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치료센터에서 겪은 무례함에 대하여_전부 읽히는 속마음
“안녕하세요, 306호인데요." 웬만해서는 센터 상황실로 전화를 걸 일이 없었다. 이 곳에 입소한 지 벌써 나흘째. 이곳의 생활수칙 중의 하나는 폐기물 쓰레기를 배출할 때 쓰레기봉투 겉면과 그 쓰레기를 넣은 폐기물 의료 통 겉면에 소독제를 뿌려 현관 앞 정해진 시간에 배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306호에 들어오자마자 방 안에 소독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 상황실에 연락해서 받은 뒤 오늘이 두 번째 연락이다.
"네!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죠?"라고 묻는 상대방에게 나는 답했다. "제가 어제 쿠팡으로 마스크를 시켰거든요. 아까 배달해 주시는 분께서 12:41분에 센터 일층 택배함에 넣고 가셨다면서 사진을 보내주셨는데요, 그러면 저녁 배식 때 같이 주시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저녁 배식 때 저는 마스크를 받지 못했거든요. 확인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그러자 30초 정도의 침묵이 흘렀고 상대방은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몇 호라고 하셨죠? 306호요? 아, 제가 호수를 착각해서 올려 보낸 것 같아요. 303호로 기재했던 것 같은데...." 너무 놀란 나는 "네? 뭐라고 하셨어요?"라고 반문을 했다. 상대방은 "아, 죄송합니다. 우선 다시 확인하고 전화를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통화는 끊겼다. 순간 벙-졌다. 지금 전화로 들은 이 내용이 전부 뭐람? 내가 시킨 물건이 지금 다른 호실에 가 있다는 말인가?
코로나 확진 문자를 받고 이 곳으로 이송되기 전, 보건소에서는 14일 동안 센터에서 지낼 때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라며 리스트를 보내줬다. 여러 기관들과의 전화통화를 소화하기 바빴던 내 대신 남편이 짐을 싸줬었고 나는 그 가방 그대로 들고 이 곳에 왔다. 방 안에는 센터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7일 기준의 물품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용하면서 부족한 것은 본인이 택배로 시켜서 받을 수 있다. 대신 위험한 물건이라던가 의료용품 같은 것들은 반입이 안 되기에 운영실에서 택배 물품을 먼저 뜯어 내용물을 확인한 뒤에 식사가 배식될 때 물건도 함께 받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준비된 용품에는 마스크가 없었고 내 캐리어 안에도 마스크가 없었다. 남편에게 물으니 준비물 리스트에 마스크가 없었단다. 혹시나 해서 소독제를 부탁할 때 마스크 여분 몇 개를 요청했더니 같이 가져다주셨다. 기본적으로 센터가 2인 1실이다 보니 누군가와 같이 지낼 것을 대비해서 마스크는 있어야 했다. 이미 확진된 사람들끼리 있는 거지만 그래도 서로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는 거니깐. 그래서 쿠팡에서 마스크를 시켰던 것이다.
나는 여름 내내 덴탈 마스크를 즐겨 썼었다. 워낙 답답한 걸 싫어하는 탓에 방역마스크를 쓰면 쫄티를 입은 것 마냥 불편했다. 그런데 코로나 확진이 되고 나니 덴탈 마스크를 즐겨 쓴 게 후회가 됐다. 조금 더 완벽하게 다 가리고 다닐걸. 그래서 이번에 주문한 마스크는 내가 좋아하는 크리넥스 회사의 개별포장되어 있는 비말 차단용으로 50개짜리를 선택해서 시켰다. 그런데 그 마스크가 지금 내게 없다. 아까 통화에 의하면 내 마스크는 지금 다른 사람에게 있다. 뚜르르, 뚜르르. 전화가 울렸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아, 여기 상황실인데요, 확인해 보니깐 그게 지금 303호로 가 있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제가 아까 올려 보낼 때 호수를 잘못 기재했네요." 너무나 황당했다. 무슨 일처리가 이래?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죠? 제가 지금 굉장히 황당한데요,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 것이 아니면 아니라고 얘기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아, 그분께서 다시 상황실로 연락을 주셔서 마스크 본인이 시킨 게 아니라고 했는데 전화를 받으신 분이 상황을 잘 모르고 그거 남는 거니깐 그냥 가지시면 된다고 말씀하셨다네요. 아, 너무 죄송합니다." 정말 너무너무 화가 났다. 내가 예민한 상태니깐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진심으로 화가 났던 건 상대방은 그다음 말이었다.
"다행히 그분이 개봉은 안 하셨대요. 저희가 이미 저녁시간이 지나서 내일 오전에 303호 분이 현관 앞에 두기로 하셨고, 저희가 내일 그걸 가져다가 소독을 한 뒤에 다시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상대방은 말했다. 나는 너무 황당해서 "아니, 지금 그 소독한 걸 저한테 다시 그냥 사용하라는 말씀이세요? 저는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이해가 안 되는데요?"라고 답했고 그러자 상대방은 되려 "하...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뒤에 숨어있는 괄호 안의 말이 내 머릿속에 들렸다. '서로 다 이미 확진자이면서 다른 확진자의 손길이 닿았다고 소독해서 주겠다는 걸 거절하는 이 여자는 도대체 뭐지?'라는 숨은 생각 말이다.
아무리 확진자여도 그 누구인들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은 마스크를 받는 것이 좋겠는가. 심지어 그냥 물건도 아니고 이건 우리가 올해 초부터 생명줄처럼 여기는 마스크인데... 내가 너무 어이없어 하자 상대방은 좀 더 알아보겠다면서 전화를 또 끊었다. 나는 바로 남편에서 전화해서 이 상황을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그렇게 사소한 거에 목숨 걸지 말라면서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돈 버렸다 생각하고 다시 시키라고 했다. 나는 그런 남편의 말에도 상처를 받았다. 남편이야 물론 그런 생각을 하고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두 사람의 발언은 마치 확진자는 자신의 목소리마저 내면 안 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느껴져 속이 상했다. 상황실에서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확진자라고 더 심혈을 기울이지 않고, 이미 확진자이니깐 물건 좀 잘못 나가면 어때-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것 같아서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다시 상황실에서 전화가 왔고 운영진들이 비축해 두고 있는 마스크 새 거 50개로 대체하여 물건을 받기로 했다. 글쎄,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오늘의 이 상황이 별거 아닐 수도 있고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군다고 우리 남편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코로나 확진자라서 해서 사람에서 벌레로
존재가 하찮아지는 것도 아니요,
존중받을 가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 확진자도 여전히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갑자기 또 위축이 됐다. 코로나 확진을 이기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을 때 혹여나 내가 다시 맞서 싸워야 하는 유리천장 같은 것이 끝없이 있는 건 아닌지. 그럼에도 아직 세상은 더 따뜻하다고 믿고 싶다. 이렇게 나흘째도 져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