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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Aug 31. 2020

죽어서 꼭 어디를 가야하나요?

사후세계의 존재는 모르겠지만 현생에서 필요한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작가 『김랄라』

 

죽다

완전한 종결? 새로운 시작? 뭐가 됐든 중요한 건 지금이다.


  이때까지 본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 경우가 많았다.

술과 담배는 입에도 안 대시고 주말에는 야구를 하시며 체력을 길렀던 작은 아빠의 죽음이 그랬고 전날까지만 해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국내외 정세를 논했던 외할머니의 죽음이 그랬다. 그들의 죽음을 통해 나는 한 가지 불변의 사실을 실감한다. 아, 죽음은 현재진행형이구나.       


스물여섯 해를 살면서 다양한 죽음을 보거나 전해 들었다. 속도는 다르지만 모든 삶의 끝엔 죽음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죽는 게 두려워 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신을 믿진 않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일단 의심부터 하는 나는 후자에 해당했다. 종종 나는 ‘갑자기 내일 죽어버리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할 때가 있다. 소소한 행복을 느꼈을 때다. 정말 마음에 드는 노란 셔츠를 2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샀을 때 ‘이 옷이 도착하기 전에 갑자기 죽어버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행복감에 빠져 걱정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어느 날은 이런 걱정을 친구에게 말했다. 그 친구는 주말마다 교회를 다니는 성실한 신자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면 두렵지 않겠지.”

“사후세계라... 그런 게 정말 있을까? 죽으면 끝 아니겠어?”


친구의 다음 말을 듣기도 전에 주문한 피자가 나왔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느라 대화는 중단됐다. 한편으론 때마침 그때 피자가 나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 입에서 천국, 지옥, 믿음, 구원이라는 단어가 나올 수 있는 여지를 주었으니 말이다. 집에 오는 길에 사후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영화 <코코>를 얼마나 재밌게 봤냐면 주인공 미구엘을 보고 기타까지 샀다. 이 영화에서 그리는 사후세계는 모두가 행복한 곳이다. 망자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축제를 열어 함께 어울린다. 첫 번째 삶에서 놓치고 살았던 즐거움을 두 번째 삶에서 원 없이 즐긴다. 하지만 사후세계에도 끝은 있다. 이승에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지면 사후세계의 삶도 끝이 난다. 미구엘이 구슬픈 목소리로 ‘Remember me~’를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코코는 멕시코인들의 사후세계관을 그린 영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즐거움과 낭만이 가득한 사후세계에서 오래도록 살기 위해서라도 이승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믿는다. 신을 믿지 않는 나에겐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보다 더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사후세계에서도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생각을 하니 어쩐지 피로감이 몰려왔다. 죽음 이후에는 생존에 의한 인싸력이 다 소진될 것만 같아 가벼운 우울감마저 들었다. 내 죽음 이후의 삶은 이대로 괜찮을까?


미구엘 그거 아니? 한국에서 그곳에 가려면 무려 7가지 지옥 관문을 통과해야 한단다. (사진 네이버 영화)


죽음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코흘리개 시절, 신을 믿기 위해 교회와 절과 성당을 번갈아 다닌 적이 있다. 근처에 이슬람 모스크가 있었다면 아마 그곳도 가지 않았을까. 아, 그땐 여자는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몰랐다. 당시 나의 아버지는 불교 신자였으며 내 주변 친구들 다수가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의 세례명이 이자벨라였나 마리아였나 아무튼 성당을 다니고 계셨다. 신과 종교에 관해서는 백지상태였던 어린 나는 그들이 믿는 신이 누구인지 궁금했고 괜찮다면 나에게 맞는 신을 선택해 믿음을 가져보려 했다. 지금까지 무교에 무신론자인 걸로 봐선 그때 썩 마음에 드는 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렸을 때부터 의심이 많았던 내겐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은 설득력이 부족했고 믿음에 대한 회유와 압박이 오히려 거부감을 들게 했다. 그나마 절 냄새가 마음에 들었지만 어린 나에게 불교의 세계관은 너무 어려웠다. 결국 그냥 아무도 안 믿기로 하고 옆집에 사는 언니와 떡볶이를 먹으러 갔었더랬지. 


지금 한국에는 오로지 천국 하나를 노리고 바이러스를 뚫고 대면 예배를 가거나 망상에 빠진 어떤 목사의 외침에 속아 집회에 나가는 종교인들이 있다. 만약 그들과 함께 하는 사후세계라면 나는 기꺼이 거절하고 싶다. 모든 종교의 첫 번째 가르침은 자애와 사랑이다. 자애와 사랑이 빠진 현생이라면 죽어서 천국을 가는 게 무슨 소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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