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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Jun 24. 2022

날 것의 감정 : 회피성 책임

눅눅한 공기가 온몸에 들러붙는 여름의 작은 이름 ‘장마’가 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것을 삼키겠다는 듯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 것이 성난 파도 같다고 생각했다. 도망가도, 더 높이, 더 크게 몸의 부피를 키워 결국 덮치는 파도.  파도를 탈 수 없었던 나는 물속에 잠겼다.


심장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숨이 닿았지만 오히려 아픈 느낌이 난다. 어째선지 몸이 바르르 떨리고 창피하지만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숨을 크게 들이쉰다.


스무 살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어른스럽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때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그런 말을 듣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사람들이 나를 봐주는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어중간하게 서 있는. “네가 있기에”라는 그 말이 나를 좀먹으면서 ‘어른스러움’을 강요할 수 있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아왔다. 스물 네살에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보다 고작    많은  아이는 나의 자랑이자, 애증이자, 아빠와 오빠 역할을 동시에 했다.  앞에 마주 하면 항상 나는 어린아이였다. 아무리 어른스러운 척을 해봐도 코웃음을 치는 것이  분하고 억울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흘러온 나는,  덕에  이상 어른스러운 척을 하지 않는다. 간파를 하는 사람 앞에서 허세 부려 봤자 의미가 없기도 했고, 어깨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인  같다. 적어도  앞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든 코웃음 치고야 마니까.

나쁜 자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위에 대한 ‘척’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니,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겐 그래야 했던 것 같다. 전혀 현명한 대답은 없는데도, 현명한 척. 앞으로 나는 나아가고 있다는 ‘척’을 하기 위해 열심히 했다. 그래, 가면을 쓰고 덧대어 살고 있었다. 그래야 당신이 나에게 질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나에게 뭐라고 할 수 없게끔, 무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해볼까.


책임 지고 싶지 않았다. 그게 공부이든, 일이든, 삶이든. 책임은 지지 않고 그저 살고만 싶었다. 그래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기도, 아니기도 했다. 목적을 갖고 싶기도 했지만 아니기도 했던 이유. ‘방황’이라는 이름을 빌려 죽을 힘을 다해 도망 다녔다. ‘최선’이라는 단어를 앞에 세워서 나를 포장하고.


오늘 이 날것의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에스프레소 어른 덕이었다. 삶의 대한 이야기, 삶을 살아가면서 ‘왜(Why)’를 묻는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몇 가지의 답을 이야기해주었다.


살면서 ‘왜(Why)’는 언제나 필요하다. 모든 것에 이유를 가지면 피곤하다는 것, 무엇을 할 때 이유가 있으면 하고, 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다시 한번 심장이 뻐근해진다. 오늘은 유난히 울고 싶은 감정이다. 이렇게 까지 날 것의 나를 보이는 것이 과연 득일지, 실일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 버려야 하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아는 순간,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 지도.

 

떠밀려 온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온 것은 내 두 발로, 내 의지로 여기까지 정착시켜 왔다.

다른 것을 제쳐두어도 이것만큼은 변명도, 탓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정말로 ‘나’로 살고 싶다면,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오늘은 조금 눈물을 쏟을 것 같다. 아마 미안함, 죄책감, 창피함에 수반된 눈물일 것이다. 눈물을 흘려도 되는지 사실은 잘 모르겠다. 너무 오래 끌고 온 ‘척’을 죽을 힘을 다해 바꾸어야 한다는 두려움. 그것에 대한 자신이 없다.

너무 창피하다.


다음의, 다음을 말하는 것이 두렵다. 그것만큼은 거짓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술을 꽉 깨물고 말해야 한다.

여기까지 읽어 온 당신이 내게 물어볼 거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고?


낱낱이 고했으니 도망갈 자리도 없다.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아주 창피해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지금 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한번 더 손을 잡아줘.


그럼, 여기에 서서 고백한 것처럼.

바꾸어 나가도록 할게. 더 이상 도망가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정말 창피한데 한 번만 더 괜찮다고 해줘. 그럼 그 힘으로 바꾸어볼게.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아까와 같이 폐 끝까지 숨을 불어넣어도 잘 닿지는 않는 것 같다.

너무 날 것의 나를 드러낸 이 다음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겠다.

너무 실망했다면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할 몫이란 것을 안다.


그럼에도 오늘은 너무 무서운 밤이다.

눈을 꽉 감는 것조차 하면 안 될 것 같다.


내일의 당신께 나는 서 있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나는 여기 서 있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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