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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Nov 27. 2021

언어가 언어로서 마음에 닿을 때까지.

창피를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감정도 견뎌야 한다는 것은 ‘결국 도망칠 곳은 없다’라는 결론이다. 잘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서 왜 그리 무섭게 생각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 시초는 열아홉 끝 물 즈음에 겪었던 일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처음 사회생활을 하는 곳의 사장님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을 앞두고 있는 아이를 채용한다는 걸 썩 못마땅해하고 있다는 건 누군가의 입으로 전달 들어 알고 있어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때 당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아 했고 연거푸 하는 실수로 인해서 결국 내 의지와 무관하게 그만뒀어야 했다.     


그때 들었던 말이.

저런 것은 싹을 잘라내야 해! 였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아침.

학교 안으로 들어서는 게 가장 무서웠었다.

다시 돌아온 나를 뭐라고 생각할지.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지만 그렇지 않은 척 마음을 다 잡고 학교 건물로 들어섰다. 한 발, 한 발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고 있을 때쯤이었다. 그때 당시의 단짝 친구가 한 계단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더니 달려와 품에 나를 안았다. 그때 울컥하며 안도했던 것 같다.     


돌아와도 괜찮았구나.

친구들 품에서 많이 안겨 있다가 친구가 해주는 무릎베개에 잠들었던 기억도 아련하게 난다.     


그때의 기억은 이제 별 감흥은 없지만, 다시 돌아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한 켠에 자리한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에도 의지와 무관하게 그만뒀어야 했던 상황들 연속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창피함을 견디는 감정마저도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요즘 그 도망치고 싶어 하는 감정 속을 거닐 때 나를 꺼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곳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아침마다 나에게 인사를 해주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어 주곤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에서야 생각이 들었다.

어떤 위로는, 진심을 담지 못한 위로는 사람을 슬프게 만들 수도 있겠구나. 나는 그렇게까지

누군가를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했던 적은 있었나 싶기도 했다.     


흔히 할 수 있는 위로.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내가 너를 위해서 기도해 줄게.     


언젠가 나도 했던 위로의 방식이다. 근데 진짜로 기도한 적은 없었다. 적어도 나의 앞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당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그 위로가 최선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을 거고, 힘이 되지 않는, 독이 될 수도 있는 위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위로가 나쁘다거나 힘이 나지 않는 위로라는 건 아니다.

그 위로 안에 마음이 없다면 하지 않는 게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현실은 언제나 ‘나’와의 싸움의 연속이다.

아무도 대신 겪어줄 수 없는 싸움을 어느 누군가는 하고 있다.  

    

그 싸움을 이길 수 있도록 진짜 도와주는 위로는 언어가 언어로서만 자리하지 않는 위로.

진심을 담은 위로는 언젠가 닿을 수 있게 묵묵히 기다리는 위로.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당장은 그 위로를 바로 느낄 수 없다. 내가 그랬다.

이렇게 돌아보는 날에, 고개를 드는 날에 그 위로가. 나를 빈틈없이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내 마음의 가장 센 무기가 되는 위로들.     


아마도, 이걸 보는 당신이 가장 센 무기가 되어 준다면 누군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감사하게도 가장 내 마음속에서 센 무기가 되는 마음들을 갖고 있기도, 받고 있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그녀의 노래도 그래서 좋아한다.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     


내가 받은 사랑은 얼마나 가야 보답할 수 있을까.

오늘도 그 센 마음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적는 것 말고는 아직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잊지 않도록.     

어느 누군가가 그 사랑을 필요할 때 내어줄 수 있도록.

오늘도 꾹, 꾹 눌러 담아 놓는다.     


내가 받았던 것처럼.     

다시 당신이 사랑할 수 있도록.


#사진은 전시회를 갈 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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