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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다

코로나 확진 후 나와 관계된 모든 이들에 대한 걱정


드르륵, 드르륵. 아침부터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언뜻 시계를 보니 아직 아침 7시밖에 안 됐다. 이 아침에 누구지? 하고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는다. 엄마다. 우리 엄마. 엄마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딸~ 잘 잤어? 지금 일어난 거야?"라고 말했다. 사실 어젯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평소에 잠드는 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침대에 누웠지만 지금 있는 공간도 낯설고 생각의 생각이 자꾸만 한없이 꼬리를 물어 쉬이 잠에 빠질 수 없었다. 새벽 내내 이쪽저쪽 몸을 굴려서 자 보고 침대에 앉았다가 섰다가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어느 순간 선잠에 빠졌으리라. 그리고는 엄마의 모닝 전화가 내 모닝콜이 되어주었다.


"그럼~ 엄마! 잘 잤지, 아주 완벽히 잘 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잤어. 많이 피곤했나 봐~"라고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는 "잘했다. 잘 잤다니 다행이야. 엄마는 한숨도 못 잤어. 네가 거기 그렇게 있는데 어떻게 엄마가 마음 편히 자,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서...."라며 엄마는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엄마에게 잘 잤다고 말하길 잘했다며 나 스스로를 칭찬했고,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의 마음이 뭔지 알기에 나도 그냥 또 아침부터 울컥하고 말았다. 나는 우리 엄마의 딸이면서 내 아들의 엄마이기도 하니깐.


나 때문에 내 남편과 아들이 그렇게 좁은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는데, 나 또한 우리 아들에게 너무 미안한 엄마가 되어버렸다. 사실 그 누구가 코로나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이미 확진이 되었고 어떤 경로로 이렇게 됐건 이런 엄마 때문에 내 아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만 같아 그저 계속 나 또한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는 걸. 그러하기에 엄마가 나한테 잘못한 게 없는데도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의 말이 너무 100% 공감이 되어 당장이라도 친정집에 가서 엄마를 안아주고 싶었다. 엄마 탓이 아니라고, 이건 내 면역력의 문제인 거라고.




지난 9월 한 달간 나는 정말로 위태로웠다.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스트레스 가운데 있었다. 세상 긍정적인 남편을 만나 함께 인생의 여정을 지내오며 스트레스 위기능력이 20대 아가씨일 때보다 훨씬 탁월해진 것은 사실이나, 모든 것이 한 번에 휘몰아치던 8-9월은 내 인생에서 정말 손에 꼽는 고비였다. 회사에서도 불안하고 집에서도 불안하여 나를 아는 지인들이 숱하게 내 상태를 걱정했었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걱정할 거 없다고, 걱정은 개나 줘버리라고 잔소리처럼 말해도 흔들리는 바람에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내 정신 나무는 계속 흔들렸다. 그럼에도 은행일은 정확해야 하기에 업무시간 동안은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칼퇴에 목숨 걸며 아들을 만나면 아들을 재울 때까지 온전히 아들과 놀아주는 그냥 아들바보였다. 내 멘털을 관리하고 인지하고 인정해 줄 시간은 현저히 부족했다. 그러면서 나의 영육이 연약해졌으리라. 그리고 내 면역력 체계 또한 무너지면서 코로나 19 바이러스에게 내 몸을 내어줬으리라.


그래도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침을 맞아 다행이다. 밤새 불안했다. 밤새 걱정했다. 오늘 나오는 나와 관련된 모든 이들의 검사 결과에 나의 촉각이 곤두서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자장가처럼 내 마음에 위로와 평안이 되어줬다. 우리 엄마는 밤새 딸에게 얼마나 전화를 걸고 싶었을까. 그나마 용기 내서 전화한 것이 아침 6:58분이었겠지. 엄마랑 수다를 떠는 와중에 카톡 알림이 떴다. 회사에서 나와 함께 일했던 모든 동료들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기쁜 소식이었다! 전원 음성이라니, 모두 다 코로나가 아니라니! 그 순간 나는 또 침대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이 기쁜 소식에 전화 너머 엄마도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 하나 때문에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아플까 봐, 말 그대로 민폐 인간이 될까 봐 밤새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모른다. 그런 딸을 둔 엄마 또한 나와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우리는 서로 한참이나 울다가 잘됐다 잘됐다 하며 전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제야 직장 동료들에게 하나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오로지 나만 생각하라는 얘기. 그리고 모두 하나같이 우리 가족의 검사 결과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특히 우리 아들. 나랑 남편도 아들만큼은 꼭 살리고 싶었는데 다른 이들의 생각도 동일했다.




그 사이 아침식사 시간이 됐고 나는 아침을 먹으면서 남편과 톡을 했다. "오늘 아침은 뭐 나왔어?"라고 묻는 남편의 말에 남편에게 보여줄 식사 사진을 찍었다. 오늘 아침은 그야말로 내 스타일이었으니깐. 바게트 샌드위치에 아이스커피, 사과 1개, 빵, 로터스 과자 등 예쁘게 배열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니, 지금 보여줄라고 사진 찍고 있는데 왜 전화를 했어?"라고 말하는 내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여보~ 우리 아들 결과 '음성'이래.
방금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한테 전화 왔어.
보건소에서 전화 받으셨다면서..."  


그 순간 나의 눈물샘은 또 터지고 말았다.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우리 아들의 '음성'결과라니. 나는 바보처럼 울었다. 나는 어떻게 돼도 좋으나 내 자식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게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니깐.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정말 너무 행복했다.


한동안 진정하지 못하고 우는 나를 수화기 너머로 안타까이 바라봤을 우리 남편. 그 순간 남편이 떠올랐다. “그래서 여보는 어떻게 됐는데? 당신은? 당신도 음성이래?"라는 나의 폭풍질문에 본인은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서 답이 오면 바로 알려주겠단다. 아침이고 뭐고 그때부터 또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제발 남편도 음성이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4분 뒤 다시 전화가 울렸다. 남편이었다. 

"여보, 나도 '음성'이래!
그러니깐 이제 당신 낫는 거에만 집중하자!" 


나는 남편의 말에 오열을 했다. 어제오늘 평생 울 거 다 운 것 같은데도 이 끝없는 눈물은 당최 어디에서 나오는건지. 모두 다 음성이라니. 기뻤다. 정말 너무 기뻤다. 이건 온전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센터에서의 둘째 날은 그렇게 아름답게 시작됐다. 중간중간 가족 및 지인들의 연락을 받고 또 통화를 하면서 끝없이 울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고, 거울 속에 나는 정말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이 감정의 파도는 언제까지 휘몰아칠 것인가. 슬픔과 기쁨의 양 극단을 오가며 나는 감정의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정신줄 잡듯이 마음 줄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하루의 시계는 똑딱똑딱 흐르고 있었고, 어제보다는 조금 더 이 센터에 적응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러다가 오후에 또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의 전체 교직원분들도 코로나 19 검사 결과가 모두 '음성'으로 나와서 추석이 지난 후부터 다시 어린이집 개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께 전화가 왔고 우리 두 여자는 또 통화를 하며 울었다. 나의 눈물샘이야 어제부터 심히 고장 나 있었지만, 원장 선생님께서도 아들 1명을 키우고 계신 입장에서 내 마음에 공감하고 이해가 되니 같이 우셨구나 싶다.


그래, 이제 모든 건 정리가 되었다. 나의 밀접접촉자인 남편과 아들, 내 직장동료들, 아들의 어린이집 선생님들 전체가 모두 다 '음성'이다. 나로 인해 시작된 이 일에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고 오직 나만 등장하게 되어 정말로 감사했다. 이제 '양성'판정을 받은 나만 잘하면 된다.  비록 음성 판정이 났어도 2주 간의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내 가족과 직장동료들에게 미안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나니깐. 코로나, 너로 인해 연결되었던 모든 고리는 일차적으로 우선 한번 끊어졌다. 이제 내게 남은 문제는 너와 나의 연결고리마저 완벽히 끊어내는 것. 이제 나는 그것을 위해 집중해야겠다. 센터에서의 이튿날이 이렇게 져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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