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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Nov 25. 2021

잘 못하는 나는 너무 창피해요.

현재 시각 6시 45분. 퇴근하자마자 글을 쓰려고 부랴부랴 노트북을 켰다. 막연하게 생각나는 감정들을 지금 정리해두지 않으면 휘발되어 없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마음 병원을 다니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갔던 후부터였을 거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었지만 이상한 사람이라고 이야기 들을까 무서워했던 것도 있었고, 약을 먹어서 내가 호전될 거라는 기대감은 갖지 않았다. 모두 의구심만 가진 채 발을 디뎠던 세상이었다.     


그렇게 약을 먹으면서 느꼈던 첫 번째 변화가 감정적인 부분이 많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화’라는 감정 안에는 짜증, 분노, 등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면. 화가 나는 것과 짜증이라는 감정은 서로 다른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 다 부정적인 감정에 속하지만 말이다. 


짜증이 많으면 불만이 많은 사람, 그게 많아지면 화가 많은 사람이 된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 지금도 다시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것이 감정의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가장 빨리 느낄 수 있었던 변화였다. 감정의 영역과 생각의 영역은 다르다는 것을. 감정의 영역과 생각의 영역이 비슷하게 유지가 된다면 마음의 여유가 있는 상태가 되지만, 감정이 침범해버리면 생각을 마비시킨다는 것도.


그런 사실을 기반으로 때로는 생각이 과잉되거나, 감정이 넘쳐흐르는 것 같다고 느끼면 재빨리 전환하려 하곤 했었다. 하지만 최근은 달랐다. 마치 그 변화를 느꼈던 걸 까먹은 사람처럼 

감정에 젖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오후에야 알았다. 아, 나 또 이성적이지 못했구나 라고. 

    

익숙하지 않은 업무.

너무 내겐 어려운 업무라고 느끼던 것에 대해서 차근차근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묻고, 또 물어가며 알게 된 내용을 스스로 복기하면서 말이다.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어쩌면 해내는 게 어려운 게 있을 수도 있겠구나.

어디선가 나는 좋은 사람으로 자리하지만, 이곳에서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채로 나올 수도 있겠구나.     


딱히 슬프진 않았다. 오히려 잘 됐다 싶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내겐 못해도 된다는 말은 하나도 안심되는 말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위로에도 딱히 마음이 좋아지지도 않았다. 실제로 나의 마음은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만 자리하고 있었고, 만약 해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되었을 때의 나를 마주하는 게 죽기보다 끔찍했기 때문이다.


귀여운 동생이 그랬다.

언니, 내 옆자리에 있는 사람은 서른 살이나 됐는데 되게 대하기 힘든 사람이야. 세상에 얼마나 자기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그 사람은 네가 내게 월급 주는 사람도 아닌데 뭐라고 해? 라는 태도로 대한다니까.

물론 그러라는 건 아니야. 난 언니가 좀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어.

못해도 괜찮아. 너무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또 다른 친구는 인스타에 이런 글이 적힌 피드에 나를 태그 시켜주기도 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호구보다는 쌍년이 살기 편하다며. 일이 잘못되는 것뿐, 내가 잘못되진 않는다는 글이 있는 글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고? 하는 의문이 들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해내지 못 한 사람이 되었을 때, 인생이 무너지는 정도까지 생각하는 내가 있다. 

실제로 해내지 못한다면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럼 나를 좋아했던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돌아설지도 모르고 혼자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는 내가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튀어 간다는 게 새삼 적고 나니 놀랍기도 하다.     


어디서부터가 시작이었는지 모르지만,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람 자체가 ‘인생의 실패자’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져서 ‘애초에 잘 해내지 못할 거라면 시작조차 않는 게 나아’라고 생각해 버리는 흐름이다. 그래서, 그렇게 도망치고 싶어 했던 것이라는 사실도. (그렇다고 내가 못하기 때문에 배짱 놓는 성격은 아니다. 어설프지만 어떻게든 노력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

못 해도 된다는 것에 안도하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못 해냈을 때의 나의 모든 게 망가지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만들고 싶진 않다.

내가 노력했다는 건, 나만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위로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결과로만 인정받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한 가지 정도는 확실하다. 감정이 넘쳤다는 것.

잘 해내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지만 잘 해내지 못했을 때의 창피는 감당해야 하는 감정이라는 것.

또 나는 노력해야 하고, 노력했다는 건 나만 알 수 있는 감정이어도 괜찮다고 인정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


아, 참 어찌 이리도 창피한가.

스물 후반쯤이면 뭔가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았던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질 만큼 창피하다.

적어내니 후련해졌지만 창피하다.

정말 창피하다.     


미래로 갈 수 있다면 빨리 성장한 내가 있는 미래로 가고 싶다.


#사진은 내일 만나는 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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