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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Dec 22. 2021

자기혐오를 벗는 시간 (2)

나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제부터 심장이 쾅쾅 뛴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데도 숨이 차고 긴장되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조금 있으면 가라앉을 거라 생각했던 심장 요동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쿵, 쿵, 쿵. 

오늘은 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다.     


저번 주였다. 상담을 마치고 나서도 깔끔하지 못한 기분. 

어딘가 계속 꾹, 꾹 막혀 있고 내가 싫은 기분, 나와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만족스럽지 않은 묘한 감정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결국 알아챘었다. 나는, 나를 혐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친구에게 내 묘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제안해줬다. 

자신에게 아주 작은 거라도. 사소한 거라도 칭찬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주라며.

그러더니 나를 칭찬하는데 약간 웃음이 났다. 칭찬에 박하던 녀석이, 별일도 아닌 것을 농담처럼 칭찬한다는 게 왜 그리 웃음이 나던지. 굉장히 기분이 좋았었다.   

  

참 뻔하지만, 많이 알려진 방법이란 건 알고 있다. 사소한 것이라도 칭찬하기.

나는 이해는 가나 공감은 되지 않는다. 뻔한 것을 칭찬하는 것은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는 가만히 보면 내게는 로맨스가 아닌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서 현재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은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닌 거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혹은 ‘내 나이쯤이면 당연히’라는 생각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별안간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은 부끄럽다. 3년이라는 짧은 경력을 가졌지만, 너무 작고 그동안 공백이 있었던 터라 오히려 너무 미숙해서 부끄럽다.      

내 미숙함에 너무 질려버려서 이제 더는 나오지 말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볼까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은 꼭 적지 않으려고 했는데. 적지 않으면 왠지 내 무거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약간 찌질하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뱉어 두었지만 쉬이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듣곤, 일하는 시간의 양은 처음과 비슷하다고 해도 밀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요? 라고 말해주셨다. 그 밀도는 퀄리티인데, 퀄리티가 좋아졌다고 할 수 있나. 라고 대답했다.     


애초에 자신 있게 능력으로 펼친 게 아닌 것 같아서. 잔뜩 끌어모아 덕지덕지 붙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퀄리티가 좋아졌다고 할 수 있나? 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만큼 공감이 가지 않는 상담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지고 있는 양이나, 능력에 포커스를 두지 말고, 밀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가고 있음을 만족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은 알겠다. 밀도가 올라가고 있는 인간, 보이지 않는 것은 여전히 만족을 느낄 수 없는 요소 같다.     


자기혐오의 허들이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기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라서 좋지 않다. 도대체 사람들은 허들을 어떻게 낮추고 만족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또 하나 알게 된 건, 내가 생각보다 사람의 가치 기준은 ‘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인 것 같다. 요즘도 종종 사람들은 내게 좋은 사람 있으니 만나보라고 한다던가,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는데 잘해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감정만으로 사람을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꽤 마음이 아프다. 좋아해도, 좋아하는 마음은 언제든 가질 수 있음에 기뻐하게 됐지만, 물질을 줄 수 있는 능력,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이기에 어느 하나라도 모자를 순 있어도 가지고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상대를 재단하는 게 아니라 나를 재단하게 된다. 나를 재단한 나를, 누군가의 앞에 서게 됐을 때 모자라는 것이 생긴다면 통틀어서 능력이 부족하거나, 쓸모가 없어진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게,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할까 무서운 것도 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대가 그래서 떠날까 봐, 성실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엉망진창이다. 누군가에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것. 에스프레소 어른이 그랬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삶, 남이 나를 인정해 주는 삶을 목적으로 사는 것 같다고.    

 

인정이 필요했던 존재라니.

인정을 하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하지.     


남에게 모두 사랑받을 수 없는 것처럼,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면 좀 나아질까. 어떤 안심을 해야 이다음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걸까.      


하나는 확실하다.

내가 나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노력. 그 단어가 떠오르는 밤이다.


#사진은, 회사는 그런 거야 라며 응원해 주는 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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