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코로나, 참을 수 없는 녀석의 존재

코로나 확진 판정 그날의 기억


아침이 되었다. 극도의 긴장감이 온 집안을 휘감는다. 사실 일말의 설렘이 섞여 있는 긴장감이랄까. 마치 임신 테스트기에 선명한 두 줄을 간절하게 기대하는 마음과 같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나는 어제 코로나 19 검사를 받고 왔다. 그리고 아침부터 5분에 한 번씩 핸드폰에 눈길을 주며 ‘음성’ 판정 문자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남편에게 자꾸만 온몸으로 시그널을 보내니,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고 어깨를 다독이며 쉬라고 한다. 그 와중에 사랑스러운 아들은 토요일부터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엄마를 만질 수도 없고, 엄마와 함께 잘 수도 없어 심하게 뾰로통 해진 상태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본능적인 촉이었기도 하겠지만, 토요일 기상 순간부터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건 어쩌면 모성본능이었으리라. 토요일까지만 해도 코로나는 전혀 생각을 못했는데 몸살감기인 줄 알았던 그 상황에도 왠지 아들만큼은 보호해 주고 싶었다. 나는 마스크를 집안에서도 착용했고 두 남자와 계속 거리를 뒀다.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계속 혼자 했다. 마스크를 쓴 엄마와 1m는 떨어져서 대화를 한다는 게 5살 어린아이에게는 쉬운 일이 아닐 터. 당장이라도 저 녀석을 내 품에 껴안고 얼굴을 비비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녀석의 살결 냄새를 맡고 싶다. 그런데 할 수가 없다. 소파에 앉아서 녀석의 재롱만 쳐다보고 있다. 불안한 손가락은 핸드폰 화면만 두드린 채로.




나는 워킹맘이다. 은행원 13년 차로 매일매일 소리 없는 전쟁통을 겪고 있다. 다행히 어릴 적 소원처럼 가정적인 남편을 만나 내가 일찍 출근을 하면 남편이 아들을 깨워서 아침을 먹이고 등원을 시킨다. 나보다 더 주부 9단인 남편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밤늦게 국도 끓여놓기 일쑤다. 점심도시락을 집에서 싸서 다니는 날 위해 간혹 반찬들도 만들어 놓는다. 참 내가 복이 많다. 남편은 아들의 등원을 책임져야 해서 10 to 7 플렉스타임 근무를 한다. 하루에 10시간씩 직장어린이집에 맡겨진지 벌써 3년 차인 아들은 항상 밝고 씩씩하게 어린이집 생활을 지내오고 있다.


매일매일의 소원이 엄마가 저녁식사 시간 전에 본인을 데리러 오는 것. 그 사소한 소원 하나 매일 같이 들어주지 못하는 나는 우리 집 하원 담당이다. 정말 정신없이 하루의 일을 마치고 18시에 칼퇴를 해도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운이 좋아야 19시. 그래도 아들은 언제나 나만 보면 웃는다. 하원 후 엄마와 아이스크림 한 개씩 먹으며 소소한 대화를 하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 10분 시청을 사랑하는 녀석. 나는 이렇게 두 남자와 행복한 삶을 매일매일 그리며 살고 있다. 주말은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 세 식구가 완전체가 되어 서로의 채취를 오롯이 느끼는 이 시간이 늘 달콤하다.




그런데 지난 주말 토요일은 달랐다. 금요일 퇴근 때까지 멀쩡했던 몸뚱이가 토요일 아침 기상하기 힘들어하고 몸에는 발열이 난다. 뭔가 이상함을 직감한 나는 얼른 체온을 쟀다. 37.5도. 2020년 들어서 처음 만나보는 체온이다. 차차 나아지겠지 했던 체온은 계속 올라가고 38.3도를 찍고 해열제 복용 후에도, 한숨 자고 일어난 일요일 아침에도 내 열 상태는 지속되었다. 하루가 지난 상태에도 몸이 말을 듣지 않자 이제야 뭔가 안 좋은 기운이 감지가 됐다.


질병관리본부 1339로 전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은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고 나는 성실히 답했다. 역학적으로 코로나 19 가능성은 낮아 보이니 국민안심병원으로 전화를 해서 진료에 대해 질의를 해 보라는 답변을 받았다. 몇 군에 전화했더니 열이 나면 진료가 아예 안 된단다. 급한 김에 홀로 집을 나선 뒤 차를 끌고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거기서도 발열이 있다는 이유로 격리실에 갇혀 폐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와도 유선상으로 진료를 봤다.


발열 외에 토요일에 콧물이 조금 있었다고 하니 폐 엑스레이 사진은 이상이 없지만 그래도 코로나 19 검사를 해야 한단다. 검사하시는 분이 들어와서 코로나 검사를 했다. 검사가 많이 아프다고 들었고, 그중의 최고봉은 면봉이 코에 들어갈 때 인체의 신비를 경험했다는 말까지 있었는데 나는 하나도 안 아팠다. 끝이라고 해서 많이 놀랬을 뿐. 결과는 내일 오후에 통보될 예정이고 결과 전까지는 자가 격리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


어차피 토요일부터 몸살처럼 제대로 기운이 없어서 어디 나가지도 못했는데, 내일 오후에나 결과가 나오면 내일 출근을 못하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그 걱정이 앞섰다. 나는 어느 순간 내 몸보다 회사일을 걱정하는 은행의 노예가 되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운전석에 앉으며 피식 웃었다. 회사에는 상사에게 얘기를 해 놓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내일까지 푹 쉬자 편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12:35분, 한 통의 문자가 들어왔고 그 문자는 내게서 모든 희망을 앗아가 버렸다.

[검사 결과 안내-상기도] OOO님 코로나 19 진단검사 결과 양성(코로나 19 감염)입니다. 문자 확인 후에는 외출을 하지 마시고, 관할 보건소의 연락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 OO병원 -


순간 얼음이 되었다. 나뿐이 아니라 다음 달 이사를 위해 아침부터 분주히 소소하게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던 남편 또한 함께 얼음이 되었다. 이 상황을 모르고 옆에서 우리에게 얼음땡을 외치고 있는 5살 내 꼬마 녀석만 빼고 그 순간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변했다.그렇게 나는 우스갯소리로 하던 확찐자가 아닌 진짜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