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코로나, 나를 위해 살도록 내 맘을 부추기다

나 스스로를 지나치게 괴롭혔던 날들에 대한 반성


"아, 그러니깐 그날 선생님께서 빨간 스카프를 두르신 게 맞다는 말씀이시죠?" 코로나 확진을 받고 이 곳에 입소한 다음 날 아침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었다. 이른 시간부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발열 전의 이틀 간의 역학조사 관련으로 CCTV를 참고하고 있는데 그날 입었던 내 인상착의에 대한 확인 전화였다. "네, 저 맞아요. 와인색 슬랙스를 입고 있고요. 솔직히 아들의 옷차림까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그날따라 하원한 아들과 함께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백화점에 들렀었다. 아들과 했던 약속이 있는데 그 약속을 잘 지켜준 아들의 바람대로 책 한 권을 사러 가기 위함이었다. 한창 코로나가 확산되었던 올해 초반, 확진자들에 대한 동선이 알려지면 나 또한 '아니, 아프면서 왜 백화점은 갔던 걸까? 퇴근하면 집에 바로 가서 쉬어야지!' 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 토요일 발열 전까지 전조증상 자체가 없었다. 금요일 퇴근 때까지도 정상체온을 유지했었고, 게다가 마스크 또한 생명줄처럼 끼고 있었다. 어느 경로를 통해서 내가 감염이 된 건지는 아직까지도 모르지만 이미 그때부터 내 몸속의 백혈구는 코로나의 공격을 조심스레 받고 있었으리라.


"네~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얼른 쾌차하시기 바라겠습니다." 공무원분이 내게 위로를 하는 그 찰나 내 머릿속을 스친 한 사람이 있었다. "아, 저기, 제가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적어낸 이동경로에는 포함을 못 시켰는데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가지고요..." "그러세요? 어떤 부분이 누락됐을까요?" "OOO역 1번 출구 쪽에 <빅이슈 판매원>분이 계시는데요, 혹시 아세요? 아무튼 그날 제가 그분께 잡지책을 현금으로 구입했어요. 저도 그렇고 상대방 분도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고요, 서로 대화는 나누지 않았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 그 부분도 선생님 행적에 추가하여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지만 한동안 전화를 끊고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도움을 주고자 했던 그분께 상당히 폐를 끼친 느낌이다. 그 분은 괜찮을 거라고, 우리 가족/내 동료들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으니 그 또한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작년 초에 나는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던 문제였고, 어른들 옛말에 자고로 허리는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증상은 나날이 심각해져 통증으로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약이라고 쓰인 진통제를 처방받아 먹어도 신경이 눌리는 통증에 2-3시간마다 깨서 울다 자다를 반복했다. 안 다녀본 병원이 없었고 해보지 않은 치료가 없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한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잘 넘기나 했다. 그러나 육아휴직이 종료된 후 다시 시작된 은행생활로 허리는 나날이 고통을 받았다. 하얀 눈이 펄펄 내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편은 그런 고통받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걸 더 괴로워했기에 우리 둘은 수술을 결정했다. 부모님은 끝까지 수술을 반대하셨지만 남편은 이게 자신의 와이프가 사는 길이라며 나의 수술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수술 전 최종 진료를 보기 위해 찾은 대학병원 진료 날, 교수님이 물었다. 이 정도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했을 텐데 어떻게 은행에서 하루 종일 앉아서 근무할 수 있냐고, 그 고통을 어떻게 참았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나는 은행에서 한 번도 나의 허리디스크로 인한 문제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건강에 이상이 있는 직원이 아니라 항상 타인을 기분 좋게 만드는 비타민 같은 역할을 했다. 동료들의 기쁨을 위해 개그를 쉼 없이 날렸고, 온몸으로 흥을 표현하며 상대방을 웃음 짓게 했다. 수술하기 직전에는 내 오른쪽 발가락의 신경감각이 무뎌질 정도여서 수술은 급하게 진행되었다. 나의 수술 소식에 가장 놀란 것은 내 가족도 아닌 은행 동료들이었다. 직원들은 계속 농담하지 말라며, 허리가 그렇게 아픈데 어떻게 춤을 그렇게 매일 출 수 있냐고 되물었고, 수술 전 마지막 출근 때까지 지점장님도 내게 말했다. 정말 허리 아픈 거 맞는 거지? 수술 꼭 해야 하는 거 맞는 거지? 어떻게 전혀 내색을 안 할 수 있었냐며 계속 되물었다. 그랬다. 나는 나의 건강 이상 신호를 무시하면서 회사에서 일 잘하는 좋은 직원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게 미덕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갑자기 수술을 하게 돼서 새로운 직원이 충원될 때까지 지점에서 고생을 해야 하는 직원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헤어질 때까지 그 미안함에 엉엉 울었다.




작년에 뜻하지 않는 병가로 삼 개월을 쉬면서 앞으로는 나를 위해 살겠다 결심했다. 예전처럼 모든 사람들 마음에 꼭 드는 예스걸/긍정걸이 아닌 나만의 애티튜드를 지키면서 내 건강을 그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정비하고 다시 현업에 복귀했다. 잠깐의 휴식은 내 마음에 긍정의 씨앗으로 뿌려져 나날이 푸른 잎을 만들어냈다.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한 그루의 푸른 나무가 자라 있었고, 그 나무의 이파리들은 누군가 쉬어갈 수 있게 그늘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매몰되었던 관점들은 다시 주위를 바라보게 해 주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를 게 없었다. 아들의 하원을 위해 퇴근 후 내 발걸음은 빨라졌고 최종 목적지인 OOO역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날따라 무표정하게 잡지 하나를 들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빠르게 걷던 내 걸음은 그의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잡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빅이슈>라고 쓰인 잡지였다. 뭔지 모르지만 우선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잡지 한 권 주세요."라고 말하는 내게 그는 무표정하게 "최신호로 드리면 되죠? 오천 원입니다."라고 말했다. 지갑을 열었다. 다행히 지폐가 있었다. "여기 있어요~" 웃으며 말하는 내게 그는 고맙다는 말도, 잘 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226번째 발행된 잡지 한 권을 손에 쥐고 어린이집을 향해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나는 그와 그렇게 첫 만남을 가졌다.


그 후로 매일같이 그 자리에 동일하게 서 있는 그를 보게 되었다. 이미 그 길을 따라 아들의 하원을 한지도 벌써 일 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우리 엄마 언제 오려나- 하고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아들 생각에 매일 정신없이 지나가다 보니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혹여 눈치를 챘더라도 내 마음은 그까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첫 번째 잡지를 산 이후로 그는 내게 신경 쓰이는 사람이 되었다.  <빅이슈>는 격주로 발행되는 잡지이자 홈리스들의 자립을 돕는 스트리트 페이퍼이다. 잡지 판대 매금의 절반이 판매원(빅판)에게 돌아간다. 현금이 없더라도 카드로 구입할 수 있고 카드결제 수수료는 빅이슈 코리아 회사에서 부담을 한다. 격주 잡지이지만 내용이 빈약하지도 않다. 마치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실물로 존재하는 느낌이랄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람 냄새나는 글을 접할 수 있다. 표지를 찍는 유명인들은 대부분 재능기부를 하고 연예인들의 팬카페에서도 후원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잡지를 알게 된 후로 나는 지금까지 격주마다 잡지를 산다. 집에서나 이동을 할 때 핸드폰 대신 빅이슈를 읽었다. 이 착한 소비를 하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그에게 잡지를 구입하던 네 번째 만남 때 그는 처음으로 먼저 내게 말을 건넸다. 

"혹시 이거는 안 필요하세요?" 

라며 빅이슈 굿즈 중 하나인 핸드폰 손잡이를 보여줬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이 없었고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그가 내게 이 한 마디를 꺼내기 위해 얼마나 용기를 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내게 당장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나는 가격도 묻지 않고 잡지와 함께 달라고 했다. 마스크로 가려졌지만 그의 눈을 통해 그가 엷은 미소를 뗬음을 알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사 드리고 싶지만 일간지가 아닌 격주간지이다 보니 아쉬웠다. 언제든지 꺼낼 수 있게 지갑 속에 늘 현금을 채워두었다. 퇴근길에 그가 보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궁금하고 염려가 됐다. 하원을 위한 종종걸음을 옮길 때 그 앞에 잡지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서 있으면 내 마음이 다 뿌듯했다. 뭔가 도움이 되고 싶지만 잡지를 열심히 구매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빅이슈를 홍보하는 일 외에는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날도 나는 그런 마음으로 그에게 잡지를 샀었다. 내가 코로나 확진자가 될 거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혹여나 그가 보건소의 연락을 받고는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된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구입했고 그날은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기에 밀접접촉자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그가 안전하기를 바란다. 그가 건강하여 소망하고 있는 것들을 반드시 이룰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핸드폰에 상사 이름이 떴다. 하루 종일 이 곳에 있다 보니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낼 일이 거의 없어 반쯤 잠겨 있는 목소리를 전화를 받았다. 나는 차장님께 반가움을 표현했는데 차장님이 내게 또 우는 거냐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할 때마다 울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 차장님께 목이 잠긴 이유를 설명하자 웃으셨다.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상태는 호전되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한데 마음의 부담을 주는 건 아닌가 해서 어렵게 전화했어.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너 때문에 생긴 일이라 자책하지 말고 너 회복하는 것에만 집중해. 너처럼 밝고 쾌활한 사람들이 남 모르게 속은 썩어가고 있다는 거 잘 알아. 남들은 속도 모르고 니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마음속에 담아놨던 모든 것들 쉬면서 다 던져버리고, 앞으로는 너 스스로를 위해서 살아." 차장님의 말에 또 울컥했다. 그녀는 내 마음 속에 들어갔다 온 것 마냥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를 위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기적인 삶과는 분명 다르다. 나를 위해 산다는 것은 나의 속 사람을 용납하고 나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슈퍼우먼처럼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과신하는 것이 아니라 , 남들이 나를 좋아하도록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이 아닐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를 포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수불가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포장이 꼭 과대할 필요가 있을까?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딱 그 정도면 되는데 선물이 빈약하다 느껴질수록 포장에 자꾸 신경을 쓰게 되는 법이다.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내가 했던 나에 대한 포장이 과대포장은 아니었는지. 사실 나는 꽤나 괜찮은 사람인데 내 스스로가 나에게 너무 엄격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앞으로의 나는 나라는 사람을 진실되게 포장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는 사랑이 많고 인정이 많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행복을 함께 느끼는 편이다. 내가 했던 행동들에 대해 자책하기보다 나 스스로의 성품을 온전히 깨닫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해 본다. 벌써 센터에서 지낸지도 열흘째가 되었다.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그새 또 한 뼘 자란 것 같다. 오늘 나는 내가 좋다. 참 좋다.



이전 12화 코로나, 오만과 편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