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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Aug 31. 2020

수동적 자살을 동경하는 삶

누군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

작가 『김미아』


죽다 삶이 끝나는 것. 그 이상의 것은 살아있는 사람으로선 알 수 없다.


아마 미아의 글을 몇 편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미아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누군가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상황이 비극적인 것도 아니다. 돈에 쪼들리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일을 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저 누워서 하루하루 시간을 축내고 있다. 그렇게 시체처럼 누워서 공허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하면 우울감으로 점철된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의외로 우울함이 지배하는 영역은 적다. 오히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 더 많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혹은 아니고 싶은 기분으로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70퍼센트의 공허함과 10퍼센트의 우울함, 나머지 자질구레한 분노, 후회, 자기혐오가 나를 움직인다. 다른 사람들이 백퍼센트로 살고 있을 때, 나 혼자 30퍼센트로 사는 기분이다. "아저씨, 가득 채워 주세요"라고 해도 가득 차지 않는 벽이 있는 상황이다.


한 때 너무 많은 감정을 써버린 걸까. 그래서 다 타버리고 남은 찌꺼기로만 살아가야 하는 걸까. 큰 감정은 더 이상 못 느끼는 걸까. 어렸을 땐, 이 시간이 지나면 죽으면 된다, 고 생각했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지 않았다. 그래서 액정 부서진 휴대폰 같은 몸과 마음으로 언젠가는 끝날 약정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수동적 자살을 동경한다. 죽을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삶을 열심히 살아갈 용기도 없는 내가 동경하는 건 우연한 찬-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뿐이다. 누군가 칼로 찌르고 도망가도 괜찮고, 코로나에 걸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아마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지만 않으면 코로나에 걸리기 위해 조금쯤은 움직였을지도) 암에 걸리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시한부라는 판정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삶이란 게 내게 정말 간절해졌으면 좋겠다. 정말 오만한 생각이고, 누군가에겐 능멸에 가까운 발상일 수 있겠지만 어쩌겠나. 나도 아파서 이러는 걸.


수동적 자살을 동경한다지만, 사실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건 랄라와 같은 삶이다. 의지가 있고, 현재 삶이 더 중요한, 행복을 거머쥘 줄 아는 사람. 진짜 바라고 있는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내게도 삶이 찬란했으면 좋겠고, 죽음보단 삶을 더 생각하고 싶다. 부서진 핸드폰 따위로 평가하지 않고 그저 김미아일 수 있는 순간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지금까지는 죽음이 내게 너무도 가까이 있었다. 그래서 언제든 죽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겠나. 발견할 순 없다. 내가 멈춰있는 한 삶도 멈추기에. 그러니 만들어가자. 수동적 자살을 동경하는 나와 모든 이들이 언젠가는 행복을 거머쥘 주먹을 쥘 수 있도록.

부서진 핸드폰이 아닌, 김미아로 살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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