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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May 30. 2022

아빠와의 거리

나에게는 시간의 거리가 없는 사람이 있다. 꼭 봐야 한다면 그 사람을 보기 위해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상관없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그 사람에게 꼭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 제쳐두고 갈 수 있다. 나에게 우선순위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시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생각에 잠겨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을 테니까.


아침에 알람이 울렸다. '아빠 생신'이라는 알람이었다. 아! 아빠 생신이구나. 이틀 전 아빠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고, 아빠는 이 나이에 뭐가 필요하겠냐며 괜찮다 했다. 아빠 나이에 무엇이 필요할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아침에 알람을 보며 순간적으로 '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생신 당일에 축하드린 적이 있었던가? 솔직히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가까이 살 때, 미리 주말에 가서 축하해드린 적은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내가 서울로 이사오고 나서는 미리 가서도 축하해드린 적이 없었다.

올해 아빠의 연세 69세. 60대 마지막 생신이시다. 나는 나의 한 시기에 마지막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정작 부모님의 생신에는 그리 여기지 못했던 것 같다. 특히 아빠 생신에는 더욱 그랬다.

엄마에게는 언제나 살가웠고, 엄마 생신은 살뜰히 챙겼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달랐다. 자라오며 아빠에 대한 미운 감정이 컸었고, 고생하는 엄마를 보면 사라져버리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가졌었다.


그렇게 미워하던 아빠는 13년 전 쯤,  암에 걸리고 난 뒤 완벽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 아빠에게 감사함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아빠가 변한 것에 대해 대단하다 생각하고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더 늦기 전에 말해야 하지 않을까.


짧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고나자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노트북을 챙겨 서울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서울역으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했다. 생신이셔서 '나'라는 선물이 간다고.

엄마는 뭘 또 오느냐며 괜찮다고 했지만 아빠 생신을 제대로 챙겨드린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런다했다. 지금 서울역으로 가는 길이라고.

다행히도 노트북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라 기차안에서 일을 했고, 대표님들께 아빠 생신이라 시골에 내려간다고 말하니 마음 편히 다녀오라 해주셨다.


밀양역 앞에는 엄마가 서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아빠에게 막내딸이 내려온다고 했더니 눈물을 훔치셨다고 했다. 감동받은 듯한 말투로 "진짜?"라고 말하면서도 엄마가 그냥 하는 소리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냥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빠가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처음이었다. 아빠는 온 세상의 행복을 다 머금은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는 밥을 먹고, 밀양 위양못을 둘러보고 근처 카페로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아빠에게 말했다. 사실 아빠가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다고. 사람이 변하기가 참 어려운데. 주위를 둘러보면 안 좋은 사람인채로 그대로 나이 들거나 더 나빠지는 사람도 많다고. 아빠처럼 이렇게 180도 바뀐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그래서 존경하고, 지금이라도 아빠에게 이런 말을 전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아빠는 그런 내 말에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을 거라 답했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에 생일이라고 먼길을 한 걸음에 달려온 딸이 있어 행복하다며 말이다.


드디어 시간의 거리가 없는 사람 중에 아빠가 포함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없는 시간의 거리가 아빠에게 있었다. 나는 아빠에 대한 미움을 다 버린 줄 알았다. 그럼에도 완벽하진 않았나 보다.  이 글을 쓰며 마지막 미움까지도 다 털어버리고 이제 아빠라는 방에 사랑만 가득 채워본다.


사랑합니다. 아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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