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의 방
엄마와 단둘이 살았던 영구임대아파트는 에어컨이 없던 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17년을 산 그 집에서 15년은 에어컨 없이 버텼다.
대구의 한여름, 실내 온도는 31도를 넘기기 일쑤였고,
더위는 삶 그 자체처럼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엄마와 나는 공짜 에어컨을 쐬겠다며 지하철을 탔다.
백화점 안을 뱅뱅 돌기도 했다.
그러다 해가 지면,
마지못해 다시 그 더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씻고 나와도 땀이 줄줄 흘렀다.
제대로 된 선풍기 하나 둘 곳이 없어
작은 선풍기 몇 대를 돌리며
얼음팩을 안고 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에어컨은 엄마가 암 선고를 받기 몇 년 전쯤에야 달렸다.
하지만 틀 일은 거의 없었다.
전기세가 무서웠다.
엄마는 늘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안 괜찮았다.
그래도 엄마는
내가 집에 올 때만 에어컨을 틀어주었다.
엄마의 항암치료를 시작하고 나서야
엄마는 조금씩 에어컨을 켜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을 닫지는 않았다.
문을 닫으면 햇빛이 차단돼 답답하다고 했다.
엄마에게는 그 빛조차도 ‘생의 증거’였을지 모른다.
그 12평 남짓한 집은 작았지만,
우리의 시간은 그보다 훨씬 넓고 깊었다.
그곳은 가난의 전장이자,
사랑의 성소였다.
나는 오늘도 한여름의 열기 속에서
엄마를 떠올린다.
그 시절, 그 방, 그 창,
그 문틈으로 들어오던 빛까지도.
그리움은 늘 가장 더운 날,
문을 열어둔 채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