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의도된(바람직한)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삶의 양식으로의 입문, 즉 교육을 성년식으로 비유했던 피터스의 말 처럼 많은 학교에서 '민주시민 양성'과 같은 기치를 걸고 학생들을 교육시킨다.
학습자의 입장에서 보면 수동적으로 교육을 당하는 것이지만, 최근 학습자 스스로 즉,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도록 하는 '학습자 Agency'가 강조되고 있다. 더이상 주입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벗어나 가속도 증가 법칙에 따라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사회의 양상에 맞게 지식의 폭증의 시대에 자신의 문제 상황을 직접 설정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검증할 수 있는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가지는 학습자의 능동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탐구적인 학습 방법이나 학습자들의 능동적인 학습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등한시 되고 있는 교과의 내용들에 대해 필자는 주목하고 소회를 밝혔다. 보다 합리적이고 정확한 맥락적 판단을 위해서 고려해야 할 요소는 많지만 아직 사회의 경험이 미천한 학생들에게 교과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름들. 즉 사실적 지식들을 어쩌면 반복하여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개념적 이해로 연결시키는 지름길이 아닌가? 라는 가설로써 말이다.
문제해결능력을 갖추고 있는 교사나 기성세대들의 시각으로 교실수업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시선으로 역지사지 해보는 것은 어쩌면 수업 전 다른 어떤 요인들에 대한 고려보다 선행되어야 할 태도라 본다. 다만 그런 사실적 지식들을 일방적이고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이외에 학습자들의 말과 행동, 사고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자료로써의 변환과 그런 자료의 조작적 활동을 통해 사실적 지식들을 발견하고 분류하고 규정하는 방안들이 각 교과에서 더욱더 고민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화려한 수업기자재나 눈에 띄는 자료의 제작, 역동적인 학습자의 응답과 교사의 동선보다 더욱더 말이다.
좋은 자료들은 웹상에, 도서관에, 출판사에, 방대하게 넘쳐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교사의 주도성, 바꾸어 말하면 교사의 Agency가 발현되지 않은 자료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누구나 클릭한번으로 재생가능한 영상이나 ppt, 사진, 그림 등에 정작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담임 교사의 손때가 묻지 않은 그러한 교육자료의 투입은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분명 제한점이 있다. 화려한 폰트와 에니메이션이 담긴 프레젠테이션 파일 하나 보다 교사가 직접 그은 칠판의 직선 하나가 더 의미있다고 바꾸어 말하고 싶다.
'중등으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교과의 내용을 강조하는 수업이 진행되기에 초등에서는 그나마 다양한 형태의 협력적 수업을 모색해야 되지 않는가?'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다. 사교육에서 이미 많은 사실적 지식들을 측정하는 형태의 시험을 치고 있고, 이러한 시험을 통해 지식의 구멍을 발견하고 메우는 형태로 반복적 학습을 이미 하고 있는 학생들. 이라 현실을 되물을 수 있지만 공교육의 역할에 대한 의심스러운 시선을 거두기 위해서라도 다시 교과의 내용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배움은 곧 지식을 의미하고 지식을 통해 우리는 변화로 이어진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자명한 논리를 대입해보자면 태도도 곧 지식에서 출발한다. 지금도 초등학교의 교실에서는 어쩌면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끌 수 있을까? 라는 공통된 고민을 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결론은 결국 교과의 내용을 벗어난 다른 형태로 귀결되어 버리는 모습을 무수히 보게 된다. 공개적으로 보여지는 수업만 보아도 그렇다. 잘 짜여진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수업을 보며 우리는 '좋은 수업이었어'라고 평가를 내리지만 침묵이 이어지고 사색이 펼쳐지는 수업을 보면 참관자들이 오히려 그 침묵을 견뎌낼 수없어 당황스러워 하게 되는 것이 바로 필자의 판단에 대한 증거다.
배움과 성장은 인식의 확장에서 시작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꽃이 피어오르는 지금, 왜 어떤 나무는 꽃이 먼저? 아니면 어떤 나무는 잎이 먼저? 생겨날까? 초승달은 왜 초저녁 서쪽하늘에서 볼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과연 발전하고 있을까? 와 같은 질문(실제 필자가 올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받았던 질문이다.)은 교과의 내용이 선행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이다. 학문은 질문을 배운다는 의미다. 좋은 질문을 한다는 것은 곧 자기 주변을 보다 더 정밀한 시선으로, 맥락적인(개념적인)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다는 증거다.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검증이 어렵지만 그런 안목이 확장되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 학교가 해야할 바람직한 변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