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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녀석의 존재를 받아들이기까지

확진 판정 이후 알게 된 코로나의 두 얼굴


그렇게 나는 관내 구민 192번째 코로나 19 확진자가 되었다. 남편과 얼음의 순간도 잠시, 너무 놀라 울음이 나오려던 것도 잠시 잊은 채 가장 먼저 회사로 전화를 했다. 당연히 내 입에서 “차장님! 저 음성이래요! 너무 잘 됐죠? 우리 내일 반갑게 만나요~”라고 말할 거라 예상했을 나의 상사는 내 전화를 엄청 반갑게 받으셨다. 우울한 그 소식을 전하는 게 너무 미안하리만큼. 그리고 나의 양성 판정 결과를 통보받은 내 상사는 울음을 터트린 나를 진정시킴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이후의 보고체계를 생각했으리라.


나도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눈물 닦을 여유도 없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전화를 이어갔다. 원장 선생님께서도 방금 전 상사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신다. 그 누가 그랬지. 코로나 19에 걸리면 죄인이 된다고... 내가 겪어보니 이런 대역죄인이 또 없다. 나 또한 국가적 재난의 피해자이지만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그 환멸감을 당해보지 않는다면 알 수가 없을 터. 그러나 원장 선생님은 선생님이 아니시던가! 당황하신 목소리가 역력했지만 그 와중에 차분히 말씀을 이어가시면서 울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님,
너무 죄송하다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돼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있는 일이잖아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거예요. 언젠가는 일어날  있었던 
일이 운이  나쁘게 어머님께 일어난 
뿐이니  이상 죄송하실  아니에요...”


그런데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마음 가득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크나큰 안도감을 느꼈다. 원장 선생님께서도 정부지침대로 조속히 움직이셔야 하니 전화를 붙들 수만은 없었다.




전화를 끊고 식탁에 머리를 조아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맞다. 그런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현실도피와 현실 부정의 마음이 동시에 와서 한동안 감정을 추스리기가 힘들었다. 그런 모습을 말없이 안타깝게 보고 있는 나의 두 남자. 아들은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한 엄마의 모습에서 뭔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으리라. 남편이 아이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하여 마음을 추스르고 식탁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내 핸드폰은 그때부터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불이 나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 전화는 내가 진료를 받았던 병원 및 아들의 어린이집이 속한 구의 보건소였다. 양성 판정 문자를 받으신 게 맞는지, 병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묻고는 거주하시는 관할 보건소에서 역학조사를 위해 동선을 파악할 예정이니 미리 작성을 하고 계시는 게 좋겠다는 얘기도 덧붙여 주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내가 사는 동네의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역학조사는 증상 발현 2일 전부터 시작한다며 그때부터의 행적을 제출해 줄 것, 2주 전부터 쓴 카드의 승인내역 제출, 사용한 카드의 카드번호 전부 제출, 통신사가 어디인지, CCTV 확보 시 내 얼굴을 알아야 하니 마스크 미착용 사진 및 마스크 착용한 모습의 사진도 제출해 달라고 했다. 타고 다니는 차량의 종류부터 차 색깔, 차 번호, 다니는 회사, 가족의 인적사항까지 모든 것을 다 요청받았고 오후 3:30에 구급차가 나를 이송하러 오기 전까지 빠르게 협조해 줄 것을 요청받았다. 전화를 끊고 정신없이 메모를 시작하자 이번에는 회사가 속한 구의 보건소에서 전화가 들어왔다. 반복되는 질문들에 끊임없이 앵무새처럼 대답을 하면서 생각했다. 아직 백신이 나오지 않은 위험한 국가적 재난 앞에 코로나로 확진된 순간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임과 동시에 경로의 접점을 찾게 되는 인물이 되면서 외적인 스트레스까지 같이 떠안아야 하는 거구나.




이후에도 전화는 계속되었다. 회사의 리스크 관리팀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놀람과 충격에 쌓인 가족들의 전화도 간간히 소화해야 했다. 이틀간의 행적을 떠올려 시간 순서로 적어내는 와중에 구급차 기사님이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으니 천천히 짐을 싸서 내려오라는 전화 내용도 있었다. 남편이 보건소에서 보내준 준비물대로 격리를 위한 짐을 준비해 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아이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이미 아들 앞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기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아들도 뭔가 직감을 했었는지 “엄마 코로나 확진됐어? 그래서 어디 가? 병원 가서 치료받아?”라며 질문을 시작했다. 차마 안아주지도 못하고 마스크를 쓴 채로 멀찍이 떨어져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정신없이 전화 응대를 하는 동안 남편과 아들 또한 선별 진료소로 가서 코로나 검사를 진행하고 왔다. 차마 사랑하는 두 남자를 두고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상 최고 가정적인 아빠라서 아들을 케어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그 둘이 좁은 집안에서만 복닥거리며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들까. 그들과 제대로 된 이별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작은 캐리어 하나를 손에 쥐고 집을 나왔다.




이제야 하늘을 처음 바라보게 된다. 가을 하늘이 참 청명하구나. 내 마음과는 다르게. 그래, 하늘아 너라도 맑고 밝아 다행이다.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여정을 향해 한 발씩 내딛는 길이 두렵고 무서웠다. 1층의 구급차가 나를 맞이했다. 기사님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문을 여니 구급차 안이 온통 비닐로 덮여있었다. 의자에 이송 관련 통지서 및 서류가 있었다. 이윽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기사님께서 곧 출발할 테니 안전벨트를 메 달라고 하셨다. 나름 경증환자로 분류된 나는 생활치료센터로 가게 되고, 그곳까지 대략 40-50분에 걸릴 거라고 하셨다.


그제야 처음으로 내 숨소리를 듣게 되었다.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코로나 19 양성판정 문자를 받은 지 3시간 반만에 나는 전화에서 해방되었고, 오롯이 나 자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3시간 동안 코로나의 양면성을 전부 체험한 나는, 진짜 코로나와 대면하러 새 길을 떠난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그 길 위로 내 인생은 이미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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