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코로나, 몸보다 마음을 더 흔드는 녀석

코로나 이 녀석에게 절대 내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306호실 책 상 위에 놓인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린다. 이건 내 전화다. 이 공간에는 나 혼자 존재하니깐. "여보세요?"라고 내가 전화를 받자 의료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OOO님이시죠? 여기 의료지원실이에요. 아침에 보내주신 자가평가 기록지 보고 연락드렸어요. 잠깐 통화 괜찮으시죠?"




추석 당일이 되었다. 난 이 치료센터에서의 나흘째 아침을 맞이하였다. 어젯밤 잠이 안 와서 새벽 3시 즈음까지 고군분투했었는데 새벽에 살짝 잠이 든 것 같다. 아침식사가 곧 배식된다는 안내방송에 잠을 깼다. 여전히 내 마음 가운데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불안은 어젯밤 나를 저 밑으로 끌고 갔다. 밑으로 끌려가는 줄 알면서도 여지없이 질질 끌려갔다. 제발 나를 놔 달라고, 불안에게 잡힌 멱살을 놓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지만 쉽지는 않았다. 난생처음 폐쇄 공포증 같은 불안감도 느껴보았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이 마음.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하염없이 계속 끌려갈 수 없었다. 얼른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다. 침대에 누웠던 몸을 일으켜 바닥 끝까지 내렸던 블라인드를 활짝 다 걷어올리고 새벽의 산을 그대로 마주했다. 캄캄하고 얼음처럼 차가울 거라고 생각한 바깥은 예상외로 가로등 불빛을 받아 따뜻한 모습이었다. 침대에 누워 산을 바라보았다. 근육 및 신경을 이완시켜주는 처방받은 약의 도움을 받아볼까 하다가 누운 그 상태로 눈을 감아보았다. 의외로 편안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는 약간의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산이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위로하는 것 같았다.


추석이지만 내 마음은 즐겁지가 않다. 내 삼십팔 평생에 이런 추석이라니.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아, 정말로. 사랑하는 내 두 남자 또한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면서 추석을 맞이했다. 두 남자와 아침부터 영상통화를 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좋은데 아들의 얼굴과 재롱까지 영상으로 볼 수 있으니 이런 문명을 누리는 세대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평소에 영상통화를 즐겨하지 않는 친정엄마조차 아침부터 손자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 문명 기기에 밝은 아빠의 도움을 받아 아침 일찍 손주와 통화를 했단다. 하루에 세 번씩 전화를 주는 엄마와의 통화도 역시나 이곳에서 맞는 아침의 필수코스이다. 오늘은 엄마한테 잘 못 잤다는 얘기도 했다. 여전히 가끔씩 눈물도 계속 난다는 말을 그냥 했는데, 그 순간 엄마는 핸드폰을 손에 든 채로 엉엉 엉엉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딸 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부단히 애를 쓰지만 딸이 눈물이 자꾸 난다는 말에 엄마의 눈물샘도 터졌다. 추석인데 이렇게 가족이 와해되어 있으니 엄마의 속도 말이 아니겠지. 난 엄마에게 전화를 끊겠다 얘기하고 종료를 눌렀다.

 



"OOO님. 오전에 적어주신 생활지에 보면 지금 불편하다고 느끼시는 부분들이 꽤 많아요. 그중에 이비인후과 적인 증상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오늘 때마침 당직 교수님께서 이비인후과 교수님이시거든요~ 도움이 좀 되실 것 같은데 진료 한번 보시겠어요?" 내가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지난 토요일 발열이 시작된 후부터 정말로 만나고 싶었던 인물 중에 하나가 '의료진'이었다. 응급실에서부터 의료진을 만나긴 했지만 거의 비대면이라서 목소리로만 만났다. 마치 AI기계와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 여기 와서도 의료진은 전화 또는 카톡으로만 만나는 가상 속의 인물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내게 교수님을 대면할 기회가 생기다니! 비록 영상통화이지만...


잠시 후 내 핸드폰 화면에 낯선 남자의 모습이 뜨면서 영상통화 신청이 왔다. 마스크를 쓴 남자 교수님은 내게 다정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주었다. 나는 이렇게 소중하게 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차근차근 조근조근 현재 느껴지는 몸의 불편한 증상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조용히 내 얘기를 들어주셨고, 증상들이 해결되어질 수 있게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불면의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그 문제는 현재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다 보니 정신과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라고 말씀하시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잘 먹고 잘 자면서 면역력을 키우는 게 좋다고 하셨다. 그러하기에 잠이 쉬이 오지 않을 때는 약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 부분이 참 궁금했는데 의사에게 직접 표정과 함께 육성으로 진단받고 처방받으니 이 얼마나 명쾌하고 통쾌한 일인가! 6분가량 지속된 통화 가운에 내가 또 잠시 울컥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우리들의 영상통화 진료는 아름답고 감사하게 끝났다. 5분 뒤, 나를 담당하는 의료실 선생님께 다시 전화가 왔다.




"OOO님! 교수님이랑 통화 잘하셨어요? 교수님이 약을 처방해 주셔서 점심 배식 때부터 나갈 거예요. 잘 드셔 보시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요. 아까 OOO님 또 울컥하셨죠? 저 아까 교수님 통화하실 때 옆에 있었거든요. 가족들도 동료들도 모두 다 음성 판정 나와서 좋다고 하셨잖아요. 이제 마음 잘 추스르고 낫는 일에만 집중해요, 우리! 잘하실 수 있죠? 오늘 당직 교수님이 때마침 이비인후과 교수님이신 것도 너무 잘 됐잖아요. 혹시 옆에 다른 입소자가 있다면 좀 더 마음이 좋으실까요?" 그런데 그거는 또 아니었다. 아니라고, 혼자 있는 것이 사실 편하고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 여기 센터 전체에서 OOO님만 혼자서 방을 쓰고 계세요. 다른 분들은 다 2인 1실을 쓰고 계시거든요. 이게 입소날이 같아야 방을 같이 쓰는데 운이 좋게도 OOO님은 혼자인 거예요. 입소날이 다를 경우 중간에 누가 들어올 확률은 낮아요. 그러니깐 그런 특권까지 갖고 계시니 다시 한번 힘내는 거예요. 아셨죠?"


그녀의 말에 난 또다시 울컥했지만 울음을 꿀꺽 삼키며 알겠다고 선생님께 다짐했다. 더 이상 불안과 우울의 영에게 끌려가지 않으리. 이제는 정말 나만 잘 나으면 되는데! 옆에서 많은 이들이 도와주고 있고 상황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나의 편으로 흘러가는 것 같으니 정말로 나만 잘하면 되겠다. 코로나 19라는 녀석은 내 몸을 먼저 잠식했지만 지금은 나의 정신까지 잠식하려 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굴하지 않겠다. 절대 내 몸뚱이 내어준 것만으로도 족하니 내 영까지는 Don't touch!!! 내면의 소리 없는 전투 가운데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다. 창밖으로 탁-탁-탁-탁- 절에서 나오는 목탁소리가 청아하게 울린다. 기독교인 나이지만 오늘은 저 소리마저 평안하게 느껴진다.



이전 05화 코로나, 녀석이 나의 일부를 앗아갔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