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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Aug 24. 2020

잠과 쓰레기와 청소부

쓰레기가 아닌 것들이 쓰레기가 되는 시간

작가 『김랄라』

자다
잉여 감정을 해소하는 시간. 모든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어려운 법이다.


‘어쨌거나 잠이 보약인 건 확실해...’ (사진 랄라)


어렸을 땐 좁은 집에서 엄마, 아빠, 나, 남동생 그리고 고모까지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나와 엄마, 아빠, 동생은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자곤 했는데 자려고 누울 때면 나는 항상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엄마, 내가 자기 전까지 자면 안 돼.”


유난히 잠이 없었던 나는 우리 가족 중에 가장 늦게 잠이 들곤 했다. 모두가 잠이 들면 가족들이 옆에 있어도 캄캄한 어둠 속에 나 혼자 남겨진 느낌이 들었다. 그게 너무 무서워 엄마에게 나보다 늦게 자 달라는 이기적인 부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깨 있고 싶어도 눕자마자 잠이 드는 몸이 됐지만 어렸을 때는 자고 싶어도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의 잠들기까지의 루틴은 이러하다. 눈꺼풀이 슬슬 무거워질 때쯤 양치를 하고 이불을 깔고 누워 내일 할 일을 생각하다가 잠이 든다. 생각을 시작해 잠들기까지 시간은 대략 5-10분 정도 소요된다. 7시간 자면 가장 상쾌하고 이보다 더 적거나 많이 자면 다음날 더 빨리 피곤해지더라.


어렸을 때는 잠들기까지의 시간이 못 견딜 만큼 길었다. 당장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뛰어놀 만큼 에너지가 넘쳤지만 암흑으로 가득 찬 집에서 혼자 놀 자신은 없었다. 대신 상상 속에서 마음껏 날아다니는 것을 택했다. 낮에 해소하지 못한 궁금증도 이부자리까지 끌고 들어왔다.

‘오늘 본 무지개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왜 탄산이랑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으면 터지는 거지?’


마음에 꽁꽁 싸온 걱정들을 잠들기 전에 와르르 펼쳐 놓을 때도 있었다. 엄마는 밖에 있던 것들을 이불 안으로 가져오면 안 된다고 늘 말했지만 때가 덕지덕지 묻은 걱정들을 몰래 자주 들고 왔다.

‘친구C랑 급식을 같이 먹었어야 했나?’

‘시클라멘에 물을 더 주고 올 걸 그랬나?’

물음표가 마침표로 바뀔 때까지 생각은 계속됐다. 그땐 호기심이든 걱정이든 답을 빨리 내리지 못했다. 또 상상 속에서 지구를 구하고 우주를 여행하는 일은 빠져나오기 싫을 정도로 즐거웠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잠들기까지의 시간은 점점 더 짧아졌다. 이십 대 중반인 지금은 5-10분이면 생각을 마치고 잠이 든다.

‘내일은 어제 빌려온 책을 다 읽어야겠어’

‘면접 준비를 내일까지 다 끝내야지.’


쓸데없는 걱정은 길어지기 전에 답을 내린다.

‘취업을 못하면 어쩌지? 뭘 어째. 입에 풀칠은 하고 살겠지. 잡이나 자자’

‘내 인생은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가? 됐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잠이나 자자.’ 

자고 일어나면 잊힐 시시한 생각이란 것을 이제는 안다.


어떤 물건을 아끼고 보살피면 그 물건이 쓰레기가 될 일은 영영 없다. 반면 더 이상 사용할 가치가 없어졌을 때 그것은 쓰레기가 된다. 처음부터 쓰레기인 것들은 어디에도 없다. 잠이 빨리 들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모든 감정들을 아끼고 보살폈다. 즐거움은 즐거움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답답함은 답답한 대로 잠들기 직전까지 가져와 손에서 놓지를 못했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 큰 걱정을 불러올 때도 걱정 안에서 헤엄칠 뿐이었다. 그때의 나에겐 그것들은 결코 쓰레기가 아니었다.


지금은 잠들기 전에 얼른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쓴다. 길게 생각해봤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이제 나에게 쓰레기가 됐다. 분노, 슬픔 심지어 즐거움까지도 지나치면 고생이라는 것을 안다. 넘친 감정들은 얼른 처리해야 한다. 16년 동안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를 다니고 1년 동안의 사회생활을 경험해본 지금의 나는 자기 전에 생각을 5-10분 내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꽤 능숙한 청소부가 됐다.


가끔은 내일 만날 친구들을 생각하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잠 못 이루던 시절. 잠이 들지 못할 정도로 감정에 허우적 대고 상상의 세계를 그려가던 어린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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