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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Aug 10. 2020

그와 이별하는 방법

아직도 떠나보내지 못한 이들을 위해

작가 『김미아』


이별하다 마음속 조각 하나를 내어주는 행위. 온전한 이별은 행위가 아닌 마음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냥 네가 알아줬으면 해. 내 맘 속에는 네가 한 조각 있고 난 그게 너무 고마워. 네가 어떤 사람이 되건, 네가 세상 어디에 있건 사랑을 보낼게. 난 언제까지나 네 친구야.

영화 <그녀>에서 주인공 테오도르가 전처에게 이별 편지를 쓰는 장면 대사다. 이혼 서류까지 전부 작성했지만 여전히 그와 내가 이별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테오도르가 진정으로 사랑에 마침표를 찍는 장면이다.


미아는 이별이 어려운 사람이다. 한때는 모든 걸 내어줄 수 있다 믿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갈 땐, 생살이 뜯기는 고통이었다. '나는 왜 정을 줬나. 나는 왜 제풀에 지칠 이 마음에 온 힘을 다했나'하며 자책을 하고, 행복했던 과거까지 통째로 뜯어버렸다. 억지로 찢어 낸 이별은 흉터만이 남을 뿐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A와 최근 이별을 했다. 그는 어렸을 적 나에게 세상과 같은 존재였다. 그림도 잘 그리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까지 쿨한 A는 자랑하고 싶은 친구였다. 무뚝뚝하지만 가끔 내게만 보여주는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어른스럽게 행동하던 A가 내 앞에서만 힘든 내색을 표하며 기댈 때,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뿌듯함도 있었다.


A는 때때로 팔이나 다리, 몸에 멍을 달고 나타났다. 눈이 잔뜩 오던 겨울날, 티셔츠에 청바지 하나를 입고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A를 기억한다. 그러면 나는 허겁지겁 담요와 따뜻한 옷, 떡볶이 살 돈을 챙겨 나갔다. 그는 남들 앞에서 아픈 내색을 비치면 진다고 믿는 자존심이 센 아이였다. 그런 A가 나에게만큼은 자신의 상처를 보여줬다. 우리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떡볶이와 어묵 몇 개를 사서 닫혀 있던 목구멍을 열었다. A는 마치 살기 위해 먹는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며 묵묵히 먹었다. 나는 그 위태로운 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너무 슬퍼 따라 울곤 했다. 그게 사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A의 기댈 곳이 되어 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가 하는 모든 말을 기억하고, 챙겨주며 진심을 다해 그를 아꼈다. 우리 우정은 영원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할 때, 나는 A가 쓰겠다고 했던 남녀공학 학교를 썼다. A는 나에게 비밀로 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여학교를 썼다. '왜 그 학교를 썼어?'라고 묻자, '너랑 같은 학교에 가기 싫었어.'라고 답했다. 온 마음을 다했던 사람에게 정면으로 거절당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서운함으론 표현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A는 내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친구는 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우리 사이엔 감정의 크기 차이가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없었다. 고작 친구와 절교한 것뿐인데  그리 슬퍼하냐는 얘길 듣고 싶지 않았다.  감정을 남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었다. 가슴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나는 우정도, 그렇다고 사랑도 아닌  감정을 묻어놔야 했다.


그렇게 사랑했던 친구와 이별을 한 날 이후, 나는 친구에게 정을 주는 일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만 친구로 지내고 집에 와서는 연락하지 않았다. 학교 친구. 딱 그 정도 선만 지키며 지냈다. '내가 마음을 주면 또 누군가 떠날지도 몰라'라는 마음에 처음부터 마음을 주지 않았다. 진심을 남기지 않으니 아무도 내게 남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됐고, 나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학생 때, A는 내게 다시 연락을 했다. '너만 한 친구가 없었던 것 같아'라는 말과 함께. 심장이 내려앉았다. A가 미웠다. 그와 동시에 나를 잊지 않아 준 것이 고마웠다. 나는 그와 수년에 걸쳐 이별을 하려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 고작 가끔 그를 잊어버리는 정도였다. 때때로 그가 생각날 땐 '걘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이기적인 애였어'라며 A를 미워해야만 했다.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이별이 너무도 아프니까, 차라리 미워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그와 헤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성인이 된 후 수년간 친구로 지냈다. 여전히 나는 그가 힘들 때 찾는 대나무 숲 같은 존재였다. 종종 내게 무례한 말을 하기도 했다. 몇 번이나 '그런 말을 하지 말아 달라'라고 얘기하려 했으나 A가 다시 떠날까 두려워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일방적인 이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나가던 중, 나를 많이 아껴주는 친구 B가 '넌 왜 A 앞에만 가면 작아지니? 내가 아는 넌 그런 애가 아니었어'라고 말했다.


난 B가 그리는 내 모습이 더 좋았다. A와의 추억도 사랑스러웠지만, B가 말한 내 모습이 더 소중했다. 우선순위가 차근차근 바뀌는 걸 느꼈고, 나는 천천히 A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그와 있었던 행복했던 시간을 받아들이고, 그가 내게 상처를 준 만큼 나 역시 그에게 부담을 줬음을 시인했다. 나의 잘못을 톺아보는 시간이었다. 그러자 그가 내게 남긴 선물 같은 시간들 역시 함께 떠올랐다.


그에겐 지금까지 고마웠다고, 하지만 너와 있는 시간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니 이젠 우리의 관계를 끝낼 때가 온 것 같다고 얘기했다. A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알겠다고 얘기했다. 다만, 정말로 많이 힘들 때 다시 한번 자기를 찾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우리 그 정도 우정은 있지 않으냐며. A와는 영원히 남을 마음의 조각 하나를 공유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길었던 마음과 이별을 했다. 행복했던 순간은 오롯이 남긴 채, 그에게 사랑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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