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춘기가 올랑 말랑 한 아이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자신의 내면에 심각하게 몰입 중이다. 자신이 한 말, 한 행동, 여러 모순적인 마음들... 자신의 말과 행동에 한 톨의 거짓이 있거나 그간 배워온 도덕적 기준에 어긋난다는 판단이 들면 상당히 괴로워한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제삼자에게는 정말 사소해 보이는 고민들이 이어지는데 한두 번은 가볍게 들어줄 수 있지만, 이런 질문이 계속되면 거의 정신 고문 수준이다. 유치원 다닐 나이의 아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받는다고 생각해 보라.
이를테면 이런 것들. 괄호는 내 대답이다.
- 친구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할 정도는 아닌데. 축하한다고 말하면 거짓말을 한 것 아닐까?
(누구나 그런 거짓말, 상대를 기분 좋게 해 주는 하얀 거짓말 정도는 하고 산다. 엄마도 거짓말 많이 한다. 밥 한 번 먹자 그런 말들. 그걸 인사치레라고도 한다.)
-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어도 저 멀리서 차는 굴러오고 있는데, 저 차가 내가 건너는 걸 보면서도 안 멈춰주면 어떡하나?
(일단 초록불이 켜져도 3초 정도 지켜보고 손 들고 천천히 건너보자.)
- 생명은 소중한데 개미를 모르고 밟았다. 괜찮을까?
(-과거의 인격파탄을 고백하며- 그럴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개미한테 미안한데 엄마는 어릴 때 바가지에 물 떠놓고 개미 수영 대회를 열기도 했다. 엄마처럼 일부러 괴롭히지만 않으면 된다.)
- 개학하고 교실에 가는 첫날, 마주치는 모든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될까? 일부 남자아이들에겐 인사하고 싶지 않다.
(그 정도는 제발 네 맘대로 해라...)
- 선생님이 "알았어?"라고 물었을 때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글쎄요."는 버릇이 없나? 그럼 "잘 모르겠어요."라고 매번 대답하나?
(정말 모든 질문에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나는 이 현상을 '도덕적 결벽증'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하고, 자라면서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라서 그런 것 같다고 짐작하기도 했다. 듣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닌데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사회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순수한 질문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질문이 철학적이기까지 해 제발 소아정신분야와 철학에 박학한 현자가 나타나 대신 답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왜 그동안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대답하고 길을 건널 수 있던 아이가 새삼스러운 질문을 품게 되었을까? 정말 사춘기가 되려는 조짐일까? 이 증상 전에는 욕이 자꾸만 하고 싶고, 아무한테나 은연중에 욕이 나올 것 같다며 엉엉 운 전적이 있다. 지금은 귀여운 에피소드가 되었지만. 사춘기가 되면 전두엽이 일종의 '대공사' 상태가 되어 행동과 정서에 혼란을 겪는다고 하니 이런 증상도 어딘가 우당탕탕하고 있는 과정으로 알고 얼른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는 오늘 아침에도 2학년 때 어울리던 친구에게 잘못했던 일을 떠올리며 울었다. 지우개를 가지고 티격태격했다나. 자기가 친구 말을 무시하고 괴롭힌 것 같아 마음이 괴롭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교에서 일평균 237건쯤 발생할 수 있는 급우 갈등이다. 선생님한테 울그락불그락하는 얼굴로 달려가 "선땡님, 얘가 저한테 이러케 저러케 해써요!!!"하고 이르며 친구를 째려보면 그만일 일. 3학년 2학기가 시작된 지금 2학년 때의 사소한 사건으로 아침 밥상부터 눈물짓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속으로 '또 시작되었구나. 지겹다'하던 마음은 아이의 그렁그렁한 눈을 보고 쏙 들어가 버렸다. '아, 진심으로 괴롭구나.'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이를 얼른 안아주었다. 그리고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잘못한 걸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다음엔 안 그러려고 더 노력하면 돼."
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을까. 같이 학교에 가는 길에도 엄마도 이런저런 실수 정말 많이 하고 산다고, 모든 잘못을 다 되돌릴 수는 없는 거라고. 잘못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잘못을 잘못인 줄 모르고 끝없이 남의 인생에 생채기를 내고,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 잘못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개선의 여지가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은 뱉는 나에게도 조용한 위안이 되었다. 그간 은은한 우울감에 시달려 왔는데 그건 내가 주어진 삶에 너무 열심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제일 젊고 건강한 상태인 것도 모르고 몸을 방치하고, 이상은 높으면서 실천은 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헛된 꿈만 있을 뿐 노력하지 않는 내가 싫었다. 이런 불쾌감이 조용히 나를 휘감았고, 그 불쾌감은 점점 더 커져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내게 계속 보내고 있었다. 나에게 늙음이라는 시기가 주어질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미래를 떠올려봤을 때 돈이 없는 노후보다 후회만 가득한 노후가 더 비참할 것만 같았다.
그래, 잘못된 것을 알고 있으니 됐어. 조금씩 바로 잡자.
그렇게 짧은 시간이라도 땀 흘리며 운동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책상에 앉아 끄적이고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는 요즘이다. 값없이 받은 인생. 제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는 팔다리와 내장기관이 있고, 곁에는 다정한 사람들이 있다. 나도 나로서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요지경의 정서적 성장 과정을 거치고 있는 딸이 나에게 또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아이도, 나도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