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중국 자본의 힘
새벽 3시에 깼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체크인을 하고 새벽 1시 즈음 잠들었는데 두 시간정도 자고 깨버렸다. 창문밖에서 웬 닭이 목청이 터져라 울어댔다. 옛날 만화에서나 보던 그 '꼬끼오' 소리였다. 실제로 들어본 적은 몇 번 없는데, 이렇게 가까이 또 우렁차게 여러 번 끊임없이 우는 소리는 처음이었다. 저러다 말겠지 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보았지만 그 닭은 지치지 않고 30분 넘게 울다 조용해졌다. 그 후에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엄청나게 거대한 호화 리조트가 아니고서야 새벽닭 소리는 어디에서나 들린다는 것.
우기여서 걱정했던 날씨와는 다르게 아침햇살이 쨍하게 우릴 반겼다. 그래도 실내는 에어컨이 틀어져있어서 라오스의 뜨거운 날씨를 느낄 틈이 없었다. 1층에 있는 카페에 가서 조식을 주문했고, 빠질 수 없는 모닝커피도 한잔 주문했다. 우리 엄마는 커피 마니아다. 나는 커피를 못 마시지만 엄마는 1일 2 커피는 필수고 3 커피 4 커피까지도 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얼죽아의 정 반대인 뜨죽따, 뜨거워 죽어도 따뜻한 아메리카노. 따뜻한 커피보단 뜨거운 커피를 선호하시니 떼죽 뜨가 맞겠다. 여행 내내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도 커피만큼은 뜨거운 아메리카노만 드신다. 라오스 커피를 한 모금 드시고는 엄마의 눈썹이 한껏 올라갔다. '오 맛있는데?' 라오스 커피는 굉장히 진하기로 유명한데 일단 첫인상은 합격이었다. 볶음국수와 쌀죽도 향신료가 강하지 않아서 적당히 먹고 기차역으로 갈 준비를 했다.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국내선 비행 편을 이용하거나 슬리핑버스를 이용해 육로로 이동하거나 고속열차를 타거나. 비행기는 약 한 시간 정도 소요되고 슬리핑버스는 1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다 2023년에 중국이 라오스에 기차역을 만들면서 이동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비엔티안에서 방비엥까지 1시간,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까지 1시간이 소요된다. 가격도 꽤 저렴한 편인데 1등석 기준으로 비엔티안-루앙프라방 노선 요금은 52만 낍 한화로 33000원 정도이다. 2등석이랑은 약 1만 원 정도 차이가 나지만 부모님 모시고 갈 땐 고민하지 말고 1등석을 구매하시길.
비엔티안 공항에서 기차역까지는 택시로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택시로 기차역을 가는 길에 메콩강변을 달렸는데 메콩강의 폭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건너편 마을이 보였다. 저기에도 집들이 있네.. 하고 중얼거렸더니 택시기사님이 그쪽은 태국이라고 알려주셨다. 아니 저게 태국이라고? 너무 놀라서 휴대폰 카메라로 확대해서 보았다. 강 폭이 한강정도 되어 도저히 헤엄쳐서 못 건널 거리도 아니고 작은 통통배 하나만 있어도 금방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게 국경이라니 너무 신기했다. 군인이나 철조망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고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실제로 태국 여행을 마치고 라오스로 넘어오는 여행자들도 많다고 했다. 분단국가에 사는 나로서는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차역은 정말 거대했다. LCR(Laos China Railway)이라 불리는 이 기차역은 누가 봐도 중국이 만든 건물이었다. 타는듯한 더위에 얼른 역 안으로 들어갔다. 고속열차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배가 고파서 주위를 둘러보니 나름 음료나 간단하게 먹을 샌드위치등을 파는 카페와 편의점 등이 4개 정도 있었지만 딱히 끌리는 것은 없어서 비어라오 두 캔과 레이즈 감자칩 한 봉지를 사서 탑승을 기다렸다. 1시 30분 열차여서 20분 전부터 탑승시작을 했다. 일등석은 생각보다 자리가 여유로웠다. 한국 여행객들이 LCR 티켓예매가 까다로워 예매대행업체에 많이 맡긴다고들 하는데 내가 예매해 본 결과 생각만큼 그다지 치열하지 않았고, 또 상대적으로 1등석은 더 예매가 수월했다. 직접 예매해 보시는 걸 추천한다.
열차를 타고 기다리고 있는데 1시 26분 즈음 안내방송이 나왔다. 열차가 곧 출발하고 문이 닫힐 예정이라는. 아직 4분이나 남았는데 벌써 출발한다고?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창밖의 풍경이 조금씩 움직였다. 기차가 출발한 것이다. 시간은 1시 28분. 세상에 시간 딱 맞춰서 왔으면 못 탈 뻔했잖아? 혹시 LCR 기차를 탈 계획이라면 반드시 30분 전에 기차역에 미리 도착하기를 추천한다.
기차는 쾌적했고 승차감도 좋았다. 다만 인터넷 사용이 불가했다. 나는 기차역에서 당근 중고거래 채팅을 하고 있었고 그 분과 시간 조율을 하고 있었는데 '당분간 해외에 있어서 오늘 직거래는 어렵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못 보내고 인터넷이 끊겨버렸다. 야속하게도 잠금화면에서는 '판매자님?', '파실 건가요?' 팝업이 떴지만 내 메시지를 보낼만한 여력은 없었나 보다. 결국 2시간이 지나 루앙프라방에 도착한 후 답장을 보냈더니 그에게선 영영 답장이 오지 않았다.
한 시간을 지나 방비엥 역에, 또 한 시간을 지나 루앙프라방 역에 도착했다. 지나온 모든 역들은 생김새가 똑같았다.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온건 북쪽으로 이동을 한 것인데 왠지 난 이곳이 더 덥게 느껴졌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뜨거운 지열과 햇빛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것 같았다. 호텔까지 이동은 계획하지 못하고 와서 아래에 대기 중인 조인벤에 몸을 실었다. 10명 정도 작은 벤을 타고 호텔을 말하면 한 팀 씩 내려주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젊은 서양인들과 함께 탔는데 자리가 부족했는지 한 커플이 의자 하나에 엉덩이를 구겨 넣고 앉아 가는 내내 인상을 팍 쓰고 있었다. 돈은 똑같이 지불했는데 자리도 없고 날은 덥고 길은 비포장이라 덜컹거려서 굉장히 불편했을 거라 그의 표정이 내심 이해가 갔다. 25분쯤 달렸을까, 모든 일행이 내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호텔에 도착했다. 외진 골목 사이에 있던 우리의 첫 호텔, 인터넷에서 본 사진처럼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루앙프라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