주도권을 내가 쥐고 있자고 마음먹는다. 난 프로도전러니까, 이번엔 프리랜서로의 삶에 도전이다. 앞으로 프리랜서 도전기를 조금씩 남겨봐야지. 


(최근 면접을 본 회사 한 곳은, 어이없게도 무급으로 콘텐츠 작업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다. 기회를 준다는 이유로 착취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한 번쯤 풀어보고 싶다.)


(반년 정도 후에, 프리랜서와 사업/자영업의 공통점을 다루는 콘텐츠도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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