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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ㄱㅁ Sep 19. 2021

난 갓 태어난 고라니 새끼와 다르지 않았다

인생 첫 PT 체험글

오늘은  인생  PT날이다. 떨리고 긴장되고 뭔가 불안하다. 처음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오후 6 2 , 시간에 맞춰 PT 샘에게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회원님. 먼저 스트레칭  하고 계시겠어요?" PT 처음이었지만 헬스장 자체가 처음인 나에게 '먼저' '혼자' '스트레칭' 한다는  아주 당황스러운 주문이었다. 1) 스트레칭은 어떻게 하는 거죠? 평소처럼 팔을 당기고 다리를 늘리면 될까요? 2) 스트레칭은 어디가서 해야 하는 거죠? 저기 폼룰러를 하고 있는 남자  옆에 가서 저도 같이 해도 될까요? 초등학교를 처음  아이처럼 어찌할 바를 몰랐고 멍청한 질문이 머릿속에 맴몰았지만 태연한  대충 거울 앞에 자리를 잡은  몸을 쭉쭉 늘려봤다. 뭔가 혼자  넓은 헬스장  쪽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괜히 부끄러웠다.  발가벗은 기분은 뭘까. 생각해보니 일상에서 이렇게 크게 몸을 움직이거나 사용하는 일이 없기에 그런  아닐까 싶었다.


선생님은 금방 볼 일을 마치게 내 곁에 왔다. 발을 선에 맞추고 눈을 감은 채 제자리걸음을 시켜보고, 누워서 몇 가지 동작을 따라 해보라고 하더니 그는 척척박사 의사처럼 나를 진단했다. "왼쪽 다리가 짧으시네요? 오른쪽으로 골반은 틀어졌고, 몸이 앞으로 기울어져 있어요. 어깨도 많이 굽어 있고요. 평소 아프신 곳은 없으신가요?" 눈웃음을 띄며 팩트폭격을 날리는 선생님. 나는 그저 한 없이 움추러든 목소리로 연신 네,네 대답만 했다. 내 몸은 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찌그러지고 뒤틀어져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보수(하프 짐볼) 앞에 섰다. 3초 전 선생님의 시범을 보았는데 따라 하려니까 왜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얘질까? 오른 발을 위로 차라는 말을 분명 들었는데 내 오른발은 왜 자꾸 뒤로 차질까? 보수를 꾹 누르라는데 도대체 힘이 들어가질 않고 몸이 위태위태 흔들거리기만 했다. 허 참 난감하다. 게다가 선생님이 옆에서 계속 엉덩이는 빼라고 하고, 허리는 펴라고 하고, 상체는 숙이라고 하니 더 정신이 없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한심하게 만드는가. 좌절스러움에 멍청한 표정만 짓게 된다.


이번엔 바벨을 등 뒤쪽으로 들고 백 스쿼트를 한단다. 내가 바벨을 드는 것도 놀랄 노 자인데 이걸 들고 백 스쿼트를 한다고요? 무거운 바벨을 들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동안 자세에 신경쓰느라 이번엔 숨 쉬는 걸 깜박했다. 순간 머리가 핑 돌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하필 또 이 타이밍에 기립성 저혈압까지 난리다. 선생님 목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다. 고민하다 이러다 쓰러질 것 같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저혈압이 있어서요. 지금 많이 어지러운데 잠시 쉬었다 가도 될까요?" 결국 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구토를 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하하하. 이게 무슨 일인가. 체력이 저질인 건 알고 있었는데,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고 숨조차 잘 쉬지 못하는 지경이라니. 또 몸은 여기저기 굽고 찌그러져 기본자세조차 따라 하지도 못한다니. 게다가 저혈압이라면서 주저 앉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정말 가지가지 다 하는 몸이다. 순간, PT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이 들었던 건 비밀이다.


이 지경이 될 때 동안 몸을 돌보지 않은 내가 한심했고, 이 지경의 상태로 여태 버거운 내 일상을 견뎌준 몸에게 감사했다. 근데 첫 PT 체험, 다들 이런 거 맞죠? 선생님 저도 포기하지 않을 테니, 선생님도 절 포기하지 마세요. 분부대로 유산소 열심히 하고 있을 테니, 다음 주에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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