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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Dec 16. 2021

자기혐오를 벗는 시간.

작은 나를 인정해줘야 하는 것

반복되는 감정이 있다. 내가 좀 더 마음을 줬다고 생각하는 어떤 대상이나, 혹은 가까이 지내는 친구로부터 내가 무심하게 대해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안에는 자신을 질책하며 어딘가 못마땅하게 여기는 감정도 있다. 이렇게 내가 못나서 그런 건가? 하는 의심을 품는 마음도.     


꽤 자주, 근근이 찾아오는 이 감정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몰랐다. 늘, 이 감정의 끝은 이랬다.      

스스로의 능력이 너무 작아서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언젠가 사랑을 할 수는 있을까,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너무 목표 없이 살아서 줄 수 없는 내가 부끄러워.

왜 그렇게 살았을까. 후회가 섞인 감정이 얼룩덜룩 묻어났다.   

 

정의 내리지 못한 감정의 파도 속에서 자신을 마음껏 질책하고, 비난하다가 어느 순간 질리면 그 감정을 덮어두는 것으로 막을 내렸던 감정을 요 근래에 들어서 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이 감정 나를 미워하고, 혐오하고 있는 감정이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항상 이 감정이 찾아올 때는 스스로가 무능력하다고 느끼는 어느 지점에 서게 되었을 때였다. 그럴 때의 서운함의 대상이 되는 친구들은 항상 한결 같았다. 어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 이야기를, 작은 사랑 이야기를, 아침마다 배웅하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고 나와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감정에 속았던 것이다. 나를 사랑해주고 있지만 사실은 거짓말 같은. 친구들도 사랑도 그대로인데, 한결 같이 있어주는데 말이다.


언젠가 꺼질 것 같은 불안감에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 이 감정이 생겨난 게 사실은 자기 연민에서 시작된다. 그래, 찬찬히 살펴보니 그렇다.     


사실 분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강요하지도, 말하지도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했어야 했었던 희생이라는 단어가 불쾌할 정도로. 참고, 또 참고, 죽이고 죽였던 감정들은 어디로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아가며. 그래, 선택한 희생이었으나 희망이 없는 것처럼 살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니까, 살았던. 누군가가 자신을 버리지 않도록 미약한 힘으로 보살펴야 했던 어느 날 들에 대한 이야기들.     


핑계 없는 무덤은 없지만 이해해 달라며.

그렇지만 그 시간을, 흉터를 없앨 수만 있다면 좋겠어.

아주 그런 슬픔은 몰랐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러면 조금은 지금보다는 나았을지도 몰라.     


어느 것 하나도 인정할 수 없었던, 그저 열망만 가득했던, 안타까움만 묻어난다. 사실 오늘 쓰는 글에는 확신으로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아직, 아직 더 토해내야 하는 감정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해둬야 할 게 있다. 내가 지나왔던 과거를 고칠 수는 없다. 더, 열심히 사는 나로 바꾸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것이 미래로 이어져 왔다면 달랐을 내가 있을 거라는 착각을 놓아야 한다는 인정을 해야 한다. 아, 뇌는 알고 마음은 동하지 않는 인정이다.   

   

그렇지만 그 과거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과거에서의 미약한 힘으로 누군가가 살아가고 있다. 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완벽하게 지켜내지도 못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삶을 살아왔다. 그래, 내 선택이었어도 후회는 없는 의지였다,     


내가 나를 버리고 싶어 했던, 그렇지만 하지 못했던.그 시간들을 뛰어넘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었다. 아무것도 하진 않았어, 변화했던 것들은 존재한다.

아마, 새 생명이 태어난다면 더 그렇게 느껴지겠지.     


그것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편없을지언정 여기서 다시 만들 수 있다고.

그래,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  사진은 새로운 도전을 한 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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