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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Aug 10. 2020

이별에도 예습이 필요하다

세상에 영영 이별이 있을까요

작가 『김랄라』


이별하다

기억할 사람을 늘려나가는 일. 영원한 이별은 존재할까?


이별에도 예습이 필요하다. 어디 예습뿐만이겠는가. 수능처럼 준비 기간도 필요하다. 이별의 난이도를 상중하로 나누어 그에 맞는 맞춤형 컨설팅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전 관리가 있으면 사후 관리도 필요한 법이다. 재수를 하든 삼수를 하든 또는 포기를 선택하든 구체적인 커리큘럼을 갖춰 몸과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나처럼 이별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만약 이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나의 이별은 조금 쉬워질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회사에 있었다. 갑작스럽게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나는 근무 중이니 문자로 말하라고 답신했다. 그렇게 문자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곧바로 회사에 조모상 휴가를 내고 부리나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며 꾹 참았지만 터져 나오는 눈물은 참는다고 참아지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울음과 흐느낌을 반복하며 가장 길었던 1시간 30분을 견뎌야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엄마가 쓰러져 울고 있었다. 그전에도 엄마의 우는 모습을 종종 본 적 있었지만 그날처럼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엄마는 처음 봤다. 나는 흘리고 있던 눈물을 닦았다. 무너져가는 엄마에겐 같은 슬픔이 주는 위로보다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깨가 필요해 보였다. 할머니 사진 앞에서 두 번 절을 하고 일어나니 상주로 서있던 외삼촌과 동생이 보였다. 나는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족 휴게실로 들어가 상조회사에서 준비해둔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울다 지쳐있는 엄마 옆에 앉아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바로 전날에도 엄마와 할머니 집에 놀러 가자는 말을 했었는데. 이젠 할머니 집에 가도 할머니를 만날 수 없다.


나의 외할머니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나고 자라셨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육지 땅을 밟으셨고 서울에서 첫 번째 결혼을 하셨다. 결혼생활은 얼마 못가 끝이 났다.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 후 이북 출신인 외할아버지를 만나 두 번째 결혼식을 하셨다. 당시 외할아버지는 헤어진 전 부인과 낳은 자식이 셋이나 있었고 외할머니는 자식이 셋 딸린 남자와 결혼해 나의 엄마를 낳으셨다. 외할머니의 이런 시원시원하고 대담한 성격은 생전에도 많이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예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쓴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손실을 따져 손해 보는 장사와 그렇지 않은 일을 구별해낼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한번 정을 준 사람에게 끝까지 의리를 다하는 사람이었다. 부지런한 성격으로 자신의 텃밭을 일구고 건강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으며 시사에 밝아 매일 아침저녁으로 뉴스를 보며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를 좋아하는 노인이었다. 출퇴근 시간에 젊은 사람들 자리를 빼앗는 게 싫다며 바쁜 시간에는 지하철을 타지도 않으셨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곧은 자세와 적정 몸무게를 유지했던 한결같은 사람, 외할머니는 내가 사랑했던 멋진 어른 중 한 명이었다. 영원히 건강할 것 같던 외할머니는 가장 추운 날, 그가 텃밭에 뿌려놓았던 씨앗들이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생을 마감하셨다.


외할머니는 생전에 부탁하신 대로 화장을 해 수목장에 묻히셨다. 그는 죽는 그날까지 자식들에게 신세 지기 싫다며 자신의 죽음을 미리부터 준비하셨다. 영정사진도 직접 찍으시고 자신의 장례 비용까지 모아두셨다. 나는 그의 그런 행동들이 참으로 외할머니답다고 생각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지 1년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지금 나와 엄마 그리고 동생은 외할머니가 남기신 집에 살고 있다. 아직도 부엌 서랍을 열면 그가 차곡차곡 모아뒀던 비닐봉지가 보이고 애지중지 키우시던 건강한 화초들과 삐뚤빼뚤한 글씨로 유통기한을 적어둔 직접 만든 장들이 이 집에 있다. 평생 외할머니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남긴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이 없어진다. 살아계셨다면 지금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하셨을까.


만남의 반대말이 이별이라면 나는 아직 외할머니와 이별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나는 흔들리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그와 만난다. ‘외할머니라면 어떻게 행동하실래요?’ 물론 대답은 없다. 하지만 나는 생전의 그를 생각하며 답을 찾아나간다. 그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살아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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