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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Jul 24. 2022

도돌이표 : 바다 아래에서 안주하다.

깊은 파도에 빠진 지도 한 달이 넘어간다. 수면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날이 이번엔 꽤 길어지고 있다.  

수면 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던 때가 있었지만 바다 아래에서 생각이 침잠하는 것을 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호흡이 가빠지려고 할 때마다 더 큰 숨을 쉬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숨을 쉴 수 있는 바다는 무섭지 않다. 무거운 것은 올라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라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될까 조바심 나는 것뿐이다.


눈물을 훔치며 고해성사를 했던 그날로부터 한 달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바다 아래로 가라앉은 첫날, 숨을 쉴 수 있는 바다인지를 모르고 잔뜩 숨을 머금고 눈을 꽉 감았다.

그때 동반되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막연하고도 큰 두려움.

날 것의 감정을 오롯이 그대로 노출을 시킨 것은 처음이었고, 그럼에도 사랑받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다. 그런 두려움을 보인 것이 창피할 정도로 나의 사람들은 달콤했고, 따뜻했고, 여유로웠고, 따끔했다.  


달콤하고 따뜻했던 그 응원은, 내가 바닷속에서 헤엄쳐 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나를 사랑해주기를 권해주며 건넸던 말은 오롯이 감정을 느끼라고 했다. 무언가에 대한 흥미를 느낄 때까지 기다리라고.

아직은 늦지 않았다며 내게 안심하라고 일렀지만 나는 초조했다. 스무 살 세상의 새내기가 아니니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느끼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지만 어떻게 느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엉성한 헤엄을 치며 가던 어느 날이었다. 이렇게 헤엄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싶을 때 바다 위에서 신호를 보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 신호에 응답해준 신호는 너무나 여유로웠다. 멀지 않은 곳에 분수대가 있고, 그 분수대 앞에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키는 음악가가 있고 그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먹는 기분이었다.

끙끙 앓는 그 마음을 그대로 흘려보는 것도 좋다며. 모든 것에 대한 의미를 담지 않기를 권했다.

어떤 날에는 그러려니 해보았지만, 고민의 본질이 바뀌지 않으니 쉬이 흘려보내지 못했다.

그러니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력이 찾아올 때면 따끔한 응원을 되새기곤 했다. 대바늘을 들고 있는 애증 하는 그가 보였다. 그가 내게 말하기를, 여차하면 가감 없이 바늘로 콕 찔러서 피가 나오게 해 줄 수도 있지만, 찌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만약 찌르게 된다면, 그것은 너에게서 멀어지는 길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 빨리 수면 위로 올라오고 싶었던 마음도 들었지만 올라갈 수 없었다. 따끔한 대바늘이 무섭기도 하여 조금이라도 무언가 자랑을 만들고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그 사이에 일상의 상실도 겪었고, 무기력도 겪어 차라리 올라오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또, 좋지 않은 기억이 가득했던 집으로 다시 이사를 했다. 마음 병원을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3년을 미뤘던.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 앉아있게 되자 또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지 못해 창피한 감정이 든다.   


그렇지만, 또 다시 돌아간 게 아니라 달라진 내가 여기에 있다는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3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은 당신의 대한 미움 하나이다. 하지만, 미움으로 내 마음을 전체를 쓰지 않는다는 것. 한 번 더 사랑해보겠다고 서툴게 사랑하는 마음을 써 보이는 것들, 조금 더 다른 미래를 그려보고자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기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밤이 너무 깊었다. 장마는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는 듯 내리는 비가 내린다.

비가 다 그치고 나면, 바다 위로 서서히 올라가야겠다.


숨을 쉴 수 있는 바다라고 해서 오래 머물면 안 된다는 것을.

안정에 취하지 말고, 행복에 취하지 말고, 내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느린 나에게 대바늘을 들지 않기를 바라며.


잠을 청하러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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