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 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나무 주위를 계속해서 서성였다. 그가 자꾸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절까지 올라가는 언덕길을 따라 한없이 왔다 갔다 했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찾고 있는 건 뭘까. 오늘 아침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나를 반겨주는 건 언제나처럼 하염없이 푸르고 푸른 초록의 산이다. 그 푸른 배경 속에 한 남자가 보였다. 처음에는 절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인 줄 알았으나 그의 목적지는 절이 아니었다. 그가 서성이는 나무를 자세히 쳐다보니 굵직굵직한 알밤이 맺혀있는 밤나무이다. 멀리 내 방 안에서도 보일만큼의 굵은 알을 가진 밤나무들. 그는 그 주위에서 떨어진 밤을 줍고 있었다. 맨손으로 바닥만 쳐다보면서 걷다가 떨어진 밤이 있으면 그것을 주웠다. 밤 줍는 그를 관찰하는 한 명의 관람객으로서 그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적극적인 행동은 왜 하지 않는 걸까. 주인 없는 야산의 과실을 함부로 취하는 행위가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니라고 판단해서일까. 그런 그가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온 그의 손에는 기다란 막대기 하나가 들려있다. 내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놀랐다. 그의 적극적인 행동이 시작됐다. 그의 밤을 줍는 손길이 아까보다 빨라졌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나흘 전에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처음에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한없이 울기만 했다. 과연 또다시 쏟을 눈물이 남아있을까 싶은데도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 감정의 수도꼭지가 제대로 고장 나서 누군가 달려와 고장 난 수도꼭지를 고쳐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고장 난 수도꼭지는 스스로 고쳐야만 했다. 고장 난 수도꼭지의 상태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그녀 자신일 테니깐. 그녀는 현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고장 난 수도꼭지를 고치기 위해 캐리어로 달려가서 입소할 때 가져온 노트북을 꺼냈다. 남편이 14일간 영화나 드라마라도 보면서 힐링을 하라며 챙겨준 도구였다. 책상 위에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 그녀는 넷플릭스가 아닌 브런치 사이트로 이동을 했다. 프로필을 등록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 첫째 날의 일이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브런치로부터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알림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매일매일 <코로나 옥중일기>를 쓰고 있다. 해방을 꿈꾸면서!
브런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 전 따뜻했던 봄날이었다. 그때 나는 2년 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은행으로 복귀한 지 5개월에 접어들었고, 남편은 본인의 회사에서 남직원 최초로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승인받아 23개월 된 아들을 온전히 돌보고 있는 육아 대디였다. 은행으로 복직할 때 아들의 거취로 인해 수많은 고민이 있었다. 양가에 위탁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자식이 2명도 아니고 아직은 1명뿐이니 우리끼리 감당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하고 방법을 모색했다. 그 문제는 남편의 육아휴직으로 해결되었고 나는 집안이 평안하니 은행일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남편이 집에 있으니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남편이 따뜻한 저녁도 준비해 줬다. 아들을 남의 손에 키우지 않고 우리 부부가 온전히 육아를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본인이 원하는 버킷리스트 중에 육아휴직이 있다며 꼭 하고 싶어 했다. 남편은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를 성취했지만 온 몸으로 좌충우돌 초보 아빠 육아를 겪어야만 했다. 그렇게 육아 대디가 된 지 5개월이 되었을 때 남편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아름다운 추억들을 이야기로 남겨야겠다 선언했다. 그런 그가 선택한 플랫폼이 브런치이다.
남편은 자신에게 주어진 육아휴직 일 년이라는 시간을 절대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을 터. 언제나 도전하기 좋아하고 삶에 매 순간 열정적으로 임하는 남편은 일 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 동안 아들과 오롯이 함께 했다. 어느새 초보 아빠는 육달아빠의 모습으로 변모했고 아들만 데리고 둘이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등 멋진 아빠로서의 삶을 살아냈다. 그러한 남편으로 인해 브런치가 어떤 곳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남편이 한 때 브런치에서 열심히 글을 쓰던 때에 실제로 육아 관련 출판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었다. 물론 그 제의가 실제 출판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남편의 그런 활동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나만의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가 활동하는 시간 중의 일부를 할애하거나 내가 잠자는 시간 중의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 둘 다 포기할 만큼 내게 글을 써야 하는 강력한 동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인스타그램이라는 형식을 통해 매일매일 아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나름의 육아일기를 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녀석이 나를 책상 앞에 앉게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그 녀석이 너무나 밉지만 코로나 확진의 우울감에서 벗어나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센터에 들어오기 전에 남편이 혹시 몰라 노트북도 챙겼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 기분으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노트북은 왜 챙긴 거야. 내가 이 정신에 마음 놓고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나 있겠냐고. 이 노트북은 14일 동안 무용지물이 되겠군...'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노트북을 캐리어에 넣어준 남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는 코로나 확진이라는 주제가 신파극처럼 굉장히 진부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놀라운 사건이 내 인생에서 몇 번 찾아오지 않을 터닝포인트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코로나 백신이 만들어지고 코로나라는 녀석이 감기처럼 흔한 질병이 되었을 때, 나의 코로나 옥중일기가 내 마음속 한편의 아름다운 페이지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삶을 살아내며 어둠 속의 터널을 지날 때마다 오늘의 이 글이 한줄기 희망이 돼주기를 소망한다.
예전에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에서 손예진(윤세리 역)이 이런 대사를 읊은 적이 있다.
“바람이 왜 부는 것 같아요? 지나가려고 부는 거예요. 머물려고 부는 게 아니고. 바람이 저렇게 지나가야 내가 날아갈 수 있는 거고!"
그렇다. 지금의 바람 또한 곧 지나갈 것이다. 예기치 못하게 부는 것이 바람이지. 그리고 이 바람이 지나가야 내가 다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가 본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남들이 가보지 못한 길을 먼저 지나가는 것이 꽤나 불안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먼저 이 길을 잘 닦아놓으면 그 후에 행여나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내 발자국을 나침반 삼아 또다시 전진하리라! 코로나 확진이 그대의 발목을 붙들지라도 박차고 일어나기를 나 또한 응원한다. 지금의 내가 그러했듯이. 이렇게 센터에서의 다섯째 날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