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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엽 Aug 19. 2024

협력과 기억의 연관성

경쟁은 본능이고 협력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 문장이 과연 맞을까? 호모사피엔스는 협력적 존재다. 이것은 본능에 가깝다. 그들의 협력적 DNA가 전 지구 표면의 80억 인구를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지 않을까? 

우선 인간은 여타의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함께 살아간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생존을 넘어 '문화'라는 인간만의 독특한 공유된 개념을 만들며 사회를 일구어나가는 것 또한 '협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진화생물학자나 인류학자들은 협력이 일어나게 되고 그것이 20만 년 호모사피엔스-호모종으로만 설명한다면 그 기원은 수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의 DNA에 새겨지게 된 요인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수상생활에서의 탈피, 직립, 도구의 사용, 사냥과 농경, 언어와 문자의 사용 등

이분법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협력은 경쟁보다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유리한 선택이다. 


우리는 세상을 받아들이며(감각) 그것을 통해 지각하고 인지하고 인식한다. 그것을 의식이라고 하고 그 의식이 스스로에게 향하면 '자의식'이라 명명한다. 즉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자아(self)의 출현이다. 외부의 대상을 지각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다. 지각은 단순히 외부 세계를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 구분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범주화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기억이라 칭해도 무방하다. '기억된 것이 지각되고 기억된 것만이 지각된다'라는 말처럼 지각과 기억은 통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기억은 시간의 개념을 동반한다. 시간은 대상과 대상의 관계에서 출현하는 상대적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책갈피를 꽂는다면 과거의 지각을 현재로 소환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사용될 때 우리는 그것을 소위 기억이라 칭한다. 


학교에 있다 보면 학생들은 기억의 반경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쉽게 관찰하고 느낄 수 있다. 자신의 관심사는 경험된 기억에서 파생되어지는 경우가 많고, 학습의 전이 또한 기억에 의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기억을 교과의 내용으로 옮긴다면 그것을 우리는 '암기'라고 칭하게 된다. 암기라는 말속에는 지금의 교육 철학이나 기조와 결이 다른 측면이 있어 부정적 이미지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적 지식은 언제 어디서든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찾을 수 있고 그것을 굳이 전달시키는 것은 현재 사회상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편적인 사실을 암기하는 것은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도 큰 이유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학교에서는 분명 우리 삶의 양식의 일환으로 '교과'를 선정하여 학습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우리가 지각해야 하는 대상을 범주화해놓은 것이 교과라고 정리할 수 있다. 각 교과의 내용은 수많은 사실적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을 또 한 번 범주화해서 학습하는 것을 우리는 이해했다고 표현한다. 

다시 정리하면 사실적 지식들의 지각을 통해 우리는 인지하고 인식으로 나아가 드디어 이해했다고 표현하고 그것을 속된 표현으로 교과를 다 뗐다. 학교에서 통용되는 표현으로 '진도 나갔다'라고 하는 것이다. 진도는 학교와 교사의 의무이자 학생들의 권리이다. 교과의 내용은 학급에서 꼭 다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범위가 되어 시험이 출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교과의 진도는 교과서라고 하면 너무도 사실적일까?

즉, 교과서의 내용을 기억했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은 내용에 따라 '암기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교사는 그 교과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암기'를 해야 하는 주체는 학생들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암기는 지루하고 힘들다. 그런데 암기를 유독 잘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것 또한 한 발짝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암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전 내용과 연결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기억은 이전 기억을 통과할 수밖에 없는 '뇌의 메커니즘'상 이전 암기를 다 마친 학생이 다음 암기에 강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역사는 암기과목이야'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리고 떠올려보면 몇 개의 역사 연도, 인물 그리고 '태종태세문단세~'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역사가 재미없게 되는 이유라고도 한다. 역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이기에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다들 수업시간에 흥미롭게 설명되는 선생님의 역사 이야기에 넋을 잃고 빠졌던 경험이 한 번씩은 있다. 그런데 시험에는 그런 역사의 흐름보다는 단편적인 사실이 출제되기 때문에 공부는 암기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겪게 된다. 그럼으로써 역사는 재미없다는 인식-인식은 해석의 영역이다-이 생기게 되고 판서를 학습장에 기록하는 수업이 대세를 이룬다. 왜냐하면 교과서의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역사뿐 아니라 사실 같은 탐구교과인 과학 그리고 도구교과라는 국어와 영어와 같은 언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미술이나 음악도 내용을 암기해야 풀어낼 수 있는 문제들이 출제되기에 교과에 흥미를 가지다가도 흠칫 멀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어쩌라는 것인가? 기억이 결국은 이해로 직결되는데 기억은 암기다. 암기는 재미가 없다. 해결이 불가능한 무한루프에 빠지게 된 것인가?


교육학에  '아하 현상(Eureka effect)이라는 것이 있다. 깨달음의 순간에 몸에서 기쁨의 신경전달물질-뇌과학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라 한다-이 생성되고 그것이 기억의 강화로 이끈다는 것이다. 새로움을 만났을 때 흥분되고 긴장되는 순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때 분비되는 그 호르몬이 느낌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조금 곁가지로 새어나가 이야기하면 때문에 유아와 아동기의 시간은 천천히 그리고 노년기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고 이야기한다. 어릴 때의 경험은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롭지만 나이가 들어 경험하는 많은 것들은 이미 예측가능한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기억으로 돌아가 단순한 감각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놀라움과 흥분'이라는 감정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감정과 기억은 강력하게 링크되어 있고 이것을 활용하여 새롭게 깨닫거나,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른 새로운 지식을 접했을 때 기억이 오래 유지된다는 이론은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 자연스럽게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이 떠오른다. 학습에서의 기억을 위해서는 나에게 새로움을 만나게 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아하'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혼자서 아하! 를 외치는 경우보다는 확률적으로 다른 대상을 통해 새로움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큰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책을 읽든 인터넷상에서 강의를 듣든 그것도 누군가와의 만남이다. 학습자 간의 소통이나 관찰을 통해 아하! 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뇌는 거울 뉴런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모방은 우리의 본능이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인지의 공명이 느껴질 때가 있다. 서로가 생각하고 사유하면서 판단하는 것이 파동처럼 흐르고 그것이 만나 어떤 조율된 화음을 만들어 내는 기묘한 경험말이다. 굳이 교육의 방법에서 학생들이 주로 발화하는 토론이나 토의식 수업을 들지 않더라도 교사의 발문에 함께 생각에 잠길 때, 그 침묵 속에서도 오묘한 느낌을 전해 받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한두 명이 침묵을 깨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한다. 짧은 단어가 될 수도 있고 긴 문장이 될 수도 있다. 4학년을 가르칠 때 직립보행하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고 했을 때 한 아이가 '공룡...'이라 답했을 때 많은 아이들의 그 표정과 생각의 흐름... -물론 교사의 발문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만 엄밀히 직립보행하는 동물은 인간과 펭귄 밖에 없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어렸을 때 기억으로 남아있는 공룡을 소환하여 동물의 구조에 대해 재미있게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무는 왜 씨를 심지 않고 묘목을 심는지, 달은 자전하며 공전한다는데 왜 뒷면을 볼 수 없는지에 대한 질문에 함께 사고 실험을 했던 기억, 달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다는데 왜 초승달은 초저녁에 서쪽에서 뜨는지? 그밖에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인문학적 논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학습으로 이어갔던 경험 중에 느낀 보이지 않는 사고의 끈이었다. 여러 개의 뇌가 함께 교실에서 살아 움직이면서 이리저리 얽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기억을 우리는 경험이라 말하고 그것이 때로는 에피소드로, 때로는 강력한 지적유희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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