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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녀석이 나의 일부를 앗아갔습니다

코로나 증상_ 미각/후각 상실에 대하여


다급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7.0.1. 숫자를 꾹꾹 누른다. 이 번호는 센터 내 의료실 번호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계속 신호음만 갈 뿐이다. 전화를 내려놓고 급히 휴대폰을 뒤져 입소할 때 받았던 연락처로 카톡을 남겨본다. '선생님, 계세요? 701번으로 전화했는데 아무도 안 받으셔서 톡을 남겨요. 306호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미각을 잃은 것 같아요.

모든 음식의 맛이 다 동일하게 느껴지는데 저 괜찮은 거 맞아요? 아침/점심까지는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서요. 저녁 도시락으로 나온 떡갈비를 먹어도 제육볶음을 먹어도 마늘종을 먹어도 다 하나의 맛처럼 쌉싸름할 뿐이에요. 우리가 보통 음식을 얘기할 때 떠오르는 맛이 느껴지지 않아요.'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던 그때 선생님께 바로 답톡이 왔다. 'OO님, 저희가 식사시간이어서요. 미후각 소실은 코로나 증상 중 하나입니다. 미후각 소실이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셨군요.'라고... 그렇다. 나는 정말 코로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었다. 아직까지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병, 그래서 걸리면 안 되는 전염병으로만 알고 있었지 이런 소소한 증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코로나 19 검사 결과 '전원 음성 판정'을 받으면서 이 사태는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야 오롯이 나라는 사람에게 집중하게 되니깐 그제야 몰랐던 내 몸의 증상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무섭기 시작했다. 평온해졌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파도는 다시금 큰 너울성 파도를 일으키며 성을 내고 있었다. 후각도 상당수 소실되었다는 걸 인지하고 나니 선생님께 또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아, 저는 증상에 대해 잘 모르고 있어서요. 그럼 저 괜찮은 거예요? 지금 많이 놀라 가지고요. 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나요?'  선생님께 바로 답이 왔다.

‘현재 입소 중인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같은 증상을 겪고 계시고, 이것에 따른 치료 또한 없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시 돌아오는 증상이지만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달라서 정확히 언제쯤 돌아올 거다 라고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보통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걸리는 것 같습니다.'




저녁을 먹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맛도 느끼지 못하는데 먹는 게 뭐 대수인가. 그리고 또다시 뜨겁게 내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말없이 조용히 닦아냈다. 충격에 충격이 가해지는 건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다음에 내 머리를 강타할 또 다른 충격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첫 발열 증상이 났던 지난 토요일부터 나는 입맛이 없던 게 아니라 미후각 상실을 겪고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남편은 아내와 아들을 위해 소고기 뭇국을 끓여 밥상을 차려줬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격한 몸살 정도로 착각하고 있던 나였기에 입맛이 없다고 거절했었다. 남편은 감기는 잘 먹어야 낫는 거라고  친정엄마처럼 말하면서 국을 한 가득 떠 줬었다.


자랑이지만 우리 남편은 요리도 잘한다. 손도 엄청 빨라서 여러 가지를 한 번에 만들 수도 있다. 그런 그가 만든 소고기 뭇국이 맛이 없었다. 남편이 어떠냐며 긍정의 대답을 기다리는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맛이 없었다. 알고 보니 '맛'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는 걸 이제 와서 알게 된 환장할 노릇. 그가 만든 음식 중에 맛없는 건 없다. 9년을 함께 사는 동안 거의 없었다. 친정엄마도 남편이 만든 안동찜닭을 먹고는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야? 나 좀 가르쳐줘!"라고 말할 만큼 요리실력까지 출중한 남자이다. 맛이 어떻냐고 묻는 남편의 질문에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히 최고 맛있지! 여보가 만든 건데~ 좋겠다, 요리 잘해서! 아들, 아빠가 만든 거 정말 맛있지?" 라며 한 가득 국을 다 먹었더랬다. 한우까지 팍팍 넣은 소고기 뭇국이었는데 한우의 고소한 맛도 진하게 배어 나오는 고기 국물 맛도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오늘 비상사태. 내 머리 폭발 예정. 오늘 진상고객 천국이었어. 진상진상 대환장파티. 오늘은 매운 껍데기를 먹어야겠음.] 보통 퇴근하면서 내가 남편에게 보내는 톡의 내용이다. 은행에 있다 보면 매일같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은행이라고 깔끔한 사람들만 찾아올까. 여느 서비스직처럼 대접받기 좋아하는 사람부터 큰 소리 내는 사람까지 세상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대면할 수 있는 곳이 은행이다. 일보다 사람을 대하는 스트레스를 받은 지 벌써 13년 차. 이제는 이골이 날만도 한데 여전히 마음의 스크래치가 자주 생긴다. 신입 때는 지금보다 더했다. 진상 손님이 가고 나면 엉엉 소리 내며 운 적도 많고 워낙 마음이 약한 탓에 자주 눈물을 비쳤더랬다. 물론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니다. 웬만한 거에는 능구렁이처럼 처신할 만큼 처세술에 능하나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려면 맛있는 걸 먹어줘야 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부터 모든 스트레스는 거의 먹는 걸로 풀었다. 지역별로 머릿속에 맛집 지도가 그려져 있어 많은 친구들이 약속을 잡을 때 내게 지역을 얘기해 주면 내가 맛집 지도를 종이에 그려줄 정도였다. 남편과 연애할 때도 음식점 선택은 내가 했다. 그날의 스트레스 정도에 맞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퇴근 전 정해진다. 그러니 퇴근하고 갈 식당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나는야 답정녀. 되려 남편은 내가 뭐 맛있는 거 먹자는 얘기를 안 하는 날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아들을 하원 해서 씻기고 집안 정리를 하다 보면 시간이 정신없이 가는데 그럴 때면 남편이 먼저 연락을 해 온다. '지금 집에 가는 중인데 마트에 들러서 뭐 안 사가도 돼? 필요한 거 없어? 껍데기 안 필요함?' 이러면서 말이다. 그 정도로 먹는 것이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나에게 오늘의 이 사태는 정말 큰 일 중에 큰 일이다. 너무 놀라서 남편에게 바로 얘기했더니 남편도 "정말 큰일이네. 하지만 돌아온다잖아. 시간이 조금 걸릴 뿐. 너무 염려하지 마~"라며 달래주었다.




저녁을 먹고 정리한 뒤 인터넷으로 코로나 후유증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숱한 증상들과 후유증이 나타났다. 기사 하나를 읽는데 벌써부터 현기증이 난다. 그냥 다시 덮었다. 이 코로나의 증상 및 후유증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지도 관여하고 싶지도 않았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증상이 어떻건 간에 나는 이 긴 터널을 잘 뚫고 나가고 싶을 뿐이다. 나는 내 몸의 상태를 찬찬히 스캔했다. 토요일 발열 증상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부분들을 찾았다. 현재는 코가 많이 막혀있는 상태이다. 인후통까지는 아니지만 침을 삼킬 때마다 조금 불편감이 있을 정도로 목구멍 안 쪽이 부어있는 느낌이다. 등 근육통과 오른쪽의 가슴 부분이 위축되고 수축되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제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이다. 물론 그 약이 강도가 세서 사람을 너무 나른하게 만든다는 걸 인지한 후 스스로 약을 중단하고 의료진에게 얘기했다. 이렇게 의료진과 소통하면서 내 상태를 점검하고 점점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겠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하루에 3번 꼭꼭 전화해 주는 우리 엄마. 엄마의 통화에서 나를 향한 사랑이 느껴진다. 아들이 밤마다 내 팔을 껴안고 "엄마 살은 정말 말랑말랑 해~"라고 말해 줄 때마다 어릴 때 엄마품에서 성경책 이야기를 듣던 나의 5살을 떠올리곤 했다. 나이가 들수록 어릴 때 기억이 선명해지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어쨌든 엄마의 용건은 우리 집에 아빠와 함께 들렀다가 집으로 가고 있다는 거였다. 내일이 추석인데 사위와 손자가 집안에 갇혀 있는 것이 너무나 속상해 아침부터 장을 봐다가 갈비찜을 만들고 잡채랑 골뱅이무침이랑 전 몇 가지 부쳐서 현관문 앞에 두고 왔단다. 엄마에게 고맙다고 백번 말했다. 큰 딸이 이런 상황이라 속이 말이 아닐 텐데 그 와중에 내 가족까지 챙겨주는 엄마. 정말 나는 엄마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비록 엄마가 만든 추석 음식도 먹을 수 없지만 오늘도 살아있음에, 그리고 응원해 주는 가족이 있음에 감사한다. 불평할 것들보다 주신 것이 더 많으니 내일 하루도 열심히 살아내야지. 내일 눈을 뜬다면. 센터에서의 셋째 날도 이렇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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