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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ㄱㅁ Jun 02. 2021

불행한 채로 행복해지기

불행을 밀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더 많은 행복을 끌어올 것이다


26 때였나?  선배가 그랬다. 자신20대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지금이 행복해서라기 보다는 그때가 하도 고단하고 고달팠어서 상상하기도 싫다고.  말이 도화선이었을까? 그쯤 나름 무난하다고 생각하던 나의 20대가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고행의 길로 들어섰다.


아빠는 사기를 당했고, 동생은 사고를 쳤다. 아빠는 가끔 미쳐 보였고, 동생은 가끔 괜찮아 보였다. 쉼 없이 몰아친 재난, 그 앞에서 고집스러울 만큼 꼿꼿했던 엄마의 두 다리가 휘청거렸다. 나는 온몸에 불을 뒤집어 쓴 사람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이리 펄쩍 저리 펄쩍 뛰어다녔다. 월급이 80만 원이었던 인턴 때부터 모은 적금은 기본이요, 돼지저금통 100원까지 탈탈 털어야 했고, OO상담소, OO센터 등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전화를 걸어 도움을 구걸했다.


빚도 빚이고, 돈도 돈이었지만, 진짜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예뻤던 우리집 막내가 병들어간다는 걸, 그의 영혼이 모두 시든 후에야 알게 됐다는 거다. 그 사실이 우리 가족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함에, 옆에 두고도 여태껏 알아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가슴을 치는 밤이면 믿지도 않았던 신을 찾았다. 시간만 나면 틈틈이 엄마와 함께 절을 찾아가 108배를 드렸다. 고개를 조아릴 때마다 오직 한 가지 소원만을 빌었다. ‘제발, 제가 사랑했던 동생을 돌려주세요.’ 말 없는 불상 앞에서 엄마와 나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 조용히 흐느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친구들을 만나면 농담을 하고, 숨이 넘어가도록 웃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입맛을 다셨고, 예쁜 옷을 보면 욕심을 냈다. 그렇게 행복한 날이면 밤이 더욱 길고 아팠다. 침대에 누우면 징그럽게 웃고 있는 내 얼굴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그 시절 나에게 행복은 죄책감이었다.


큰 지진이 나면 크고 작은 여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한 번 시작된 불행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사사건건 내 인생에 훼방을 놓았다. 반복되는 불행에 이골이 나자, 나는 수습도 포기한 채 어느 순간 내 삶을 꼭 남의 인생 살듯 돌보지 않게 됐다. 불행하면 행복할 수도, 행복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야속하게도 새해는 밝았다. 신년인사를 드리기 위해 엄마와 함께 절을 찾아간 나에게 스님은 물었다. “부처님께 어떤 소원을 빌었니?”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빌었던 소원은 언제나 단 하나였다. “제 동생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길 빌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했다. “오늘은 다른 사람이 아닌 널 위한 소원을 빌어보자꾸나. 네 소원은 무엇이냐?” 뭐라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떠오르는 게 없었다. 보름달 아래에서 두 손을 모을 때에도,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끌 때도, 돌탑 위에 돌을 얹을 때에도 그 기도의 끝에는 항상 동생과 가족뿐이었다. “남자친구를 사귀게 해달라거나, 좋은 직장을 가지게 해달라거나, 이런 걸 말하는 게다.” 손톱 끝만 뜯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한 스님이 든 예시가 너무 소박하고 평범해서 얼마나 서글프고 서러웠는지 모른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방치해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날 밤, 나는 혼자 옥상에 올라가 별을 보며 누구보다 이기적으로 ‘나의 행복’을 빌었다.


29살이 된 지금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빚은 눈앞이 캄캄할 정도로 많고, 동생은 방황 중이다. 불행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 수시로 울컥하고, 가끔은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엉엉 울 때도 많다. 하지만 26살의 나는 몰랐지만 29살의 내가 아는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은 불행한 채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또 그게 잘못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불행을 밀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더 많은 행복을 끌어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웃고, 떠들고, 먹고, 때로는 날 위해 사치도 부린다.


선배처럼 나 또한 다시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20대를 보내고 있다. 아마도 지금이 내 인생이라는 책에서 가장 찢어 버리고 싶은 한 페이지가 아닐까. 29살의 내가 다가올 30, 40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때가 되었을 때 지금의 이 페이지를 찢어 버리지 못하도록 소중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 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았을 때 “내 인생도, 꽤 괜찮았어”라며 자축할 수 있도록, 나를 위한 재미난 일을 꾸준히 벌일 것이다. 지금처럼.


* 이 글은 매거진 <나이이즘>에 실렸더 에세이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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