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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Dec 11. 2021

열꽃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버거운 것은 아닌데 양쪽 폐에 살짝 무거운 숨이 들이차는 느낌이다. 숨이 막힌다는 것과는 다른 마음이다.     


어떤 시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살아가는 것도, 살아지는 것도 아니었던 지난 시간들은 열꽃이 피어버린 지워지지 않는 흉터와 같다. 누군가에게 보이기도 두려운 흉터. 보이기 미운 그 흉터는, 새로운 새 살로 덮어서 없었던 것처럼 하고 싶었던 흉터였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조금 연해진 상처가 될 수 있도록 할 수는 있지만,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러나 좀 기대했던 것 같다. 어쩌면, 어쩌면, 이 열꽃도 지울 수 있는 흔적이지 않을까.

여전히 스치면 뜨겁고 따가움은 있는 듯하여 통째로 도려내면 좀 나을까. 아니, 아니, 흔적이 사라지길 바랐다는 게 더 맞을 거다. 그런데 피워진 열 꽃은 절대로 쉬이 옅어지지 않는, 사라질 수 없어서 함께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눈물이 좀 났다.     


사라지게 할 순 없어도 옅은 흔적이 될 수는 있게 할 수 있어요.     


앞으로도 쭈욱 따끔한 흉터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은 저릿하지도 무감각하지도 않은 어딘가  비었다.  비었다. .


아, 끝이 보이지 않는 벼랑 아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 아래엔 무엇이 있나.

떨어져 보면 알 수 있지만 떨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걸어서 나가는 길이 유독 쓸쓸했다.     


그것만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 벼랑 끝을 돌아서 다시 도시가 있는 거리로 나왔을 때 불편하게 여겼던 것들을 사랑해야 하고, 갈망해야 하고, 그 도시의 불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런데 불빛 되는 법을 몰라서. 아니, 알지만 서툴러 거대한 전광판이 될 수도, 어느 도시에나 있는 가로등조차도 될 수 없어서, 가로등이 되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는 것도 숨이 찼다.   


가로등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열꽃은, 이 도시에서는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사연이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커다란 가로등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알아가야 했던 것처럼.

누구나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는 무심한, 무심한, 충고.

아니 다정했던가. 온도도 있었다. 필요하다면, 그래도 같이 노력해 준다고 들렸던 것도 같다.

다만 가로등이 되는 것은 온전한 내 몫이라고. 그러니 노력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불빛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가 있나.     


가로등이 될 수 없어도 그냥 하는 거야, 로 일축했지만 나는 될 수가 있나.

열꽃도 끌어안을 수 있는, 빛이 될 수 있나.     


아, 무엇이 될 수 있나.

다정한 무언가는 될 수 있나.

될 수 있나.     


내게 물을 때마다 심장이 욱신거린다. 너무 많이는 묻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 그래.

그만 물어볼게. 또, 흉터를 가만히 쓸어내린다. 따끔, 따끔.

그래, 그래, 그래….     


걷힌 안개가 살며시 다시 깔린다. 아, 그렇다고 푹 젖어들 것은 아닌데. 오늘 외로운 마음 한 줌을 또 듣고야 말아서, 가만히 생각나는 거야. 위로를 보내고 싶은데 나는 나를 써내느라 누군가를 위한 편지를 쓰지 못했다는 작은 미안함.      


나는 다정한 무언가도 되지 못했다.

단단하지 못한 게, 그동안 보살피지 못한 여린 마음 하나가 울린다.  

   

열꽃도,

가로등도,

다정한 무언가도,     


오늘은 지우지도,

빛을 내지도,

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랑 하나 또 보내야지.

다정한 무언가가 될 수 없어도

또 보내야지.     


지울  없어도 기꺼이 사랑해야지.

, 사랑하는 법을 새겨야지.

지울 수 없어도.     


빛을 낼 수는 없어도 기둥은 되어야지.

그래도 가로등은 되고 싶어.     


또 심장이 아프다.

쓸어내린 열꽃은 아까보다 더 따끔거린다.      

    

그래, 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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